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는 날이 만정중학교 체육대회였다. 체육대회 복장으로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학교 측의 배려로 상담실에서 이루어졌다. 책을 하루에 한 권을 읽는다는 책벌레 소년이었다.
▲ 정회창군 가는 날이 만정중학교 체육대회였다. 체육대회 복장으로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학교 측의 배려로 상담실에서 이루어졌다. 책을 하루에 한 권을 읽는다는 책벌레 소년이었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지난 일에 '만약'이라는 가정을 붙이는 건 어리석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짐은 특히 더 그렇다. 만약에 내가 평소 중앙도서관을 들락날락하지 않았다면, 평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독서감상문 청소년 수상자 리스트를 보지 않았다면, <불량가족레시피>란 책을 읽은 소녀가 눈에 띄지 않았다면, 그 소녀(감상문 최우수작)가 전학가지 않았다면 우리는 만날 일이 없었다.

그렇다. 그 책을 읽은 학생은 둘이었다. 최우수작 소녀가 전학만 가지 않았다면 우린 만날 일이 없었다. 단지 내가 이 소년을 만나고자 한 것은 그가 <불량가족레시피>란 책을 읽었고, 그 책 때문에 입상해서다. 그 책에 집착하는 이유? 그건 내가 최근에 그 책을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책 한 권은 읽어요."

중3 소년이면 제법 어깨가 떡 벌어지고, 수염도 거뭇거뭇 날 줄 알았다. 무뚝뚝한 소년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까 염려도 되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키도 아담하고, 귀여운 외모였다. 말도 곧잘 하는 소년(정회창, 만정중학교 3)이었다.

"그 책 어떻게 선택하게 됐지?" 궁금한 점을 참지 못한 나에게 웃으며 말을 건네 온다. "그냥 제목이 눈에 띄었어요"라고. 그냥이라?

우리를 만나게 해준 책 [불량가족레시피]의 겉표지다. 시종일관 신명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불량가족, 그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 책표지 우리를 만나게 해준 책 [불량가족레시피]의 겉표지다. 시종일관 신명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불량가족, 그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알고 보니 이 소년은 평소 책을 하루에 1권 정도 읽는다고 한다. 평일엔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하루 만에 읽고, 주말엔 공공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다고 했다. 학교에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짬짬이 책을 읽는다고 했다. 재차 확인한 사실이지만, 이 소년은 거의 하루 1권의 책을 읽는 책벌레였다.

그럼 평소 노는 것은? 요즘 청소년들처럼 컴퓨터 게임도 많이 하지 않을까? 대답은 간단했다. 가끔이라고. 학교에서 쉬는 시간 책을 읽고, 집에 가면 학과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나마 컴퓨터는 공부를 위한 참고자료 수집으로 이용한다고 했다. 헉? 어떻게 이런 청소년이 요즘 있을까?

이 친구도 성적이 여전히 스트레스

그렇다고 전혀 컴퓨터 게임과 담 쌓았을까? 그건 아니라고 했다. 자신도 요즘 청소년들이 하는 게임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독서가 더 자신의 구미를 당긴다고. 회창군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공부를 잘하느냐고. 그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네, 좀 해요"라고 답한다. 그가 전교에서 10등 내외의 성적을 유지하는 것은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요즘은 어떤 스트레스가 있나?"고 묻자, 두말하지 않고 성적이라고 했다. 아니 성적? 자신은 성적이 좀 더 올랐으면 좋겠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다고 했다. "있는 사람이 더 하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어떻게 하라고?"라며 농담을 한 나와 회창군은 한참동안 웃었다.

고교 진학도 성적이 높은 곳에 가고 싶다고 했다. 어느 고등학교인지는 비밀로 해달라고 해서 그와 나와의 비밀이 생겼다. 책 하나로 만나서 어느덧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대학진학도 이왕이면 서울 쪽에 있는 대학에 가고자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목표를 세워 매진하는 중이라 했다.

자신의 가족과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경험

이쯤이야기 하니 회창군의 부모님은 어떤 사람일까, 사뭇 궁금했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 늘 책이 많았어요. 아버지가 책을 많이 읽으시거든요."

그러면 그렇지. 아버지의 영향이었구나. 누나는 자신보다 더 많이 책을 읽었다고 했다. 부모님들은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든 존중해준다고 했다. 공지영의 수필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오픈하우스, 2008)>를 생각나게 했다.

<불량가족레시피>와 빗대어 자신의 가족을 표현해보라고 했다. 잠시 생각하던 회창군이 자신의 가족을 <화목가족레시피>라고 이름을 붙였다. 자신을 위해주는 아버지, 자상한 어머니 그리고 항상 자신의 편인 누나라고 했다. 특히 누나는 자신의 편에 서서 말을 들어주고, 지도해주는 둘도 없는 친구라 했다.

욕쟁이 할머니, 폭력대왕 아버지, 가출소녀 언니, 병을 달고 사는 오빠, 불량한 백수건달 삼촌 등의 이야기를 다룬 그 책 <불량가족레시피>. 그 책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회창군과 만났다. 이게 바로 책을 읽는 소득이리라. 전혀 다른 세상에 대한 간접 경험, 그로 인해 자신과 다른 세계에 대한 이해 말이다.

"아저씨는 주변에서 <불량가족레시피>와 같은 가족을 많이 만나봤어. 회창이가 지금의 환경과 노력이라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 다수의 불량스러운(?) 가족과 이웃을 기억하고, 더불어 살았으면 해"라고 내가 잔소리를 좀 늘어놓았다.

영민한 회창군은 바로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늘 생각하고 있어요. 더불어 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찾아보려고 해요"라고. 장차 교사 아니면 증권거래 전문가가 되겠다는 회창군. 그는 아마도 <불량가족레시피>의 딸 주인공 여울이 같은 소녀를 배려하는 교사, 또는 경제파탄으로 인해 허덕이는 가정들을 살리는 경제전문가가 되지 않을까.

책 한 권으로 만난 인연으로 인해 10년 후 그 소년의 모습이 기대된다. 마침 학교 (안성 만정중학교)에 찾아간 날(20일)에 체육대회를 했다. 그날 학생들의 함성이 유난히 우렁찼다.

지금 정회창군이 다니는 만정중학교는 신명나게 체육대회 중이다. 지금 모습은 색다른 줄다리기 현장이다. 여학생들이 먼저 줄다리기를 하고 있으면, 남학생들이 쏜살같이 달려가 자기 편 여학생들 뒤에 가서 줄을 당기는 형식이다.
▲ 체육대회 지금 정회창군이 다니는 만정중학교는 신명나게 체육대회 중이다. 지금 모습은 색다른 줄다리기 현장이다. 여학생들이 먼저 줄다리기를 하고 있으면, 남학생들이 쏜살같이 달려가 자기 편 여학생들 뒤에 가서 줄을 당기는 형식이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태그:#불량가족레시피, #독서, #독서감상문, #만정중학교, #정회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