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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잊지 말자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근처의 홀로코스트 추모비 건립 현장.
 과거를 잊지 말자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근처의 홀로코스트 추모비 건립 현장.
ⓒ 오마이뉴스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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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억을 둘러싼 투쟁이라고 한다. 누가,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며 계승하는지에 따라 역사는 단지 과거사에 그치지 않고, 현재 우리의 생활과 정치·사회·문화의 기본 규범을 이루는 밑바탕이 된다. 더 나아가 이는 후세대 삶의 양식을 규정짓는 중대하고 실천적인 문제들이다.

독일 대통령을 지낸 리하르트 폰 바이제커는 지난 1985년 의회연설에서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사람은 결국 현재도 보지 못한다"며 독일 국민은 '책임을 자각하는 공동체'가 되어야한다고 역설했다. 나치의 폭압과 헌정 민주주의의 파괴, 그리고 홀로코스트(나치의 유태인 대량 학살)의 대가를 다음 세대가 올바르게 치르고 또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전 세대의 역사적 사실들을 기억하는 것이 필수라고 말한 것이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2005년 5월 10일 독일 정부는 종전 60주년을 기념해 수도 베를린의 도심 한복판에 의미심장한 추모공원을 준공했다.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을 속죄하고 치욕스런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베를린에 설립한 새 추모관(Holocaust Mahnmal)이다. 축구장 3개 크기 면적에 마치 관처럼 보이는 직사각형 콘크리트 기둥 2천7백11개를 세워놓은 추모공원 부지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나치 치하에서는 선전상 괴벨스의 지하벙커가 있던 곳이다.

독일 대통령과 총리, 유대인 생존자들이 참석한 개관식에서 볼프강 티어제 하원 의장은 "독일 이외 어떤 나라도 자신의 역사에서 가장 큰 범죄를 수도 한복판에서 기억시키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서 "이곳을 통해 모든 방문객이 진정한 양심에 다다르기를 기대한다"고 역설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1월 "나치 범죄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나치가 자행한 범죄와 2차 대전의 희생자들 그리고 홀로코스트에 영원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독일의 정치 지도자들은 지속적인 '기억 투쟁'을 통해 국민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전범국가인 일본과 그 식민지였던 한국의 '기억 투쟁'은 독일과 딴판이다.

'나치범죄' 잊지 않으려는 독일 정치인들, 한국은 이와 딴판

지난 15일 전남대학교에서 열린 학술토론회에서 "홀로코스트 부인-자유로운 표현에서 인도에 반한 범죄, 전쟁범죄까지"라는 주제로 유럽의 나치 주장 동조자 처벌 사례를 소개한 이재승 교수.
▲ 이재승 교수 지난 15일 전남대학교에서 열린 학술토론회에서 "홀로코스트 부인-자유로운 표현에서 인도에 반한 범죄, 전쟁범죄까지"라는 주제로 유럽의 나치 주장 동조자 처벌 사례를 소개한 이재승 교수.
ⓒ 5.18 기념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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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부 극우논객과 종합편성채널,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왜곡이 이미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단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이들은 차마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저속하고 거친 표현들로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던진 희생영령들을 모독하고 있다. 이들의 악의적 비방과 심각한 사실왜곡은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틀로도 수용하기 어려울 수준이다.

법학자 이재승 교수(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역사) 부인주의자들의 정권 아래 역사를 부인하는 세력이 준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역사 부인자들의 인권억압적이고 차별적인 세계관을 차단하는 일이 중요해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5일 전남대학교에서 열린 '역사 왜곡 시도와 대응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홀로코스트 부인-자유로운 표현에서 인도에 반한 범죄, 전쟁범죄까지"라는 주제로 유럽의 나치 주장 동조자 처벌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인권법 전문가인 이 교수는 "유럽의 경우 역사적 사실 중 하나인 나치의 유태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에 대한 부인 행위와 증오적 표현을 명예훼손죄, 사자명예훼손, 대중선동죄 등으로 규제하고 있다"며 "역사 부인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 부정이 아닌 인종차별, 증오적 표현의 특수 사례로 취급해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20일 오후 <오마이뉴스>가 이 교수와 전화로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독일, 홀로코스트 부인하는 행위 '선동죄'로 처벌"

