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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월정사 경내. 사진에 보이는 석탑은 천년의 월정사를 지켜온 8각 9층 석탑으로 국보 제48호이다.
 오대산 월정사 경내. 사진에 보이는 석탑은 천년의 월정사를 지켜온 8각 9층 석탑으로 국보 제48호이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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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불기 2557년, 서기 2013년이다. 서기가 예수님이 탄생한 해를 원년으로 하고 있는 데 반해 불기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한 해를 원년으로 하고 있다. 불기를 서기처럼 부처님이 탄생한 해를 원년으로 한다면, 부처님 재세 기간인 80년을 더해 2637년이 될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수천 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불기와 서기를 더해가며 영생하고 있다. 태어난 사람은 너니 나니 할 것 없이 다 죽는다. 죽은 사람들 대개는 흐르는 세월과 함께 사람들 기억에서 시나브로 잊히는 게 보통이다. 아주 부끄럽게도 나는 내가 8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주기를 계산하려면 한참을 더듬거리며 셈해야 한다. 작은 아버지들이나 당숙들이 돌아가신 해는 주기를 셈하는 것조차 가물거린다.

세월과 함께 점차 잊히거나 기억에서 조차 가물거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생전의 가르침으로 후세 사람들 가슴에서 영생하는 이들도 있다. 탄허스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탄허스님의 생애와 가르침이 그렇다. 탄허스님의 일생이 흐르는 세월을 거스르며 되살아나고 있다.

풍파 속에서 시작된 구도의 삶

<탄허 허공을 삼키다>┃지은이 자현 스님┃펴낸곳 민족사┃2013.4.15┃값 1만 3500원
 <탄허 허공을 삼키다>┃지은이 자현 스님┃펴낸곳 민족사┃2013.4.15┃값 1만 3500원
ⓒ 민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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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현스님이 쓰고 민족사가 펴낸 <탄허 허공을 삼키다>는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탄허스님의 일생과 위업을 조명한다.

어떤 사람의 생김새는 몇 장의 사진만 있으면 충분히 알 수가 있다. 이목구비는 물론 신장·두상·머리카락까지도 자세하게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일생은 그렇지 않다. 탄생과 성장 배경은 어떠했으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어떻게 살았고,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는 유물과 기록에 의해서만 알 수가 있다. 

탄허스님은 1913년 1월 15일(음력) 전북 김제 만경에서 독립운동가인 율제 김홍규 선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6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기 시작해 <주역>을 500번이나 읽고, <장자>를 3000번이나 읽었다고 전해질 만큼 한학 실력을 탄탄히 갖추고 22살의 나이에 오대산 상원사에서 평생을 수행하신 한암 스님을 은사로 하여 득도(得度)한 스님이다. 

<주역>이 어떤 책인가? 공자가 즐겨 읽느라 죽간(책)을 맨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데서 유래해 '책을 열심히 읽는다'는 걸 의미하는 위편삼철의 주인공이 바로 <주역>이다.

탄허스님께서 생존해 계시던 세월은 역사적 격변기였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을 맞고, 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한국전쟁을 견뎌야 하는 세월이었다. 불교계 또한 우여곡절 많은 역사만큼이나 왜색 불교 퇴치와 불교정화 운동 등으로 평탄치 않은 세월을 보냈다. 그런 풍파의 세월 속에서 출가해 구도의 삶을 살기 시작한 탄허스님의 나날은 거친 돌을 다듬어 거울을 만드는 탁마의 세월과 같았다.

법당 백 채 짓는 것보다 스님 공부시키는 게 중요

탄허스님의 일생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신화엄경합론> 번역에 매진할 정도로 후학들을 위한 교육으로 점철됐다. 그리고 그의 일생은 교육에 소용될 교재를 편찬하기 위한 세월이기도 했다.

"동국역경원 개원식에서, 스님은 '법당 100채를 짓는 것보다 스님들을 공부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교육적인 소신과 관련된 명연설을 남기게 된다. 이 말은 이후 널리 회자되면서, 탄허스님의 정신과 한국불교의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분명히 해주고 있다."(본문 105쪽)

흔히들 교육에 투자하는 걸 인재불사라고 한다. 말로만 하는 인재불사는 쉽다. "공부하라"는 말을 밥 먹듯 하고, 교육을 위한 시설을 한두 개만 지으면 된다. 하지만 솔선수범하는 인재불사는 결코 녹록지 않다. 탄허스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인재불사를 실천하셨다. 강사가 돼 스님들을 교육하고, 종교인 최초로 국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을 만큼 한국출판역사에 길이 남을 위업도 달성했다.

1983년, 세수 71세, 법랍 49세로 입적하셨음에도 탄신 100주년이라는 타이틀로 조명될 만큼 큰 발자국을 남긴 탄허스님은 교육적 소신과 역경 출판물을 남겼다.

탄허스님, 10·26-무장공비 침투를 예견하다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은 사리탑이 아니고 무덤형이다.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은 사리탑이 아니고 무덤형이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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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스님께서 생전에 보이셨던 예지력 또한 공부하고 닦은 수행의 결과들이다. 튼실하게 다져진 한학, 부처님 가르침으로 터득한 지혜의 천안으로 얻은 예화(例話)들이다.     

탄허스님은 1968년 10월 30일에 있었던 울진·삼천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10월 초에 미리 예견해 10년째 집필 중이던 6만2500장의 원고지를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삼척 영은사로 옮겨 화를 피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스님은 보안대에 불려가 추궁을 당하는 일까지 겪었다. 스님의 예지력이야말로 관음보살의 천안통이며 보현보살의 실천행이었다.  

"탄허스님은 1970년대 초 10월 26일에 발생할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를 예견한다. 또 돌아가시는 1983년에서 8년 뒤에야 발생하는 구소련의 붕괴(1991)와 금강산 관광(1998)을 예지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이는 모두 변화를 통한 한민족의 자긍과 도약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본문 129쪽 중)

자현 스님이 <탄허 허공을 삼키다>에서 기록하고 있는 탄허스님은 점점 닮고 싶어지는 큰바위 얼굴을 갖고 있다. 탄허스님의 구도 행각을 증빙할 수 있는 사진과 기록들이 붓놀림처럼 섬세하게 들어가 있어 읽어내려가는 페이지만큼 탄허스님에 대한 윤곽과 음영이 또렷해진다. 윤곽과 음영이 또렷한 그림은 따라 그리기 쉽고, 따라 그리기 쉬운 모습은 자신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탄허 허공을 삼키다>에는 탄허스님의 생애뿐 아니라 오대산의 역사와 문수화엄까지 아우르고 있다. 탄허스님의 생애와 구도 행각은 물론 한국불교사의 성지인 오대산 역사와 문수화엄을 더듬다 보면 문수보살도 친견하게 되고 탄허스님도 조금은 닮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탄허 허공을 삼키다>(자현스님 씀 | 민족사 | 2013.04. | 1만3500원)



탄허 허공을 삼키다 - 시대의 선각자 탄허 큰스님의 생애와 오대산 불교 이야기

자현 스님 지음, 민족사(2013)


태그:#탄허 허공을 삼키다, #자현스님, #민족사, #오대산, #상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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