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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행 여객선이 오가는 항구의 도시 포항엔 바닷가와 해송 숲, 강변길은 물론 항구의 여러 풍경을 감상하며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자전거 길이 있다. 강변과 해안 너머로 거대한 병풍처럼 둘러선 포항 제철소가 자아내는 색다른 풍경 속을 달리기도 하고, 포항의 명소 죽도시장도 지나가는 등 무척이나 다채로운 자전거 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남쪽 방향의 연일대교에 닿으면 울산의 울주군에서 발원, 경주를 지나 포항 영일만 앞바다로 나아가는 형산강이 흘러간다. 이 형산강변에 산책로 겸 자전거 길이 나있다. 한강의 밤섬처럼 작은 하중도(河中島)가 강의 정취를 살려주고, 훈련  중인 조정경기 선수들이 모는 작은 보트와 경주하듯 달리며 영일만 바다로 향한다.

바다로 흘러가는 형산강변길 라이딩    

울산에서 발원, 경주를 거쳐 흘러온 형산강은 포항에서 비로소 바다와 만난다.
 울산에서 발원, 경주를 거쳐 흘러온 형산강은 포항에서 비로소 바다와 만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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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강과 바다 건너편의 거대한 제철소가 색다른 풍경과 기분을 자아낸다.
 형산강과 바다 건너편의 거대한 제철소가 색다른 풍경과 기분을 자아낸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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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해변가에 해풍을 막아주기 위해 심어놓은 해송림, 주민들에게 좋은 쉼터이기도 하다.
 송도 해변가에 해풍을 막아주기 위해 심어놓은 해송림, 주민들에게 좋은 쉼터이기도 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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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복장으로 자전거를 탄 주민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달리는 재미도 좋고, 낚시 장비들을 싣고 달리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타는 짐자전거도 오랜만에 본다. 울산에서 경주를 거쳐 이곳까지 긴 여행을 한 형산강은 비로소 바다를 만나는 것을 아는지 멈춘 듯 흐르는 듯 한껏 여유로워 보이고 강폭도 무척 넓다.

낚시하는 아저씨들이 "무슨 물고기를 잡았나" 하는 궁금증이 생겨서 그물을 구경하기도 하고, 강변 공원 잔디밭에서 게이트볼을 치는 동네 주민들과 눈인사를 하며 바다 쪽으로 달리다 보면 보기 드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얀 연기를 하늘로 내뿜는 거대한 제철소들이 그것으로 흡사 SF 영화의 한 장면 속 같다. 쇠가 얼마나 많고 큰지 쇠를 식히면서 나오는 하얀 증기가 하늘을 가릴 기세로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강 건너의 이런 이채로운 풍경은 포항 바닷가를 지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강 하구의 물길이 본격적으로 바다와 만나는 길목에 송도 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송도는 이름이나 지도상으로 보아 과거엔 육지와 가까운 섬이었나보다. 알고 보니 형산강이 강물로 범람하면 섬이 되었던 특이한 마을이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재잘거리며 노는 아이들에게 "학교가 바닷가에 있어 좋겠다"라고 말했더니, '바닷바람이 불어와 춥다', '바다에서 비린내가 나서 싫다' 등 예상치 못한 대답이 몰려온다. 그래도 어른이 되면 바닷가의 초등학교 시절이 그리울 거다.

해풍이 불어오는 바다와 직접적으로 맞닿은 동네에 꼭 있는 솔숲이 송도에도 바닷가를 따라 넓게 펼쳐져 있다. 안내 푯말을 보니 일제 강점기 때 이곳으로 이민을 온 일본 사람이 일본에서 해송 묘목을 구해와 1918년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해 지금의 송림(松林)이 되었다고 한다. 

숲속엔 나무 그늘은 물론 매점, 평상과 운동기구가 있어 주민들이 쉼터로 삼기 좋겠다. 한낮엔 햇살 따가운 더운 날씨지만 솔숲 그늘에 앉아 있다 보니 송도 초등학교 아이들 말대로 바닷바람이 참 시원한 게 다른 계절엔 정말 춥게 느껴지겠다.

