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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팝나무 꽃
 조팝나무 꽃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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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가고 있다. 소리없이 왔다가 소리없이 가는 봄은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그 흔적은 오래 가지 않는다. 어느 사이엔가 흔적도 사라지고, 깊어가던 계절은 여름으로 바뀐다.

7일 오후, 죽암천 조팝나무 꽃길을 걸었다. 죽암천은 군포시 대야동에 있는 생태하천이다. 그 길옆으로 조팝나무가 흐드러지게 핀 것을 확인한 건 지난 1일이었다. '근로자의 날'인 그날, 하필이면 인터뷰 약속이 잡혔다. 화창한 봄날이었고, 약속장소는 반월호수 옆의 카페였다.

우리 집에서 약속장소까지 거리는 어림잡아 3km 남짓. 대략 40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 버스를 타려면 대야미역까지 가서 반월호수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야 하지만, 걷기로 했다. 햇빛 좋은 봄날, 농촌 풍경이 펼쳐지는 대야미를 걷는 건 기분 좋은 일 가운데 하나렸다.

걸었다. 그리고 조팝나무 꽃길을 발견(?)했다. 하얀꽃이 화려하게 피어난 꽃길이라니,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건 기본이다. 몇 백 미터 이상 이어진 꽃길을 보면서 저 길을 한 번은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늘 그렇듯이 그런 생각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면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팝나무 꽃길을 일깨워준 이가 있었다. 고양누리길을 걷고 돌아오던 지난 3일, 전화를 받았다. 우리 동네 동장님. 우리 동네는 군포시 대야동. 대야동장님이었다.

죽암천 주변에 조팝나무가 피었다.
 죽암천 주변에 조팝나무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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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죽암천에 조팝나무가 한창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 맞다. 조팝나무 꽃이 죽암천을 화려하게 수놓은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죽암천이 생태하천이에요. 못 보셨으면 한 번 보시라고."

'녹지직' 공무원인 대야동장님은 생태, 환경, 조경에 관심이 많다. 시흥의 갯골공원이 순천만 갈대밭 못지 않은 생태의 보물창고라는 사실을 알려준 이도 바로 대야동장이었다. 그는 개발보다는 보전에 방점이 찍혀야한다는 사실을 늘 강조한다.

7일, 겨우 시간을 냈다. 오후에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섰다. 벚꽃은 금세 지지만 조팝나무 꽃을 최대 2주일은 핀다던가. 그래도 꽃이 지기 전에 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우물쭈물하다가 꽃이 지면 그만 아닌가.

대야미동 장승
 대야미동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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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황량한 황톳빛이던 대야미가 푸르게 살아나고 있었다. 주말농장이 유난히 많은 동네, 대야미동. 수도권 위성도시인 군포시에 속하지만, 중심지와 뚝 떨어져 여전히 농촌을 벗어나지 못하는 동네가 대야미동이다. 대야미동의 중심가는 '대야미역' 주변이고, 대야미역을 벗어나면 흔히 볼 수 있는 농촌 동네다.

대야미역에서 3km 남짓 떨어진 반월호수 주변은 들어선 음식점과 카페 등으로 '유원지' 느낌이 물씬 나는 게 흠이지만.

익숙한 풍경을 눈으로 쫓다가 어느 사이엔가 조팝나무 꽃길로 접어들었다. 진한 꽃향기가 길을 덮고 있었다. 조팝나무는 죽암천을 따라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조팝나무를 죽암천 부근에 식재한 것은 5년 전쯤이라고 한다. 그 나무가 잘 자라 이 봄, 화려하게 꽃을 피운 것이다.

아마도 지난 1일이 조팝나무 꽃이 절정이었나 보다. 꽃은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도 꽃이 완전히 지려면 일주일은 족히 걸리리라. 이따금 부는 바람에 꽃잎이 날렸다. 쌀알 크기의 작은 꽃잎이 부는 바람에 떼지어 공중으로 흩어졌다가 길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꽃잎은 딱 쌀알 크기다.

조팝나무 꽃길
 조팝나무 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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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팝나무 꽃길은 길게 이어진다. 중간에 길이 끊겨 길을 건넜다. 죽암교를 지났고, 다시 조팝나무 꽃길로 들어섰다. 걷기 좋은 꽃길이 길게 이어진다.

갑자기 길 저쪽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 길을 일부러 걸으러 온 사람들이 분명했다. 일행은 여자 셋이었다. 여자들은 죽암천 아래로 내려가고 다시 혼자 남았다. 혼자 걷기에는 정말 아깝다. 이럴 줄 알았으면, 누구라도 불러서 같이 걷는 건데...

조팝나무 꽃만 따라서 걷다 보니, 대야 물 말끔터까지 왔다. 물 말끔터라는 표지판을 여러 번 봤지만 대체 무엇을 하는 데인지 알 수 없었다. 대체 뭐지? 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가 혼자 웃었다. 하수종말처리장이었던 것. 하수종말처리장보다는 어감이 좋다. 물을 말끔하게 다시 만든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렸다?

조팝나무 꽃길을 따라 걸으면 반월호수가 나온다.
 조팝나무 꽃길을 따라 걸으면 반월호수가 나온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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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대야 물 말끔터'에서 반월호수로 이어지고 있었다. 반월 호수 한적한 곳에서 두어 명의 태공이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었다. 지금은 '호수'로 부르고 있지만, 예전에는 반월저수지로 불렸더랬다. 반월호수가 되면서 주변이 말끔하게 단장되었고,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로 변했다.

걸었던 길을 되짚어 왔다. 조팝나무 꽃길을 놔두고 다른 길을 걷는 건, 조만간 지고 말 조팝나무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조팝나무 꽃길에 다시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명의 여자와 마주쳤다. 한 여자는 양산을 쓰고 있었다. 나처럼 조팝나무 꽃길을 걸으러 온 이들이 분명했다.

쌀알 크기의 조팝나무 꽃들이 길 위로 흩어졌다.
 쌀알 크기의 조팝나무 꽃들이 길 위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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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꽃향기가 흩어졌다. 진하디 진한 꽃향기는 오래 머물지 않고 바람에 실려 간다. 여자들이 나와 엇갈려 지나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여자들이 멀어지면서 점으로 변한다.

이 봄날도 저들처럼 저렇게 멀어지다가 종내는 사라지겠지. 문득 가는 봄날이 아쉬워졌다. 지는 조팝나무 꽃이 안타까워졌다. 잘가라, 봄날이여. 잘가라, 조팝나무 꽃이여.


태그:#조팝나무, #대야미동, #죽암천, #대야동, #반월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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