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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은 늙자, 자기의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웠다. 맏아들의 이름은 요엘이요, 둘째 아들의 이름은 아비야다. 그들은 브엘세바에서 사사로 일하였다. 그러나 그 아들들은 아버지의 길을 따라 살지 않고,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려, 뇌물을 받고서, 치우치게 재판을 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모여서, 라마로 사무엘을 찾아갔다. 그들이 사무엘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른께서는 늙으셨고, 아드님들은 어른께서 걸어오신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셔서, 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 사무엘상 8장 1-5절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브라함-모세-다윗 등과 함께 지도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야훼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사울을 왕으로 세웠고, 다윗 역시 그를 통하여 왕으로 세운다. 하지만 사무엘 아들들은 바르지 않았다.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렸"을 뿐만 아니라 '뒷돈'을 받았고, 재판도 공정성을 상실했다.

한마디로 지도자 자격이 없었다. 다윗도 별 다르지 않았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솔로몬의 아이 하나를 두고 두 여자가 자기 아들이라고 우기자 내린 지혜로운 재판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이스라엘 분열 단초를 제공하는 왕이 된다.

훌륭한 아버지 밑에는 왜 아들이 문제일까?

사무엘과 다윗만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위대한 아버지 밑에 위대한 아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위대한 아버지를 극복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쩌면 끝없이 아버지와 비교되는 것 때문에 아들은 좌절을 경험할 것이다.

'추사체'와 <세한도>를 남긴 김정희(1786·정조10~1856·철종7). 추사체와 <세한도>는 당시 세도가 안동 김씨 세력을 비판하다가 제주로 유배갔을 때 완성한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유배살이를 하면서 자신을 이렇게 만든 세력을 증오하고 미워하다 세월을 다 보냈을 것이지만, 추사는 그렇지 않은 셈이다. 추사가 얼마나 올곧고, 강인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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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엄혹하고 냉정한 아버지였다. 추사에게는 서얼 아들이 있었다. 멀디 먼 절해고도 제주에 찾아온 이 아들을 혹독하게 단련시키려고 했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들은 "나를(추사) 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글을 남기고 떠나버렸다. 추사는 떠난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너는 대체 어떠한 사람이냐?"

나는 깐깐한 노인의 훈계로 가득한 종이를 구기고 새 종이를 펼쳤다. 강개한 늙인 고양이가 된 나는 가시울타리 붓을 쥐고 이렇게 썼다.

"혹독한 관리의 차가운 손을 기억하라."
-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13쪽

아버지를 닮고 싶다는 글을 남긴 아들에게 추사는 "너는 어떠한 사람이냐?"고 따져 묻고, "혹독한 관리의 차가운 손을 기억하라"고 했다. 이게 추사였다.

엄혹하고 냉정한 아버지 추사... 서얼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는 19세기 조선 정신문명을 이끈 추사 김정희가 제주에서 아들에게 쓴 다섯 가지 인생의 지침를 소설로 담아냈다. 지금 제주는 콘크리크 문화에 찌든 뭍 사람들이 마지막 삶을 보내고 싶은 곳이지만, 추사가 살 때는 기득권에 저항하다 내쳐진 이들의 유배지였다. 추사는 시련 앞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낸 방법을 아들에게 한 자 한 자 썼다.

강고하고, 냉정한 추사는 자신의 본질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아들을 향한 짙은 부성애를 통해 삶·사람·사물을 대하는 지혜와 방식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다. 읽는 이는 위대한 '예술가'로서 추사와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추사를 함께 만날 수 있다. 추사는 절해고도 자연에서 한 수 배워 서늘하고 냉정해졌다고 말한다.

혹독한 관리의 차가운 손은 이제 또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현실의 차가움이 아닌 마음의 엄정함. 두려움에 감정적인 굴복이 아닌 차갑고 냉철한 대처. 그러므로 혹독한 관리의 차가운 손은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깨달음이기도 했다."(34쪽)

