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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건축에서 판테온의 후예는 그 외에도 수 없이 찾을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그 영향력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판테온의 영향을 받은 건물을 다 설명하려면 밤을 새워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빠트리고 갈 수 없다. 아마도 이것이 판테온의 후예로서 현대 건축물 중 최고가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의외로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건물이다.

브로츠와프 백주년 기념관, 사진 상으로는 실감이 나지 않지만 거대한 콘크리트 돔이 브로츠와프 시내 외곽에 우뚝 서 있다.
 브로츠와프 백주년 기념관, 사진 상으로는 실감이 나지 않지만 거대한 콘크리트 돔이 브로츠와프 시내 외곽에 우뚝 서 있다.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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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에 있는 백주년 기념관(Wroclaw Centennial Hall)이다. 막스 베르크(Max Berg)라는 건축가가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독일(프로이센)이 승리한 1813년의 라이프치히 전투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13년에 만든 건물이다. 브로츠와프는 현재 폴란드의 주요 도시 중 하나지만 원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독일 영토였다. 연합국이 2차 대전 이후 포츠담 회담을 통해 이 도시를 폴란드 영토로 만들어 버린 이유는 이곳을 포함한 실레지아 지역이 역사적으로 독일에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막스 베르크가 이 건물을 건축한 것은 독일 국민으로서 독일의 역사적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브로츠와프 출신으로 이 도시가 폴란드로 귀속된 이상 더 이상 그를 독일 건축가라 부를 수는 없다. 그는 이 건물을 만들면서 로마의 판테온에서 강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마치 브루넬레스키가 판테온에서 영감을 얻고 앞에서 본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돔을 완성했듯이 말이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건축공학 기술을 총 결집시켜 이 건물을 새로운 판테온으로 만들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만 2년 만에 당시로서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초현대식 강화 콘크리트 구조물이 세상에 나타났다. 이 건물이 현대 건축물로서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는 2006년 유네스코가 이 건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전면에서 보면 거대한 다층 돔이다. 건물 내부엔 관중 7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로툰다 홀이 자리 잡고 있는데 거기서 보이는 내부 원주의 가장 긴 지름은 69m, 중앙 바닥에서 천정 쿠폴라까지는 42m로 전체적인 크기는 로마 판테온보다는 크지만 높이는 1.3m가 낮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베르크가 원조 판테온에 대한 예의를 그렇게 차린 것인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나는 최근까지 이 건물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룬드대학에 있으면서 건축공학을 전공하는 사람들과 판테온 이야기를 하다가 비로소 이 건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현대판 판테온이 내가 있는 곳에서 불과 1시간 비행거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당장 비행기표를 구했다. 행운인지 저가 항공사의 왕복 티켓 값이 단돈 5만 원! 이렇게 해서 나는 단숨에 브로츠와프로 날아갔다. 판테온 덕분에 '유럽의 숨은 진주'라 불리는 브로츠와프를 이렇게 만나게 됐다.

판테온, 드디어 석굴암까지 오다

판테온이 동양의 건축물에도 영향을 끼쳤을까. 나는 그렇게 본다.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은 로마시대부터 동서양을 연결해 준 실크로드다. 실크로드를 타고 수많은 서양의 문물이 동양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다.

동양 판테온의 최고 결정판은 명대에 세워진 베이징의 천단이다. 천단은 말 그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디테일한 모습이야 다르지만 천단이 보여주는 중국식 돔은 알게 모르게 로마 판테온을 연상시킨다. 명대 정도면 로마 판테온의 존재를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다. 원대에 이미 이탈리아인 마르코폴로가 중국을 다녀갔을 정도니, 로마 판테온의 존재가 중국에 알려졌을 거라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은 추측이다.

중국 베이징의 천단, 동양의 대표적 로툰다다.
 중국 베이징의 천단, 동양의 대표적 로툰다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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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가 나왔으니 한 마디 더 하면 실크로드의 동쪽 끝은 경주다. 따라서 로마의 문물이 경주에서 발견되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경주 고분에서 발견된 유리잔, 소위 로만글라스는 분명한 로마문명의 흔적이다. 통일신라시기 때라면,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문명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제국으로부터 온 많은 물건들이 결국 실크로드의 종착지인 경주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문명 건축술의 핵심인 돔양식도 이 실크로드를 통해 경주까지 오지 않았을까.

이 이야기는 나 같은 비전문가의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미술사학을 하는 분들 중에 공식적으로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있다. 서울대의 이주형 교수가 대표적인데, 이 교수는 우리 석굴암이 아프가니스탄 바미얀 석굴의 영향을 받았고, 바미얀 석굴의 원류가 로마 판테온의 돔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비전문가의 눈으로도 석굴암에서 판테온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 나는 석굴암에서 감각적으로 그 흔적을 발견했다. 비록 그 사이즈는 판테온과 비교할 수 없지만, 돔 천정을 보는 순간 로마의 판테온이 충분히 연상된다. 명확히 다른 것이 있다면 판테온은 돔 중앙이 뚫려 있지만 석굴암은 막혀 있다는 것뿐이다. 육안으로 한 번 직접 보시라. 내 설명이 구구한 사족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석굴암 본존불이 모셔진 공간, 그 위를 보라. 판테온의 돔을 몇 분의 일로 줄여 놓은 것 같지 않은가. 층층이 돌을 쌓아 올렸는데 마지막 돔 중앙 구멍은 뚫지 않고 둥근 돌로 막았다.
 석굴암 본존불이 모셔진 공간, 그 위를 보라. 판테온의 돔을 몇 분의 일로 줄여 놓은 것 같지 않은가. 층층이 돌을 쌓아 올렸는데 마지막 돔 중앙 구멍은 뚫지 않고 둥근 돌로 막았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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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은 한국의 현대 건축물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의 유명 사립대학에 가면 심심치 않게 판테온의 주랑현관(portico)을 보게 된다. 아래 사진을 보라. 대학의 본관 건물로 사용하는 건물의 바깥 모습이다. 이것을 만든 이들은 무엇을 참고하여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건축양식적으로 보면 그 원형은 판테온에서 온 주랑현관임이 틀림없다.