지난 13일 일간베스트 게시판에 올라온 5.18 광주민주화운동 비하 게시물
 지난 13일 일간베스트 게시판에 올라온 5.18 광주민주화운동 비하 게시물
ⓒ 일간베스트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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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광주민주화운동 왜곡과 희생자 모독 행위가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극우세력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이를 합리화하고 있다.
"사실 부인 행위를 죄로 다스리는 것은 서양 중세의 종교적인 맥락 이외에는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유럽의 경우 2차대전 이후 나치청산 과정에서 나치 잔존세력을 규제하려는 특별한 목적에서 처벌 근거를 마련했다. 명예훼손의 범주로 다룰 수도 있었겠지만,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행위는 바로 선동범죄, 즉 공안질서를 해치는 범죄로 본 것이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와 동구권이 붕괴되면서 극우파, 인종주의자들이 발호하자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 극우논객 지만원씨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 "5·18은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는 1980년 판결에 동의한다", "북한의 특수군이 파견돼 조직적인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됐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프랑스, 오스트리아에서 '다른 제노사이드(학살)'를 부정하는 경우에는 증오의 고취를 규제하는 선동죄로 규제당할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증오적 언동의 규제 필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 경우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아니라 선동죄 유형으로 취급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 역사왜곡뿐만 아니라 희생자 조롱과 모독 행위를 이대로 내버려 두어야 하느냐는 지적들도 확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별로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유럽에선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인종·성·종교 따위에 대한 편파적 발언, 증오 연설), 이 문제를 홀로코스트 부인 행위와 같이 취급하고 있다. 독일 같은 경우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내적인 논리가 인종주의하고 연관돼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증오적 언동으로 바로 이해를 한다. 그래서 독일 같이 양쪽 모두를 처벌하는 나라가 있고, 홀로코스트 부인 행위는 처벌하지 않지만 '헤이트 스피치'는 처벌하는 나라도 있다. 미국만 거의 예외적으로 두 가지 다 벌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 있다."

"지만원의 발언이 무죄라면 국가보안법의 고무찬양도 무죄여야"

-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사진을 가리켜 '홍어를 말리고 있다'거나 '홍어 무침'으로 표현을 하는 것도 다분히 증오적 언동으로 보이는데, 독일의 경우는 이런 표현 자체를 처벌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독일의 경우 헤이트 스피치의 범위가 상당히 열려 있는데, 이와 같은 표현을 집단적, 조직적으로 한다면 헤이트 스피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증오적 표현에 대한 단속은 독일에서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독일은 '방어적 민주주의'라고 해서, 극우든 극좌세력든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민주적 기본질서란 말을 아주 편향된, 특수한 형태의 보수적인 정치적 세계관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아서 오히려 다른 정치세력을 적대적으로 깔아뭉개는 것이 민주적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많다."

-전남대 토론회에서 정치적 극단주의를 중립적으로 규제하지 못하는 법체제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면서 "한국은 좌익을 규제하는 광범위한 법제를 가지고 있지만 극우를 규제하는 논리는 법체제 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는데.
"물론 그런 측면도 있지만, 경찰이나 검찰, 법원 이런 단계에서 뭔가 규율의 의지가 없어서 되지 않는 면이 더 크다고 본다. 예를 들어 대법원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지만원씨에게 무죄를 판결했는데, 이것을 가지고 법원이 자유를 우선시한다는 자유주의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본다면 국가보안법의 이적표현물이나 고무찬양 재판에서도 그렇게 판단을 했해야 맞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은 이상한 자유주의라고 보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 압도적으로 우월성을 주는 것도 아닌."

15일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은 1980년 5월 광주에 남파되었다는 전 북한군 특수부대원 김명국(가명)씨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화면 갈무리 15일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은 1980년 5월 광주에 남파되었다는 전 북한군 특수부대원 김명국(가명)씨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 채널A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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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일 강운태 광주시장이 5·18에 대한 폄훼와 왜곡 행위에 대해서 사법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나는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북한 특수부대가 광주에 남파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국가보안법으로 한번 고발을 해보면 어떨까라고 생각을. 북한군의 전투력을 이렇게 과도하게 평가해서 우리 국민들에게 유포시키고 결과적으로 적을 이롭게 한 것이 아니냐, 이런 측면에서."

- 나치의 홀로코스트, 제주 4·3 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모두 국가권력이 저질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과거청산 법리 측면에서 보자면 진실을 알 권리가 희생자들에게 있다. 5·18만해도 어디서 어떻게 죽은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다. 그런 사람들의 죽음을 어떻게 밝혀내는가도 아직 남은 문제다. 그래서 국가가 그 진실을 생생하게 기억시켜 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현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더 이상 공식 노래로 채택하지 않고 이상하게 왜곡시키는 이유가 오히려 5·18을 생생하게 기억하려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웃음). 그런데 지금 상태로 보면 국가가 부인 세력이다. 정치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 역시 후보시절 인혁당 사건 재판은 두 개였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는가(기자 주 : 재심은 이미 유죄 확정 판결이 났으나 중대한 사실 오인 등이 드러나 과거의 판결을 시정하는 비상구제 절차로 지난해 9월 11일 '인혁당 판결이 두 개'라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발언은 법치 인식의 부재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광주시민에 대한 학살은 심각한 인권유린 행위이고, 5·18은 민주화 운동임을 높이 기념해야 된다' 이렇게 한결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 일부 부인하는 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할 거냐'는 수준의 주의를 환기하는 정도일 텐데, 현재 상태로는 거의 부인주의자들의 정권, 그리고 그 아래서 극우세력들이 활개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상황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가 단순히 '표현의 자유' 문제를 떠나서, 표현을 통한 정치적 투쟁의 공간이라고 본다."


태그:#이재승, #광주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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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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