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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마지막 따고 주운 매실 알갱이들. 어떤 것들은 벌써 쭈글쭈글해졌네
▲ 마지막 남은 매실 한 소쿠리 밭에서 마지막 따고 주운 매실 알갱이들. 어떤 것들은 벌써 쭈글쭈글해졌네
ⓒ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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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매실효소라 해야 할까? 아침에 따고 주운 매실로 마지막 효소를 담갔으니 말이다. 물론 모두 다 떨어내고 남은 보리수와 산딸기 몇 개를 곁들였다. 그것들은 매실에 다 가리는 듯했다.

아내는 매실이 맥이 없고 곪은 것 같은 게 많다고 아우성이다. 그래도 나는 그게 좋은 거라고 자꾸 우겼다. 개미가 먹은 게 아니라 제 스스로 안간힘을 쓰며 버티다 그렇게 된 것이니, 괜찮다고 말이다.

한 병은 15일 전에 담근 매실과 개복숭아와 비파와 산딸기를 섞어 넣은 효소다. 하얀 설탕으로 차 있는 병은 오늘 담근 매실과 산딸기와 보리수 효소다. 이것도 머잖아 색깔이 왼쪽 것처럼 변할까? 글쎄 모를 일이다. 내일 유달산에 올라가 개복숭아를 몇 개 주워서 담글 테니 말이다.
▲ 두 개의 효소 한 병은 15일 전에 담근 매실과 개복숭아와 비파와 산딸기를 섞어 넣은 효소다. 하얀 설탕으로 차 있는 병은 오늘 담근 매실과 산딸기와 보리수 효소다. 이것도 머잖아 색깔이 왼쪽 것처럼 변할까? 글쎄 모를 일이다. 내일 유달산에 올라가 개복숭아를 몇 개 주워서 담글 테니 말이다.
ⓒ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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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가서 8리터짜리 큼지막한 유리병을 하나 샀다. 1만2천 원이 들었고, 내친김에 마트에 들러 3리터짜리 설탕도 하나 샀다. 매실과 설탕 비율을 1대1로 맞춰야 제 격이라는 이야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차곡차곡 채워 넣으니 3분의 2는 가득찬 느낌이다.

새로 담근 매실이라 그럴까? 이 병 색깔은 완전 하얀색이다. 눈을 가득 퍼담은 것처럼 하얗다. 물론 예전 담은 효소들은 색깔이 제각각이다. 오디 효소는 검붉고, 매실과 개살구과 비파와 산딸기를 담은 효소는 황토색이다. 

제일 왼쪽은 숨쉬는 항아리에 담근 오디 효소, 중간은 흑설탕에 담근 매실, 맨 오른쪽은 흰설탕으로 담근 매실이다. 오디효소 옆에 산딸기 효소가 있긴 한데 그게 안 찍혔다. 그건 완전히 빨갛다. 이것들은 6월 초에 담근 것들인데, 그 중에 향이 제일 좋은 건 오디효소다.
▲ 몇 가지 효소 제일 왼쪽은 숨쉬는 항아리에 담근 오디 효소, 중간은 흑설탕에 담근 매실, 맨 오른쪽은 흰설탕으로 담근 매실이다. 오디효소 옆에 산딸기 효소가 있긴 한데 그게 안 찍혔다. 그건 완전히 빨갛다. 이것들은 6월 초에 담근 것들인데, 그 중에 향이 제일 좋은 건 오디효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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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것 같지 않은가? 물론 모두 나 혼자는 먹지 않을 것이다. 3개월 정도 잘 숙성시켜 그 안에 든 쭈글쭈글한 열매들은 걷어내고, 진액만 빼서 여러 사람들과 나눌 것이다. 물론 마지막 매실을 내게 선사한 그 주인에게도 말이다.

그래도 살짝 미련이 남는다. 오늘 담근 매실효소가 아직은 흰색이고 3분의 1은 더 채워넣어야 하니 말이다. 그래 그게 좋겠다. 내일 아침 일찍 유달산에 올라 개복숭아를 한 번 더 주워야겠다. 그게 천식와 기관지에 금상첨화라고 하니 말이다.

매실 밭 뒤편에 마지막 남아 있는 산딸기와 보리수 열매를 거뒀다. 이것들도 함께 넣었는데, 얼마나 작은지 매실에 완전히 가려버렸다. 내일은 유달산에 올라가 개복숭아를 몇 개 주워와서, 이것들과 함께 잡탕식 효소를 담가야겠다.
▲ 산딸기와 보리수 열매 매실 밭 뒤편에 마지막 남아 있는 산딸기와 보리수 열매를 거뒀다. 이것들도 함께 넣었는데, 얼마나 작은지 매실에 완전히 가려버렸다. 내일은 유달산에 올라가 개복숭아를 몇 개 주워와서, 이것들과 함께 잡탕식 효소를 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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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효소 박사가 되는 건 아닐까? 올 가을엔 쑥과 산도라지와 아카시아꽃과 민들레 효소도 담가야 할 것 같다. 지금 들어 있는 이 효소 열매들을 다 빼내고서 말이다. 지금도 쭈글쭈글한데 그땐 얼마나 더 힘없이 쭈글쭈글해져 있을까?

어쩌면 이런 게 인생이지 않을까도 싶다. 그토록 탐스럽고 알찬 열매들이 진액을 만들면서 제 몸을 삭이고 있으니 말이다. 내 엄마도 필시 이런 인생을 살았지 싶다. 내년이면 70세가 되는 울 엄마, 얼마 전에 뵈니 더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안쓰럽지만 자랑스럽다. 나도 그처럼 아름답게 살아야 할 텐데...


태그:#매실 효소, #산딸기 효소, #오디 효소, #개복숭아 효소, #잡탕식 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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