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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2년차 국회의원'인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요즘 상종가다. 여의도 정가에서뿐만 아니라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도 김 의원은 단연 화제의 중심이다. 페이스북에서는 조국 서울대 교수와 '질의-응답'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김 의원이 이렇게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은 그가 느닷없이 제기한 '운동권 검사론' 때문이다. 김 의원이 지난 17일 국정원 선거·정치개입 의혹 사건의 주임검사가 '학생운동권 출신'이라는 사실을 들어 검찰수사를 비판한 것이다. 이미 그는 지난 4월 25일 "민주당은 종북세력과 결별하라"고 발언해 보수 성향 누리꾼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은 바 있다.

기무사 법무관-공안검사 경력 바탕으로 "종북세력과 결별" 발언

국정원 사건 수사팀의 주임검사가 운동권 출신이라고 색깔론을 제기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학생운동 전력이 무슨 훈장이냐"며 서영교 민주당 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 김진태 "학생운동 전력이 무슨 훈장이냐" 국정원 사건 수사팀의 주임검사가 운동권 출신이라고 색깔론을 제기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학생운동 전력이 무슨 훈장이냐"며 서영교 민주당 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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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 출신인 김진태 의원은 1964년생으로 성수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전두환 정권 때 대학을 다닌 전형적인 '386세대'(또는 '광주항쟁세대')였다.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국군 기무사령부(기무사) 법무관으로 근무했다.

이후 김 의원은 17년간 '검사'로 살았다. 춘천지검 부장검사, 대검 조직범죄과장,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등을 거쳐 춘천지검 원주지청장을 끝으로 지난 2009년 2월 검사생활을 마무리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인 지난 2006년에는 사행성게임인 '바다이야기' 수사를 실무에서 지휘하기도 했다. 보수성향 주간지 <미래한국>은 지난 4월 26일자 칼럼에서 "(기무사를 전역한) 이후 20년간 검사로 활동하면서 절반 이상의 시간 동안 공안분야에서 활약했다"고 적었다(관련기사 : 대한민국은 "김진태"를 검색했다).   

검찰에서 퇴직한 김 의원은 고향인 춘천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그리고 지난 2012년 4월 총선 당시 현역이던 허천 새누리당 의원을 누르고 강원도 춘천 지역구를 공천받았다. 새누리당에서 공격수로서의 검사 출신 영입에 공들인 결과였다. 결국 그는 검찰에서 퇴임한 지 3년 만에 국회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기무사 법무관과 공안검사 등의 경력을 헤아릴 때 김 의원에게 '공안본능'이 살아있을 것으로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는 그의 의정활동에서도 잘 드러난다. 

주성영 전 새누리당 의원
 주성영 전 새누리당 의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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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의원은 지난 4월 2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무섭다고 했다"며 일부 야당의원들을 겨냥해 "종북성향 의원들"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종북세력과 이제 결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지난 2004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에 북한 노동당원이 암약하고 있다"고 주장한 주성영 전 의원이 떠오른다고 했다.

하지만 매카시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날 발언은 보수 성향 누리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김 의원의 홈페이지 자유게시판과 페북 등에는 수백개의 지지글이 달렸다. 김 의원조차도 "자고나니 유명해졌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일까요?"라고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소장.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소장.
ⓒ 서울중앙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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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에서 불편했을 대목 "국정원 여론 개입은 헌법이 허용 안해"

한국 보수의 단골 메뉴인 '색깔론'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미 '주성영 키드'의 자질을 드러냈던 김 의원은 지난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색깔론을 폈다. 이번에는 동료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국정원 선거·정치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한 주임검사(진재선 검사)를 겨냥했다.

"공소장을 보면 과연 대한민국 검찰의 공소장인지 걱정됐는데 의문이 풀렸다. 주임검사는 서울대 법대 92학번으로 지난 96년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을 지낸 PD(민중민주)계열 인물이다. 총학생회 부총학생회장에 운동권 출신, 그러니까 공소장이 이렇게 나오는 것이다."

공소를 제기한 검사가 운동권 출신이어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으로 기소한 것 아니냐는 얘기로 들린다. 여당에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검찰수사결과에 색깔론을 덧씌운 것이다.

김 의원이 물고 넘어진 공소장은 검찰수사팀이 지난 2개월간 수사해온 결과물을 진재선 검사가 다듬어 작성한 것이다. 공안부 쪽 부장검사도 공소장을 검토했다. 진 검사가 자기 맘대로 공소장을 작성할 수 있는 처지나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17년간을 검사로 살았던 김 의원이 이러한 과정과 절차를 모를 리 없다.

