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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꽃의 정원이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왕비와 여러 후궁들이 사용했던 목욕장이 있던 탓에, 물의 궁전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 물의 궁전, 따만 사리(Taman Sari) 본래 꽃의 정원이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왕비와 여러 후궁들이 사용했던 목욕장이 있던 탓에, 물의 궁전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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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는 '섬들의 나라'라는 별칭에 걸맞게 1만3600개 이상의 섬들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도서국가다. 그 중 수도가 자와 섬(Jawa·흔히 java라고 한다) 위쪽에 위치한 자카르타이며 자와 섬의 중간에 욕야카르타(Yokyakarta·족자카르타)가 있다.

족자라고도 짧게 줄여 불리기도 하는 이 곳을 한국인들은 흔히 경주에 많이 비유한다. 유네스코 등재 세계문화유산들인 동아시아의 최대 힌두사원, 쁘람빠난(Prambanan)과 석가모니의 일대기가 부조로 아름답게 장식돼 있는 불교사원 보로부두르(Borobudur)로 인해 더 그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술탄이 살던 왕궁과 별궁이 있어 옛 자와의 영화를 느낄 수 있는 유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기도 하며 이슬람 대학 및 각 전문학교 등 대학교들이 밀집된 학술도시기도 하다.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이 몰리는 관광도시고 그만큼 여행하기에 편리하고 숙소들 또한 다양하다.

여행자들의 거리 말리오보로는 밤에도 활기가 넘친다.
▲ 밤의 말리오보로 거리 여행자들의 거리 말리오보로는 밤에도 활기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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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에 8000원부터 4만 원 정도의 대중 숙소들이 밀집해있는 곳, 말리오보로 거리를 아침 일찍부터 홀로 나섰다. 말리오보로 거리를 쭉 걸어서술탄이 살던 크라톤 궁전을 둘러본 후, 별궁 따만사리를 가보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었다.

자전거 인력거, 베짝.
▲ 베짝 자전거 인력거, 베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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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짝, 베짝(자전거를 개조한 인력거)!"이라고 명료하게 호객하는 소리를 뒤로하고, 거리 구경이 지칠 때 즈음 궁전은 나타났다. 술탄의 역사를 보여주는 그곳은 외국인 관광객들보단 현지 여행객들에게 더인상 깊을 듯 싶다. 술탄의 역사와 함께 인도네시아 근대화에 대한 부분을 느낄 수 있으므로.

정작 나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전통음악 가믈란을 연주하는 노인들이었다. 각자의 역할을 갖고, 느리지만 진중하게 연주하는 모습이 매혹적이어서 정신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순음악으로도 연주되지만, 주로 무용 · 연극의 반주로서 중요시되고 있다.
▲ 인도네시아 전통 오케스트라, 순음악으로도 연주되지만, 주로 무용 · 연극의 반주로서 중요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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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음악 가믈란(Gamelan)을 연주하는 노인의 모습이 느리지만, 진중하다.
▲ 연주하는 노인 전통음악 가믈란(Gamelan)을 연주하는 노인의 모습이 느리지만, 진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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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평화로운 홀로 여행은 그걸로 끝이었다. '물의 궁전'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따만사리를 가는 길에 인도네시아 여정을 통틀어, 가장 무례했던 사람을 만났으니 말이다.

베짝의 운전기사 탓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도를 보며 따만사리를 걸어가다 지쳐서 이용한, 베짝의 기사가 엉뚱한 길에 내려줬던 것이다. 물론 나중에 알고보니 따만사리를 갈 수는 있는 길이었지만 초행길이라 홀로 찾아갈 수 없는 위치였다. 그 사실을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베짝 기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 말리오보로 거리의 분위기를 즐기며 야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 야식을 즐기는 사람들 곳곳에 말리오보로 거리의 분위기를 즐기며 야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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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면 된다고요?"
"응, 저기, 저 골목으로 가면 따만사리가 나와."

마침 골목은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는 아기자기한 골목이었다. 널려있는 빨래들과, 아이들의 자전거, 벽에 그려진 벽화로 미뤄보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따만사리는 멀지 않았을 것 같았다. 여행에서는 여정 자체를 즐기는 나이기에 카메라를 벗삼아 한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그 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따만사리 가지? 이쪽으로 가면 돼."
"응. 난 괜찮아. 고마워. 내가 알아서 갈게."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고 있는 내 앞에 남자가 따라 오라는 손동작을 하며, 말을 건다. 괜찮다는 대답에도 가지 않고 기다린다. 그리고 카메라 셔터에 남자가 걸린다.

생과일을 물과 섞어 갈아주기도 하고, 원하는 분말을 사면 그대로 만들어 마실 수 있는 거리의 가판대.
▲ 음료 가판대 생과일을 물과 섞어 갈아주기도 하고, 원하는 분말을 사면 그대로 만들어 마실 수 있는 거리의 가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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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혼자 다니는 걸 즐기는 편이라서... 따만사리를 가는 것은 맞는데, 이렇게 천천히 놀면서 갈 거야.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게 좋을 듯해."
"괜찮아. 사진 찍어. 여기서 기다리면 되니까."

이 남자, 포기하지 않는다. 슬슬 거슬리기 시작한다.

"저기... 골목이 좁아서 카메라에 당신 모습이 나와서 그러는데, 그냥 가주면 안될까?"

거절의 말을 한 후, 시선처리도 민망한 터라 남자에게서 등을 돌렸다. 골목 입구쪽의 벽화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어서 아예 남자에게 신경을 끄고 있었다.

아주 좁은 골목임에도 벽화로 인해 지루함이 없다. 카메라 앵글에 잡힌 인도네시아에서 제일 무례한 남자.
▲ 재미난 벽화 아주 좁은 골목임에도 벽화로 인해 지루함이 없다. 카메라 앵글에 잡힌 인도네시아에서 제일 무례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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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등을 돌려 보니 남자는 그대로 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뭐라고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언뜻 들어보니 "빡, 빡"이란다. 그리고는 난 잠시 생각했다. '이 남자가 내 성을 어찌 알았지? 내가 통성명을 했던가?'

학생 시절부터 남자 동기들이 성을 된소리로 발음하던 게 익숙해져서 '빡서롸"라는 발음이 익숙했다. 그러나 잠시 후 남자 말에 귀를 기울이고보니, 그는 가열차게 'fuck'을 발음하던 것이었으며 '지옥'이 들어간 문장과 인도네시아를 당장 떠나라는 비수를 품은 말들을 뱉어내고 있었다.

(* 다음 회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12년 4월부터 2013년 4월에 걸친 2회의 인도네시아 종단여행을 바탕으로 합니다. 현지 장소의 표기는 현지에서 이용하는 발음을 기준으로 합니다.



태그:#크라톤, #따만사리 궁전, #족자카르타, #인도네시아,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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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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