다채로운 풍경의 항구

침묵속에서 수신호로 벌어지는 흥미로운 경매현장.
 침묵속에서 수신호로 벌어지는 흥미로운 경매현장.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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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나쁘게 인간에게 잡혀 죽은 이 거대 물고기의 이름은 '개복치'란다.
 운나쁘게 인간에게 잡혀 죽은 이 거대 물고기의 이름은 '개복치'란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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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에선 포항의 명소 죽도시장이 가깝다. 채소시장은 새벽 3시에, 수산물 시장은 새벽 5시에 장을 시작한다니 나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별세계 같이 느껴진다. 그런 부지런한 사람들이 모여 삶을 영위하는 곳이니만큼 시장 분위기도 활기차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살아있네~'. 시장통을 지나갈 때 들려오는 어느 상인 아낙의 '○○사이소~' 하는 호객행위는 너무 정다워서 구입할 물건이 아님에도 돌아보게 한다. 

어선이 실어온 물고기들을 사이에 두고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작은 경매가 벌어지는 현장, 침묵 사이로 오고가는 상인들의 눈치와 수신호가 재미있다. 못생긴 괴물고기처럼 생긴 아귀와 발에 빨판이 가득한 대형 문어, 주먹만 한 소라들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 중 처음 보는 커다란 물고기가 있었는데 나 같은 사람들이 하도 물어봐서 인지 아예 '이 물고기는 개복치'라고 물고기 이름을 써서 붙여 놓았다.

덩치에 맞게 깊고 너른 바다 속에서 헤엄치며 살았을 개복치, 어쩌다 운 나쁘게 인간에게 잡혀온 이 거대 물고기는 손님이 원하는 만큼 고기를 썰어 그 자리에서 판다. 또한 부위별로 썰어 놓은 고래 고기도 볼 수 있는 죽도시장은 미로 같은 골목에서 헤매기도 하는 큰 시장이다. 수산시장 어판장의 기둥에 써 있는 '남과 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구호가 외지인의 눈엔 정겹기 만한 시장이 실은 치열한 삶의 터전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시장 안 깊숙한 곳에 주로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리밥집이 모여 있다. 그곳의 음식은 가격도 저렴하고 (4천 원) 생선구이에서 국, 찌개, 채소, 나물, 김치, 해산물까지 푸짐하게 갖춰져 있어 여행자를 놀라게 한다. 시장 상인들에게 보리밥집을 물어보면 잘 알려준다. 새벽시장에 맞춰 식당 문을 일찍 연만큼 오후 서너시면 영업이 끝난다.

내가 손쉽게 사다 먹는 생선은 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거쳐서 온 것 임을 새삼 깨닫게 한 항구 풍경.
 내가 손쉽게 사다 먹는 생선은 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거쳐서 온 것 임을 새삼 깨닫게 한 항구 풍경.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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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시장에서 나와 바닷가의 항구로 들어서면 포항 북구의 북부해변까지 자전거 길이 쭉 연결되어 있다. 레저용뿐만이 아니라 주민들의 자전거 출·퇴근이나 교통수단으로 많이 애용될만하다. 크고 작은 어선과 다양한 모양의 어구들이 한가롭게 쉬고 있는 항구에서도 그물을 정리하고 수선하는 부지런한 어민들이 눈에 띈다.

항구 한쪽에 커다란 모기장이 널려 있고 아주머니들이 재봉틀로 열심히 꿰매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여름엔 배에도 모기장을 치냐고 물어봤다가 아주머니들에게 의도치 않은 웃음을 선사했다. 모기장처럼 보인 촘촘한 그물은 멸치를 잡는 그물이었다. 궁금증은 해결되었지만 덕분에 서울 촌놈이 되고 말았다.

항구에 막 도착한 어느 어선에선 진한 비린내를 풍기며 물고기를 트럭에 싣고 있다. 허리까지 쌓인 물고기 더미 속에서 삽으로 물고기를 퍼 나르고 있는 아저씨들은 요즘 EBS 방송에서 방영 중인 리얼 다큐멘터리 <극한 직업>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모습이다. 내가 손쉽게 사다 먹는 생선이 저리 힘든 노동의 과정을 거치는구나…. 항구 여행은 잠시 잊고 살던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제주 해녀들이 물질하는 포항 북부해변

한가로운 포항북부해변 너머로 분주한 포항 제철소 풍경이 무척 이채롭다.
 한가로운 포항북부해변 너머로 분주한 포항 제철소 풍경이 무척 이채롭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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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해변을 달리다 만난 두호 어촌계 해녀 작업장.
 북부해변을 달리다 만난 두호 어촌계 해녀 작업장.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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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가는 배가 오가는 여객선 터미널을 지나면 포항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북부해변이 나타난다. 북부해변에도 산책로 겸해서 자전거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아주 잘 나있다. 하지만 자전거로 휙 지나가기엔 아까운 해수욕장이다. 애마 자전거를 끌고 모래사장을 지나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를 맨발로 걸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부드러운 모래 속에 저절로 발 찜질을 하게 되고, 바닷물은 맑고 그 바람처럼 시원하다.

