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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1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 사과의 뜻을 표명하며 절하고 있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1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 사과의 뜻을 표명하며 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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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12일 고개를 숙였다. 정부 출범 초기 인사 파동 사과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사과는 김행 대변인이 대독했지만 이번에는 비서실장이 직접 기자들과 생중계 카메라 앞에 섰다.

청와대가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 귀국 직후 홍보수석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한 후 이틀 만에 다시 대국민사과를 한 것은 '윤창중 파문'이 몰고올 후폭풍이 그만큼 만만치 않다는 위기 의식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정현 정무수석, 곽상도 민정수석,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최순흥 미래전략수석 등이 총출동했다.

대통령의 미국 순방 중 발생한 초유의 대변인 성추행 의혹 사건의 폭발력이 워낙 컸던 것도 사실이지만 파문을 더 크게 키운 것은 청와대다. 청와대는 사태 초기, 이번 사태를 '한 개인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 초래한 일이라고 규정하는 등 안이하게 대응했다.

이남기 홍보수석이 귀국 후 이미 사의를 표명했지만, 이 사실조차 공개하지 않고 달랑 4줄짜리 사과문을 발표하는 데 그쳤다. 게다가 '대통령에게 사과한다'는 표현은 부적절하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결국 청와대는 꼬리자르기식 대응으로는 수습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뒤늦게 깨닫고 나서야 두 번째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번 파문의 책임론이 청와대 전체, 특히 박 대통령의 인사 실패를 비판하는 흐름으로 확산되는 조짐이 보이자 이를 차단하기 위한 의도도 엿보인다.  

두 번째 사과가 나왔지만 여전히 규명돼야 할 문제는 여전히 많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에서 청와대는 사전 예방을 위한 내부 기강 확립은 물론, 사후 위기 대응에서도 허점을 노출하는 등 총체적 무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윤창중 성추행 의혹, 사전 예방은 불가능했나?

박근혜 대통령 미국 방문 기간 중 대사관 여성인턴 성추행 사건으로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 하림각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사건 발생 후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봐야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귀국을 지시해 따랐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자신은 여성 인턴에게 격려 차원에서 허리를 '툭' 쳤을 뿐 문화적인 차이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 "문화적 차이 일 뿐" 윤창중 '성추행' 부인 박근혜 대통령 미국 방문 기간 중 대사관 여성인턴 성추행 사건으로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 하림각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사건 발생 후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봐야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귀국을 지시해 따랐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자신은 여성 인턴에게 격려 차원에서 허리를 '툭' 쳤을 뿐 문화적인 차이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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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방미 전부터 청와대 내부에는 윤 전 대변인의 행실에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윤 전 대변인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 청와대 관계자는 방미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에서는 윤 전 대변인을 옆에서 보좌해 줄 사람도 없는데 (술 먹고) 사고 칠까 걱정된다"며 "윤 전 대변인은 술을 먹으면 자리에 누가 있는지 안 보이는 것처럼 행동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당시는 김행 대변인과 윤 전 대변인이 모두 방미에 따라가는 것으로 결정됐다가 논란 끝에 윤 전 대변인만 가는 것으로 정리됐던 시점이었다. 

사건이 터지자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언젠가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다"는 반응이 나온 것은 이런 청와대 내부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방미를 수행할 대변인으로 그를 골랐고, 어떤 안전장치도 마련하지 않았다.

특히 윤 전 대변인은 미국 현지에서 자신의 임무도 소홀히 했다. 대변인은 공식 브리핑 외에도 방미 중 대통령 참석 행사 현장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기자들에게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기자들과 접촉하는 일이 우선이다.

하지만 방미 기간 동안 기자들 사이에서는 "윤 전 대변인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나왔다. 그는 기자들을 만나는 대신 인턴 직원과 술을 마시다 결국 성추행 의혹에 휘말리는 사고를 쳤다. 이미 사의를 표명했지만 직속상관인 이남기 수석이 관리·감독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위기대응도 낙제점... 파문 덮기에 급급한 청와대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윤창중 청와대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 10일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홍보수석 명의의 4문장짜리 사과문에서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되어 있어서, 사과의 대상에 '대통령'까지 넣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 홍보수석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사과"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윤창중 청와대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 10일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홍보수석 명의의 4문장짜리 사과문에서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되어 있어서, 사과의 대상에 '대통령'까지 넣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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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터지고 난 후 위기 대응에서도 청와대는 우왕좌왕했다. 청와대는 성추행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한 사실을 인지한 후 윤 전 대변인이 도망치 듯 귀국한 과정에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시종일관 귀국은 윤 전 대변인의 개인적인 결정이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미국 현지에서 수사를 받을 수도 있고, 귀국해서 조사 받을 수도 있으니 본인이 판단해서 결정하라"고 했더니 윤 전 대변인이 귀국했다는 것이다.

이남기 수석은 11일 기자들과 만나 "대변인이 모든 지시를 저한테 받고 움직이지 않는다"며 "본인이 알아서 움직이는 영역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청와대 대변인의 귀국 문제가 본인이 알아서 움직이는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 수석은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은 큰 문제고 향후 처리 방향도 중요한데 귀국 여부 결정을 개인에게 맡기고 수석에게는 보고도 안 하고 귀국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묻자 "당시 제가 (박 대통령의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 때문에) 미 의회 의사당 안에 들어가 있었다. 전화기를 못 가지고 들어간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야 이미 갔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동문서답에 가까운 대답을 했다.

