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5월 3일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여러 작품들을 만났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 김지곤 감독의 <할매-시멘트 정원>도 그중 하나. 이 작품은 부산 산복도로에서 50년 가까운 시간을 살았던 할매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할매들은 마을 재개발 과정에서 이사를 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빈 집이 늘어나는 마을에서 그들이 떠나기 전까지도 그들이 누려온 공동체의 온기를 따스하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 영화제 기간중에 김지곤 감독을 만났다. 

# <할매-시멘트 정원>에 대하여

- 처음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부산이라는 곳의 한 단면을 소개하고 싶었다. 부산에서 동시상영극장을 찍었는데, 군대까지 다녀온 뒤 영화를 만들었다.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산복도로(산복도로는 산의 중턱(腹)을 지나는 도로를 말하는데 부산에 이런 산복도로가 많은 것은 지형적 특성도 있지만 6.25 한국전쟁때 피난민들이 거주하던 데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를 배경으로 뭔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영화에 나오는 할매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개발 과정에서 삶터를 떠나야하는 '할매'들의 모습을 담은 <할매-시멘트 정원>
▲ 김지곤 감독의 <할매-시멘트 정원>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개발 과정에서 삶터를 떠나야하는 '할매'들의 모습을 담은 <할매-시멘트 정원>
ⓒ 김지곤

관련사진보기


- 할매들은 어떻게 섭외했나?
"2010년 2월쯤. 우연히 그 동네를 걸어다니다가 만났다. 제일 처음에 할머니들은 우리가 도둑놈이거나 사기꾼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 동네엔 젊은이도 많지 않고, '누구집 손자'라고 거짓말하고 뭘 훔쳐가거나 사회복지사라고 속이고 판매하는 등 잡도둑이 무척 많았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몇 번이나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탁주 할매가 그럼 나를 찍으라고 하면서 찍게 된 것이다."

- 영상에 보면 탁주집 손님으로 안경잡이 할아버지가 나오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과 현 집권당에 대해 구수하면서도 신랄하게 비판을 하는 장면이 있다. 촬영하는데 부담은 없었나?
"큰 부담은 없었다. 그 할아버지는 탁주마시러 탁주할매집에 가끔 오는 손님인데, 그 분을 어디서 찾겠나. (웃음) 좀 의외였던 건, 할아버지가 구수하게 욕을 하는 장면에서 부산 관객은 절반정도 웃고, 절반은 무덤덤했는데 전주에서는 관객들이 빵빵 터지는 거다. 지역간에도 이렇게 다르구나 라고 생각했다."

- 영상속에 KBS TV <6시 내고향>이 곧잘 출연한다. 의도적인가?
"처음에 의도한 건 아니었다. 할매들이 <6시 내고향> 왕팬이다. 어느날 영상에 <6시 내고향> 소리가 잡혔는데, 들어보니까 요즘 '고향'의 현실과는 맞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연설명. 영화속에선 여름비가 내리는 어느날 산복도로 '청바지 할매'가 스텝들에게 국수를 말아주는 장면이 있다. 마침 그 시간이 <6시 내고향>방영시간이었는데, 마침 거기에서도 '고향의 국수'가 소개됐다. 그런데 호박 스파게티였던 것.

과연 그게 우리 고향의 맛일까라는 생각이 들며, 텔레비전을 비롯해 매스컴에서 우리의 실제 삶터의 모습을 왜곡하고 포장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고향의 국수는 멸치 국물에 훌훌 말아먹는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맛일텐데 말이다.

#기록한다는 것

<할매>를 상영한 뒤 김지곤 감독은 부산시로부터 은근한 압력(?)을 받았다. 영화를 한 번 보고싶으니 필름을 가지고 시청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김지곤 감독은 '보고싶으면 영화상영할 때 와서 볼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김 감독은 조건을 내걸었다. 시청에 가서 상영을 할테니 그 장면을 촬영하겠다는 것. 시청측에서는 나중에 연락을 준다고 했지만 끝내 연락이 없었다. 부산발전연구원으로 초청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 부산발전연구원의 특강에 참여한 한 사람은 김지곤 감독에게 산복도로 개발을 왜 반대하냐고 물었다.