경희대학교 본관
 경희대학교 본관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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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회의사당, 판테온과의 불운한 인연

마지막으로 할 이야기는 우리나라 국회의사당과 관련된 것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가 본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 국회의사당에도 로툰다가 있다. 의사당 본관 건물 중앙에 가면 로툰다라는 홀이 나타나는 데 그곳에서 위를 쳐다보면 우람한 돔 천장을 볼 수 있다. 우리 의사당도 판테온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88도로를 타고 여의도를 지날 때마다 한 마디 한다. "저 국적 없는 의사당 건물 보라"고 말이다.

국회의사당이 준공된 것은 1975년인데, 당시 몇몇 건축가들이 이 의사당 건축에 참여하여 설계안을 제출했다. 결국 최종안은 몇 작품이 절충되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어떤 응모작품에도 돔 설계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 돔은 건축가들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권력자들의 아이디어였다. 당시 건축에 참여했던 건축가들은 '원 설계가 평지붕인데 어떻게 거기에 돔을 올리냐'면서 극력 반대했다. 그러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권력자들의 귀에 그것이 들어갈 리 없었다.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의사당의 돔은 국적 없는 디자인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의사당의 돔은 국적 없는 디자인이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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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알아보기 위해 오래된 신문을 찾았다. 마침 한 신문에서 그것을 다루었던 적이 있다.

'돔' 언져야 하나
평지붕으로 설계됐던 국회의사당 신축설계가 8각형 돔을 올려붙이는 방향으로 억지 변경되면서 최근 건축가 사회를 아연실색하게 하고 있다. 건축가협회(회장 배기형)는 어처구니없는 이번 일이 "외국에 가보니 돔이 있는 건물이 좋아 뵈더라"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현대건축문화를 모르는 얕은 취향에 의한 것이었다"고 지적하면서 "애초 평지붕으로 설계되었던 것에 억지로 돔을 올려붙인다면 보기에 딱한 건물이 되고 말 것"이란 결론과 함께 그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경향신문, 1969. 5. 28.)

아마도 권력자들은 해외 나들이를 하면서 본 선진국의 돔 의사당이 무척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들에겐 우리 건축가들이 만들어 놓은 설계안이 심심했던 것이다. 이런 말을 했을지 모른다. "우리나라 의사당도 미국 의사당처럼 모자(돔) 한 번 씌우지?"라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언뜻 보면 그리스 신전 모양(의사당의 외부 열주는 경회루의 석주를 본떴다고 하나 전체 모습은 신전 모양이지 한국의 어떤 전통 건축물도 의사당의 외부 열주를 연상시키는 것은 없다)의 건물에 거대한 돔 하나가 졸지에 올려졌다. 그리스의 신전과 로마의 판테온이 한국에 와서 한국 특유의 비빔밥 문화에 의해 즉석 결혼을 해 버린 셈이다. 건축도 권력자들의 놀음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을 보면서 나는 얼마 전 베를린에 가서 본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을 떠올린다. 아래 사진을 보시라. 이것이 바로 그 의사당이다.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 의사당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 의사당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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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이 사진을 찍기 위해 나는 추위에 떨며 한 시간 이상을 의사당 앞 잔디 광장에서 기다렸다. 날이 흐려 내가 가지고 간 스마트 폰으로는 도저히 제대로된 사진이 나오질 않았다(독자들이여, 놀라지 마시라. 그동안 내가 문명기행에서 찍은 상당수의 사진이 스마트 폰 사진이었다). 수십 장을 찍고 또 찍으니 그제야 몇 장 쓸만한 게 찍혔다. 여기 사진은 그 중 하나다. 독자들에게 주는 나의 조그만 선물이다.

이 의사당은 원래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고 19세기 말 지은 제국의회 빌딩이 전신인데, 통일독일 이후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기면서 연방의회의 의사당으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1990년대 의사당을 리모델링하면서 제일 크게 논란이 된 점은 종래의 권위적인 의사당 돔을 철거하고 여기에 유리 돔을 얹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결국 이 기상천외한 유리돔은 1999년 독일 연방의회의 입주와 함께 완성되어 독일 국민 아니 전세계 관광객의 눈앞에 서게 되었다.

이 유리돔에는 누구나 올라가 밑을 내려다 볼 수 있다. 그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곳이 바로 의사당 대 회의실이다. 독일 국민들은(나 같은 관광객까지) 국사에 여념이 없는 독일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낱낱이 볼 수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독일 국회의원들은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감시받기 위해,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유리돔을 자진하여 설치한 것이다. 독일 정치인들의 민주의식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의 국회의사당의 돔과 독일 국회의사당의 돔, 그 차이는 무엇일까. 단지 국적 없는 돔, 건축 양식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돔이 올라갔다는 것 그것 하나일까. 그것 하나라면 그저 웃고 넘어가면 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양국 정치인들의 의식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누가 이 나라의 주인인가의 문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의 의미, 바로 그것을 여의도 의사당 돔을 바라보면서 생각한다면…. 그것을 나만의 자학이라고 쉽게 폄하할 수 있을까?


태그:#판테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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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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