위치는 동해바다지만 해변의 수심이 깊지 않아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물놀이하기 참 좋다. 부드럽고 풍성한 모래사장과 더불어 포항시민들의 사랑을 받을 만하다. 더불어 북부해변이 이채롭게 보이는 건 뒤편에 펼쳐진 거대한 제철소의 풍경과 어우러져서다. 바다를 메꿔 만들었다는 제철소는 형산강에 이어 이곳까지 이어져 국가적 산업단지다운 면모를 자랑한다. 사진으로 담으니 아름다운 북부해변과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제철소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다시 신발을 신고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쐬며 북쪽 방면의 해변 길을 신나게 달리다가, 작은 방파제 앞에서 까만 잠수복들이 햇볕 아래 빨래 널듯이 널려 있는 것을 보고 페달을 멈추었다. 해녀들이 사용하는 잠수복 같아서였는데 예상은 적중했다. 방파제 옆에 두호 어촌계 해녀 작업장이 있다. 제주의 해녀는 몇 번 봤었지만 포항의 해녀는 처음이다, 궁금함을 못 이기고 문 열린 작업장 안으로 살짝 고개를 들이 밀었다.

다행히 제주의 해녀도 포항의 해녀도 자전거 여행자에게 별 경계심을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는 교통수단이나 여행수단으론 무력한 도구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놓게 하는 힘이 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니 해녀 아주머니 한 분이 옆자리를 내준다. 대 여섯 분이 앉아서 성게를 까고 있다.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시커먼 성게는 바다 속의 지뢰라고 하는 '기뢰'와 흡사하다.

해녀들이 바다에서 채취해온 성게를 다시 손보고 있다.
 해녀들이 바다에서 채취해온 성게를 다시 손보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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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호동 북부해변에선 포항의 해녀들이 이른 아침마다 물질을 한다.
 두호동 북부해변에선 포항의 해녀들이 이른 아침마다 물질을 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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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많은 해녀 아주머니가 먹어 보라며 떼어준 성게 살은 가시 많은 외모와 달리 입속에서 그냥 녹는다. 감탄하는 내 표정을 힐끗 쳐다보던 다른 해녀 아주머니가 성게 살에 밥을 넣고 참기름 몇 방울 떨어트려 비벼먹으면 맛있다고 말해 주는데, 그 생소한 말투가 귀에 익다. 다른 사투리와 달리 흉내 내기도 어려운 제주도 사투리가 아닌가!

그녀는 수십 년 전에 제주도에서 이곳 포항으로 이사를 와 이렇게 물질하며 아이들도 다 키우고 잘 사신단다. 거제도나 통영으로도 이사를 가신단다. 옛 부터 제주의 해녀들은 일본의 오키나와까지 일하러 원정을 갔다고 한다. 제주도가 고향은 아니지만, 왠지 고향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느껴졌다.

어촌계 앞 방파제 부근에서 아침 8시 전후로 물질을 한다고 해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찾아가 보기도 했다. 까만 현무암 돌이 흔한 제주의 바닷가와 바다색깔은 달랐지만 잠수하느라 가쁜 숨을 내쉬는 해녀의 '숨비소리'는 여전히 마음을 짠하게 했다.          

북부해변의 자전거 길은 포항 시립미술관이 있는 환호공원을 지나면서 마침내 끝난다.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자전거길, 항구의 도시 포항을 다채롭게 느낄 수 있는 길이었다.

* 주요 자전거 여행 길 ; 포항 시외버스 터미널 - 형산강 변 자전거 도로 - 송도 초등학교 - 송도 해송 숲 - 죽도 시장 - 북부 해변 자전거 도로 - 두호동 어촌계 - 환호공원

덧붙이는 글 | 여행은 지난 6월 16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자전거여행, #포항, #형산강, #북부해변, #두호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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