19일자 <노컷뉴스> 보도(관련기사 : 새누리당 김진태 '운동권 검사'의 초임부장 검사였다)에 따르면, 진 검사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사건과 중앙당 폭력사건 등을 처리해왔고, 검찰 안에서도 '공안검사'로서 두루 신망을 얻고 있다. 또 검찰 밖에서도 그의 공소장과 관련해 "국민의 이목이 쏠린 사건이라 그런지 다른 사건의 공소장들에 비해 꼼꼼하게 잘 썼다"(서울중앙지검 출입기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공소장은 단순히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에만 머물지 않고 '표현의 자유' 침해까지 확장시켜 눈길을 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국가기관이 일반 국민의 의견인 것처럼 가장하여 사이버 공간에서 국민의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개입하는 행위는 어떤 명분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 등을 보장한 우리 헌법의 이념에 비추어 결코 허용될 수 없다"고 기술했다. 김 의원에게는 이 대목이 '운동권 시각'에서 기술된 것으로  비쳐져 상당히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 등을 보장한 헌법은 그가 주장해온 대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이다.  

그런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은 김 의원과 진 검사의 인연이다. 지난 2004년 2월 진 검사가 발령받은 초임지는 춘천지검이었다.

진 검사는 춘천지검 형사2부에 배당됐는데 당시 형사2부장검사가 김 의원이었다(관련기사 : '제자같은' 후배 검사에 색깔론 씌운 김진태 의원). 진 검사에게 '스승'이나 다름없는 '첫 부장검사'가 김 의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승이 제자한테 '색깔론'을 씌워 공격한 셈"이 됐다. 이를 두고 검찰 안에서도 "도의적인 측면에서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태 의원은 지난 4월 국회에서 국정원의 선거.정치개입 의혹 사건을 "야당에 의한 여직원 인권유린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김진태 의원은 지난 4월 국회에서 국정원의 선거.정치개입 의혹 사건을 "야당에 의한 여직원 인권유린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 국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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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이 검사 출신임을 포기하고 정치꾼이 됐다"

김 의원의 '운동권 검사론'이 겉으로는 색깔론으로 포장돼 있지만 거기에는 검찰 수사결과를 아예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그래서 그는 노골적으로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방해하는 세력에 대응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이냐?"고도 했다. 이는 경찰과 검찰이 총 6개월여에 걸쳐 수사한 결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이다.

김 의원은 이미 검찰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기 전부터 '국정원의 선거·정치개입은 없었다'고 결론내렸다. 그는 지난 4월 25일 국회에서 "국정원 여직원의 선거개입은 사실무근이다"라며 "오히려 이 사건은 야당에 의한 여직원 인권유린 사건이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은폐로 얼룩진 경찰수사결과에서조차 '국정원법을 위반했다'고 적시했는 데도 그는 이를 애써 무시한 것 같다.

하지만 검찰은 여러 가지 한계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인터넷 여론조작을 통해 선거·정치에 개입해왔고,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경찰수사 결과를 치밀하게 은폐했다는 사실을 꽤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김 의원의 주장을 따르자면, 국정원 직원들이 선거시기에 게시글·댓글 올리기 등을 통해 인터넷여론을 조작해도 '대종북세력 심리전'이라고 주장하면 그만이다.

김 의원의 마지막 부임지는 춘천지검 원주지청이었다. 그가 지청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지난 2008년 12월 원주지청에서는 '평창휴게소 비리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다. 체포와 압수수색 등을 통해 평창휴게소 운영업체에서 한국도로공사 강원지역본부와 관할군청, 경찰지구대, 소방소 출장소 등에 향응과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포착했다.

그런데 도로공사 직원들은 한 명도 소환되지 않은 채 사건은 수사선상에서 사라졌고, 내사기록들은 다른 사건에 편철됐다. 사건 은폐 의혹이 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관련기사 : '로비 수첩'까지 얻어놓고... 사라진 '휴게소 비리 사건', 휴게소 비리 내사기록은 왜 숨어 있었나?). 갑자기 사라진 사건 주변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도로공사 로비 의혹만 나돌았다. 

검찰수사는 김 의원이 원주지청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진행됐고, 그가 퇴임한 직후 '편철'이라는 묘한 식으로 사건이 종결됐다. 당시 검찰이 체포와 압수수색 등을 벌였고, KBS 원주방송에서 수사내용을 비중있게 보도했다는 점을 헤아리면 김 의원이 이 사건을 모를 리 없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체포와 압수수색을 벌이고, 언론에서 보도할 정도의 사건이라면 당연히 수사내용이 지청장에 보고되고, 사건을 종결할 때도 최종 승인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수사내용 등을) 보고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휴게소와 도로공사, 관할행정기관 등이 얽히고 얽힌 비리 의혹 사건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는데 최종 책임자였던 김 의원은 "기억이 안 난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그런 그가 불완전하게나마 국정원의 선거·정치개입을 밝혀낸 검찰수사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구태 중 구태인 색깔론까지 동원하면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친정'에선 "김 의원이 검사 출신임을 포기하고 정치꾼이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태그:#김진태, #진재선,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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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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