절해고도 유배에 오르기 전에도 서늘하고, 냉정했던 추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엄정함을 더했다. 편지를 받은 아들 마음은 어땠을까? 참으로 냉정한 아버지다. 하지만 추사는 위기에 처한 아들에게 "위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초연한 자세를 유지하라"고 조언한다. 이유는 자신이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위기와 절망은 냉정함과 따뜻함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지로 향하는 길에 만난 거대한 파도는 결국 목적지에 다다르자 잠잠해졌다. 이처럼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 매순간 흔들리는 마음에 이끌리지 말고 초연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맞이 한다면, 그 속에서도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분해 자포자기 했다면, 추사는 추사체를 창조하지 못했을 것이고, 세한도를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절망 끝에 희망이 있음을 안 것이다. 이런 냉혹한 추사도 "차가움, 이면에 있는 따뜻함을 잊지 마라"는 아버지로서 애틋함을 드러낸다. "다른 사람을 냉정하게 대하더라도 항상 따뜻한 인정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는 "사지에 내몰려도, 그 따뜻함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너를 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추사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먼저 해야 할 일의 순서가 있다"면서 "눈에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지 말라"고 한다. 자신이 일의 순서를 잊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몰두했다면 "단 하루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유배지 제주도가 바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제주 유배는 모든 것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추사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으며, 자신이 있어야 할 곳임을 알았던 것이다. 이런 다짐은 추사체와 <세한도>를 만들게 된 것이다.

"너의 세한도를 그려라"

추사는 아들에게 "현실적으로 너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안내자를 구하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라", "확실한 꿈이 있다면 이루기 위한 방법을 놓치지 마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를 닮으려고 하지 말"고 "너의 <세한도>를 남겨라"고 말한다.

"너는 내가 되려 한다. 나를 닮으려 한다. 그래서 너는 내 글씨를 흉내 내고 내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이다. 이는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짓이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나는 박제가와 옹방강과 완원에게 배웠지만 그들이 아닌 내가 되었다. 그러므로 네가 나를 닮은 삶을 살기를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 나를 닮고 싶다는 너의 문장을 진심으로 이해한다. 그 열망과 좌절을 누구보다 이해한다. 나는 너를 온전히 이해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나를 닮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냥 말하는 것도 아니고 목소리 높여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끝내 네가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할까봐 너에게 이렇게 쓰는 것이다. '너의 세한도를 그려라'."(199쪽)

추사 아들만 아니라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자신의 <세한도>를 그려야 한다. 요즘 세상은 누구를 닮으려고 할 뿐, 자신의 만들어가지 않는다. 자신만의 삶을 살지 못한다. 추사는 너만의 세한도를 그리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나는 네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무거운 이슬, 돋아나는 풀, 깊은산, 길게 지는 해, 네가 머무는 곳에 향을 남기는 사람, 네가 없더라도 향으로 네 자취를 남기는 사람"(205쪽)

그리고 추사는 "너에게 보내는, 내 아들에게 보내는, 잘났으니, 실은 못난, 모든 것을 알면서도 실은 하나도 모르는 아비의 편지니까"로 글을 맺는다. 부모라면 이런 편지 한 번쯤 아이들에게 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추사가 아들에 전한 다섯 가지 인생 지침서
하나, "혹독한 관리의 차가운 손을 기억하라"
위기와 절망에 처했을 때, 그 상황을 두려워하지 말고 초연한 자세를 유지하라. 꿋꿋하고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되, 차가움 그 이면에 있는 따뜻함은 잊지 마라.

둘, "사물의 올바른 위치를 기억하라."
걱정과 불안 때문에 흔들릴 때, 반드시 먼저 해야 할 일의 순서를 기억하라. 눈에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지 말고, 머뭇거림과 의심의 시간을 없애라.

셋, "아랫목이 그리우면 문부터 찾아서 열어라."
어떤 목표를 실현하고 싶을 때, 현실적으로 너를 도울 수 있는 사람부터 찾아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핵심을 파악하고,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놓치지 마라.

넷, "맹렬과 진심으로 요구하라."
사람에게 신뢰를 얻고 싶을 때, 너의 진심과 정성을 먼저 표현하라. 나에게 요구하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타인에게 진심을 정확히 전달하라.

다섯, "너의 <세한도>를 남겨라."
예술과 인생의 정도를 알고 싶을 때, 맹렬한 진심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부터 생각하라. 그들을 향한 다짐을 작품으로 남기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라.

덧붙이는 글 |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설흔 씀, 위즈덤하우스 펴냄, 2013년 3월, 215쪽, 1만3000원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 삶.사람.사물을 대하는 김정희의 지혜

설흔 지음, 위즈덤하우스(2013)


태그:#추사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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