김지곤 감독
 김지곤 감독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반대도 찬성도 아니에요. 산복도로에 살던 할머니들은 그곳에서 오랜 시간동안 살았던 분들이거든요. 하루 아침에 삶터를 빼앗기게 생겼는데 신문이나 TV에선 산복도로 개발을 '산복도로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자꾸 한쪽 면만 보여줘요.

나는 그 이면에 숨어있는 다른 면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적어도 카메라를 들고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이라면 그냥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거든요. 우리나라는 다른 면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무조건 '딴지건다'며 곱지않게 봐요. 이게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라니까요. 판단은 어디까지나 관객의 몫 아닌가요?"

김지곤 감독은 부산토박이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이후 독립영화를 만들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동시상영관 극장에 대한 다큐멘터리 <낯선꿈들(2008)>을 찍었고 <할매-시멘트 정원>의 전신이랄 수 있는 <할매(2011)>를 발표했다.

부산독립영화제와 후쿠오카 독립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알려진 이름이지만 전주지역 관객들에게는 낯설다. 그는 지금 '탁주조합''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월간-할매(http://blog.naver.com/gonsmovie)>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매월 한 편씩 할매들에 대한 영상을 올린다. 그에게 <할매-시멘트정원>은 끝난 이야기가 아니고, 진행형이다.

- 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일단 관으로부터 지원을 받게되면, 어느 일정한 시기까지 완성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가 아직 정리 안 됐는데 무조건 만들어 내야한다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런 기한이나 조건에 구애받고 싶지않다.

- 독립영화를 찍겠다는 생각은 언제했나?
"중학교 3학년에 선생님께서 어떤 영화를 보여주셨는데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영상이었다. 그 영화를 보고 원래는 방송국 PD가 되고싶었다. 대학시절에 한 PD와 이야기 나눴는데 PD되지 말라고 하더라(웃음)."

- 공동체나 사라지는 기억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나?
"특별히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문제들을 지나칠 수 없단 생각이다. 적어도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찍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다보면 서로서로 힘이 되어준다."

산복도로에서 쫓겨난 할매들은 지금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이사한지 8개월이 다 되도록 산복도로는 여전히 그대로다. 당장 내일이라도 개발할 것처럼 이사를 독촉했지만, 아직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없다. 아예 할매들이 사는 동네로 이사온 김지곤 감독, 그는 <월간 할매>를 통해 할매들의 이야기를 계속 보여 줄 생각이다. 이렇다 할 시작도 끝도 없다. 그에게 산복도로의 할매들은 촬영의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살가운 우리 할매들일 뿐이다.

"할매들을 찍으면서, 다른 작품도 함께 촬영하고 있어요. <악사들>이라는 제목으로 촬영하고있는데, 부산의 유흥업소에서 밴드를 연주하는 분들의 얘기예요. 그냥 일단 찍어요. 찍으면서 저도 많이 배우고, 그들 눈에 비친 제 모습도 반성도 하고 있어요... 작품요? 언젠가는 나오겠죠. 중요한 건 제가 지금 계속 하고있다는 거예요."

김지곤 감독은 인터뷰를 하면서 '하다보면.... 하다보면... 언젠가 되겠죠'라는 말을 자주 했다. 책정된 예산으로 정해진 기한까지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 아니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이웃의 삶에 대한 애정과 기록에 대한 집념이 없는 한, 보여줄 수 없는 뚝심있는 다큐멘터리 감독의 모습이다. 그에게 지금 중요한 건 '하고 있다'는 것이다.


태그:#할매 시멘트 정원, #김지곤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