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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티프원 정원의 모녀 같은 민들레 가족
 모티프원 정원의 모녀 같은 민들레 가족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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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5월 26일), 대학교 2학년의 딸과 엄마가 오셨습니다.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며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딸을 위해 대구에 살고 있는 엄마는 한 달에 두어 번 올라오셔서 방도 정리해주고 반찬도 만들어주곤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서울에 와도 항상 딸의 자취방에서 둘이 뒹굴뒹굴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좀 분위기를 바꾸고 문화체험도 할 겸, 헤이리로 왔습니다."

낮에는 갤러리를 둘러보고 밤에는 두 모녀가 노트북으로 각자의 일에 몰두하는 밤을 보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있는 딸은 항상 과제 더미가 그녀를 놓지 않았고 중학교교사인 엄마는 다음 주의 수업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오늘 아침, 두 모녀와 함께했습니다.

- 어머님, 딸 하나만 두셨나요?
"네, 그래서 딸에게 항상 미안해요."

- 어떤 점이 미안하신 거예요?
"살아보니, 친구도 형제만 못한 것 같아요. 그래도 형제는 있어야겠다는 때가 있더라고요."

- 왜 형제를 만들지 않았어요?
"바빴어요."

- 밤에도 바빴어요?
"호호, 부부가 함께 일을 하다 보니 둘을 키우기는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집을 사고 낳아야지 했는데 어느덧 아이가 훌쩍 커버린 거예요."

- 그래서 집은 사셨나요?
"네, 샀습니다."

- 몇 년 만에 사셨습니까?
"5년만에요."

- 그럼 5년 뒤쯤이라면 다시 자식 농사를 시작하셔도 될 나이잖아요?
"보다시피 제가 몸이 허약해서 임신을 하기위해서는 좀 특별한 병원의 처지가 필요해요. 일 때문에 하루 이틀 병원 가는 일을 미루다보니 또 집안에 바쁜 일들이 발생한 거예요. 집을 사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집안의 대소사들이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집안의 일들로 자식 도리를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린 겁니다."

- 어머님께서는 형제가 많아요?
"오남매입니다."

- 요즘에는 한 자녀가 많고, 형제 같은 친구들도 있지 않습니까?
"맞아요. 제 남편에게도 좋은 친구가 많아요. 하지만 어려울 일에 불쑥 손을 내밀기에는 그래도 친구보다 형제더라고요."

- 남편께서도 지금 직장생활을 하시는 거지요?
"아닙니다. 지금은 병원생활을 하고 계세요. 4년 전에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거든요."

- 지속적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 거군요?
"한두 번의 도움은 친구도 괜찮은데 잦은 도움에는 그래도 형제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더라고요."

- 선생님 말씀의 배경이 이해가 되요. 이제 선생님께서 직접 아들을 만들 수는 없지만 따님이 있으니 능히 아들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딸이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은 싫더라고요."

- 아니, 좋은 사위 두면 내 배 아프지 않고 아들을 얻는데…….
"아빠처럼 이렇게 쓰러지니 사위가 친정 부모님들에게도 걱정거리가 되잖아요. 딸만 고생시키니…."

-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아들 같은 사위가 아니었나요?
"좋은 사위였어요. 시댁보다 친정이 더 가까운데 우리 식구끼리 잔치국수 하나를 먹으러 나가려고 해도 장인·장모께 먼저 전화해서 곧 모시러 갈 테니 외출준비하고 계시라고해서 함께 모시곤 했지요."

- 따님이 현재의 남편 같은 심성의 청년과 연애하면 좋지 않을까요?
"그래도 딸이 연애하는 것이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에요. 선생님도 그렇지 않나요?"

- 맞아요. 제게도 두 딸이 있는데 저도 딸들에게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곤 하지요. 너희들은 시집가지 말라고……. 따님은 남자친구가 없을까요?
"있어요. 제게 말은 하지 않지만……. 감이라는 게 있지요."

- 따님은 엄마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알았나요?
"(딸)알았어요."

-그럼 서로가 알고 있으면서 서로에게 호감 가는 사안이 아닌 것에 대해 대화의 주제로 올리지 않으신 거군요?
"하지만, 딸의 자율성을 막을 수는 없잖아요."

- 잔치국수 같이 먹자고 전화 주는 사윗감을 골라 올 겁니다. 딸과 다툰 적은 없습니까?
"거의 없어요. 보통 모녀간에 다툼이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그렇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 어떤 방법으로 싸움을 피해갈 수 있었나요?
"제가 참는 거지요. 저의 경우도 그렇지만 대부분 부모와의 언쟁은 부모의 잔소리로 부터 발단이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잔소리를 가능하면 하지 않아요."

- 부모의 말씀은 잔소리가 아니라 삶을 먼저 살아온 사람으로서 예상되는 미래의 결과를 앞서 알려주는 보석 같은 조언이지 않나요?
"하지만 딸이 그 말을 받아들일 의사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보석이라도 소용이 없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한두 번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가 반응이 없으면 더 이상 그 주제로 말을 하지 않아요. 그러니 싸움으로 비화되지는 않더라고요."

-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있는 따님의 전공 선택도 모두 따님의 자유의지인가요?
"전혀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경험으로는 그것이 남을 해롭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제일 행복하더라고요."

- 따님은 어떻게 이 전공을 택하게 된 건가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딸이 자신은 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나중의 일이니 저는 그런 학교가 있는 줄도 몰랐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하라'고 답했지요. 그런데 중학교에 와서도 자신은 애니메이션고등학교를 가야하니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애니메이션고등학교로 진학했고 대학에서의 전공도 같은 것이 된 거지요."

오늘 아침 53살의 엄마와 22살의 딸을 통해 '형제와 친구', '엄마와 딸', '딸과 사위'의 즐겁고도 미묘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딸과 모녀의 이번 외출은 남편이 입원한 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모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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