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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장관급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9일 오전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가운데, 북측 김혜성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부장, 황충성, 김명철 등 북측대표단이 군사분계선을 넘기 직전 남측 인사와 악수를 하고 있다.
▲ 분단상징 '시멘트' 군사분계선 사이에 둔 남-북 대표단 남북장관급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9일 오전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가운데, 북측 김혜성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부장, 황충성, 김명철 등 북측대표단이 군사분계선을 넘기 직전 남측 인사와 악수를 하고 있다.
ⓒ 통일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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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전에 만난 남북 실무접촉 대표단은 다음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회의장인 판문점 '평화의 집'을 떠날 수 있었다. 17시간여 동안 10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합의문이 아니라 남과 북 각각의 입장이 적힌 각각의 발표문이 나왔다.  

합의문이 작성되지 못한 건 두 가지 쟁점 때문이었다. 정부는 이미 북한에 제의했던 장관급 회담이 아니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북측 수석대표로 오는 새로운 형태를 제안했지만, 북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측이 회담 의제에 포함하려 했던 6·15, 7·4 공동기념행사는 남측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12일 남북회담은 열리게 됐지만, 명칭은 '남북당국회담'으로 바뀌었다. 북측은 '상급 당국자'를 보낸다는 입장이지만, 회담 이틀 전인 10일까지 대표단 명단을 보내지 않고 있다. 결국 정부는 북한의 누가 대표단으로 올지 모르는 회담을 준비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너무 일방적으로 의사를 관철하여서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식의 남북회담'이라는 정부 설명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도 있다. 남북 장관급회담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역대 통일부 장관들에게 물어봤다.

[장관급회담 아닌 '남북당국회담'?] "김양건 고집하기보다 상호 존중해야"

익명을 요구한 A 전 장관은 '새로운 형식을 어떻게 보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며 "(형식이) 의미가 있고 없고 떠나서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정부가 '장관급회담'을 제안하면서도 김양건 통일전선장(이하 통전부장)을 지목한 만큼 북측이 '당국회담'이란 명칭을 제안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는 뜻이다.

그는 "(북측은 통전부장이 남한의) 통일부 장관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통일부에 국정원을 더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 특사면 모를까, 김 통전부장은 안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이재정 전 장관은 "우리가 이제껏 '북쪽 대표를 이 사람으로 보내달라'고 한 적이 없다, 그러면 회담이 되겠느냐"며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봐라, 정부가 무례했다"고 평했다. 그는 "이번 회담의 성격과 참석자 위상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21차례 열린 장관급회담에서 두 번의 정상회담 성사, 남북 교류 협력 확대 등 성과가 있었음에도 "과거 정부와 다르게 한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얘기를 거듭했다.

정동영 전 장관 역시 "실무회담도, 국장급회담도 당국회담"이라며 "아마 우리가 김양건 통전부장이 와야 한다고 고집한 것 같은데, 격에 맞춰달라고 요구할 수야 있지만, 결정은 상대방이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저쪽 회담 대표 보고 (격이 맞지 않으면) 통일부 장관이 안 나갈 것인가? 정말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겠다면, 남북이 상호 존중하는 자세가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세현 전 장관은 '체제 차이'를 보다 상세히 언급했다. 그는 "북한은 당이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에 통일전선부장이 (회담에) 나와도 정부 대 정부가 아닌 정부 대 정당이 만나는 모양새"라며 "그쪽에서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1994년 김용순 당시 통전부장이 남북정상회담 예비회담에 참여했지만 그의 소속은 조선노동당이 아닌 '최고인민회의'였다. 정 전 장관이 "김양건 통전부장이 와도 다른 직함으로 올 것"이라고 내다보는 이유다.

"그렇다고 김양건 통전부장이 나온다는 얘기는 아니다"라며 정 전 장관은 설명을 이어갔다. 북한은 대남정책을 결정할 때 김정은 제1비서와 김 통전부장이 함께 하기 때문에 만약 그가 남한에 오면 북이 대남전략을 짜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최종책임자가 오라고 한 우리 정부 말도 틀리진 않았지만, 지금은 (남북회담을) 북미회담에 연계할지, 또 한·중정상회담에 어떻게 활용할지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남쪽 요구는) 과욕이었다"고 말했다.

[6·15와 7·4 기념행사 공동 개최] "남북 민간교류, 굳이 마다할 이유가..."

남북이 6·15공동선언과 7·4남북공동성명 기념행사 공동 개최 여부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문제는 어떻게 봐야할까?

이재정 전 장관은 "남북관계는 7·4남북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이라는 두 축에서 유지되어 온 것"이라며 "(기념행사 공동 개최를) 굳이 안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두 축이 아닌 '새로운 축'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다. 북한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다. 이 전 장관은 "북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냐"며 "과거의 것을 없애려면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민간 교류는 당국 간 회담을 통해 여건이 조성되면 그때에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정동영 전 장관은 "냉전시대에는 창구단일화가 원칙이었지만, 남북화해협력시대에는 민·관이 함께 갔다"며 "'민간행사여서 정부가 섞일 수 없다'는 건 낡은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민간교류가 활발했고, 남북 당국 관계가 삐걱거릴 때는 민간이 보완했던 점도 들었다. 그는 "성과도 (민·관이) 서로 보완하는 입장인데, (정부가 공동행사 주최를) 굳이 마다하는 일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A 전 장관도 "(남쪽 정부가) 민간이 나서는 것을 원하지 않는 모습이다, (민·관이) 같이 가도 괜찮은데…"라며 정부 태도를 아쉬워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최고 지도자들 뜻 확고해야"... "반드시 성과 있도록"

진통 끝에 남북은 조만간 한 테이블에 앉는다. 정세현 전 장관은 "판을 깨지 않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명시적으로 정한 의제는 3개(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북은 6개(남쪽 의제에 민간교류, 협력사업 추진, 6·15와 7·4 공동기념행사 개최까지 포함)인데, 우리가 우리 것만 해결하려고 욕심내면 판이 깨진다"며 "북쪽 것도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정치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며 "우리가 보수층 의견을 들어주려 한다면, 북이라고 보수층이 없겠는가? 그쪽에서 어렵게 회담을 성사시킨 사람들이 내몰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동영 전 장관 또한 "(남한) 정부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5월 24일 최룡해 북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특사 자격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북한의 경제발전과 민생개선을 위해선 한반도의 평화가 필요하다"고 밝힌 만큼, 정 장관은 북한이 남북관계 정상화를 원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의 대화제안을 우리가 '장관급회담으로 하자고' 수정 제안했듯 (남북 관계를) 선도하는 게 맞다"며 "남쪽이 더 능동적으로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A 전 장관은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제1비서의 의지를 중시했다. 그는 "(이번 회담에서) 성과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최고 지도자들 의지가 확고하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계속) 부진할 수 있다"며 "문제는 그들의 의지와 결단이지, (회담) 격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재정 전 장관은 "(이번 회담은) 두 번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라며 "정말 성의껏, 차분하게 회담을 성사시켜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대통령이 모처럼 '장관급회담을 하자'고 요청해놓고 아무것도 못 만들어내면 앞으로 (남북관계에) 희망이 없다"며 "이번 회담에서는 반드시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태그:#남북회담, #통일부,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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