특히 윤 전 대변인이 귀국은 홍보수석의 지시였다고 주장하고, 당사자인 이 수석은 귀국을 지시한 적이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부인하면서 급기야 전직 대변인과 상관이 지저분한 진실게임을 벌이는 사태로까지 비화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실제로는 윤 전 대변인의 귀국을 종용했으면서도 겉으로는 귀국을 방치한 편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움직여서 윤 전 대변인을 귀국시켰을 경우 범죄 혐의자를 도피시켰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윤창중 귀국 도운 청와대의 앞뒤 맞지 않는 해명

청와대가 윤 전 대변인의 귀국을 도운 정황은 분명하다. 이남기 수석은 8일(현지 시간) 오전 9시 30분 쯤 전광삼 선임행정관으로부터 성추행 의혹을 처음 보고 받고, 윤 전 대변인과 만나 전 행정관 등 실무진과 함께 귀국 문제를 포함해 논의하라는 지시를 했다.

이후 전 행정관은 윤 전 대변인에게 여권을 전달하라고 워싱턴 문화원 관계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후 전 행정관은 이 수석에게 윤 전 대변인이 여권을 찾아 택시를 타고 떠났고 현재 소재는 파악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전 행정관은 윤 전 대변인에게 수시로 경찰 신고 상황 등 사건 진행 추이를 보고하기도 했다.

윤 전 대변인의 비행기 티켓 발권 과정도 의문이다. 그가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서 예약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자신의 신용카드로 계산하고 발권한 것은 8일 오전 9시 54분이다. 이 수석은 이날 9시 30분 쯤 성추행 사건을 처음 보고받고 윤 전 대변인을 만나 사실 여부를 확인한 후 귀국 문제를 포함해 상의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난 장소인 워싱턴 영빈관에서 덜레스 공항까지는 차량으로 빨라도 30~40분 정도 소요되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 수석의 설명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비행기 티켓을 최초 예약한 게 오전 7시라는 점을 보면 윤 전 대변인의 귀국은 더 일찍 결정됐고, 홍보수석실이 아닌 더 윗선에서 상황을 통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 전 대변인의 귀국을 개인의 결정에 맡겼다고 주장하는 것은 청와대 전체로 책임론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이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청와대 내부의 조직 기강 문란, 상황 대처 미숙이라는 또 다른 비판을 부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청와대는 사실을 규명하기보다 감추기에만 급급한 모양새다. 곽상도 민정수석은 "(귀국 과정에 대해)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어 사실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법적인 문제가 없기 때문에 따질 만한 필요는 없는 것 같다"며 "추가 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 보고 과정도 의문 투성이... 청와대 인적쇄신 불가피

9일(현지시각) 미국을 방문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수행중이던 윤창중 대변인을 전격 경질했다. 이남기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 방미 수행기간 중 개인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됨으로써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보이고 국가의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을 방문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뉴욕행 전용기 내에서 수행원 및 기자들과 인사를 하는 가운데, 박 대통령 뒤로 경질된 윤창중 전 대변인의 모습이 보인다.
▲ 박 대통령 근접 수행하는 윤창중 9일(현지시각) 미국을 방문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수행중이던 윤창중 대변인을 전격 경질했다. 이남기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 방미 수행기간 중 개인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됨으로써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보이고 국가의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을 방문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뉴욕행 전용기 내에서 수행원 및 기자들과 인사를 하는 가운데, 박 대통령 뒤로 경질된 윤창중 전 대변인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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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이라는 중대한 문제가 사건을 인지한 지 26시간이 지난 후에야 대통령에게 보고된 과정도 의문투성이다. 이남기 수석은 종합적인 정보를 가지고 보고하기 위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이후 대통령의 일정이 너무 바빠 보고가 늦어졌다고 해명했지만 쉽게 납득하기는 힘들다. 미국 경찰이 신고를 접수한 후 이 사건은 미 국무성을 통해 주미대사에게까지 통보한 상황이었다.

대통령에게 늑장 보고가 이뤄진 데는 사안의 무게를 판단하는 방미 수행단의 정무적 능력이 부족했거나, 사건이 미국 현지에서 불거질 경우 방미 성과를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귀국 때까지 상황을 숨기려 했거나, 아니면 대통령과 참모들의 심각한 불통이 작용했을 수 있다. 셋 중 하나가 이유일 수도, 세 가지 요인이 모두 작용했을 수 있지만 모두 그냥 묵인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청와대는 이날 허태열 비서실장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는 과정에서도 난맥상을 드러냈다. 허 실장이 기자회견장에 섰을 때 최종본이 아닌 텍스트가 전달된 것이다. 최종본에는 이남기 수석이 사의를 표명했고 미국 측 수사에 청와대가 적극 협조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배포된 자료에는 그 내용이 빠졌다. 허 실장은 즉석에서 이 수석의 사의 표명 사실만 추가해 발표했다.

청와대는 허태열 비서실장의 사과가 파문을 진화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이미 사태는 청와대 전체의 인적쇄신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 수석은 이미 사의를 표했고 허 실장도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한 만큼 청와대 홍보라인 개편을 포함한 인적쇄신은 피해갈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야당에서는 청와대 참모진 물갈이는 물론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여당 내에서도 진상 규명 및 참모진 인책론이 분출하고 있어 '윤창중 파문'의 후폭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모든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윤 전 대변인을 인수위에 이어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한 '불통 인사'의 장본인이 박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이번 파문 수습을 위해서는 박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태그:#윤창중, #허태열, #청와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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