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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의 한 공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신발을 만들고 있는 모습.
 개성공단의 한 공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신발을 만들고 있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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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시 개성공단은 북한의 기습남침 시간을 지체시키고, 북한군 움직임을 사전에 포착하기 쉽게 하여 국군이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게 해준다. (중략) 그래서 전문가들은 개전 초기에 전력 상실이 가장 큰 현대전의 특징으로 볼 때 개성공단의 안보적 가치는 국군 몇 개 사단과도 바꾸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고 말한다."(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개성공단 자리에 북한이 2군단, 6사단을 비롯한, 두 개 사단 병력, 포병 여단이 주둔했던 지역을 뒤로 물린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10~15km를 송악산 뒤로 물러갔단 말이죠. 그만큼 사실 수도권의 안전이 좋아진 거죠. 그렇기 때문에 북쪽 입장에서 보면 사실 개성은 경비병력 정도만 있고. 화력과 주 병력이 뒤로 물러나 있기 때문에 자기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안보 취약지점이다, 이렇게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폐쇄 위기에 놓인 개성공단의 안보적 가치가 다시 조명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개성공단이 북한군의 기습 능력을 약화시키고 무력충돌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 그동안 남북한 긴장완화에 기여해왔다는 점을 들어 경제적 득실로만 따지기 어려운 측면이 크다는 견해를 밝혔다.

북한은 2003년 공단 착공 이후 개성과 판문점 인근에 전진 배치돼 있던 인민군 6사단과 64사단, 62포병여단을 송악산 이북과 개풍군 일대로 재배치했다. 특히 현재 공단이 자리 잡은 벌판 지역에 주둔하던 인민군 6사단은 지난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 전쟁 일촉즉발로까지 가며 한미 연합군과 대치했던 부대다.

개성공단 건설로 북한군 2개 사단·1개 포병여단 북으로 물러나

4개 보병연대와 1개 포병연대, 탱크대대와 고사포 대대, 경보병대대로 구성된 인민군 6사단은 한국전 당시 남침의 주력부대로 유사시 서울침공을 위한 기습공격 부대이자 한미 연합전력의 평양 진격을 막는 임무를 맡고 있다. 또 62포병여단은 170㎜ 자주포와 240㎜ 방사포 등 장사정포로 무장하고 서울을 위협하고 있다.

64사단은 원래 양강도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였지만 지난 1990년대 말 이 지역에 이동배치된 것이 확인돼 한국군 정보당국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바 있다. 이밖에도 공단이 들어서기 전 개성 지역에는 3개 박격포 대대와 화학대대 등 인민군 2군단 직할부대들이 산재해 있었다.

개성공단 건설에 따른 북한군의 재배치에 대해 "남한으로 치자면 파주 이북에 육군 병사를 한 명도 남겨두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조치"(함택영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공단이 들어선 후 이곳에 주둔하던 북한군 병력은 사실상 경비 병력만 남게 된 셈이다.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북한 군부는 1999년 개성공단 문제가 거론됐을 때부터 자신들의 군사적 요충지인 개성을 남측에 내주는 것에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2년 4월 임동원 당시 대통령 특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경의선의 조속한 연결을 설득하자 김 위원장은 리명수 북한군 작전국장을 불러 지시하면서 "군부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농담조로 말하기도 했다.

경의선 연결에 반발했던 남북 강경세력, 왜?

지난 2007년 5월 17일 경의선 문산역에서 열린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 공식 기념행사 당사. 사진은 56년 만에 경의선 열차가 문산역을 출발하는 모습.
 지난 2007년 5월 17일 경의선 문산역에서 열린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 공식 기념행사 당사. 사진은 56년 만에 경의선 열차가 문산역을 출발하는 모습.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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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 보수세력도 개성공단 조성을 위한 경의선 연결과 도로 건설에 대해 반발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 소장이다. 육군 대령 출신의 지 소장은 경의선 연결은 북한이 쳐들어 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라며 "개성-문산 축선에는 지뢰·대(對)전차 장애물·영구진지·대규모 병력이 밀집돼 있어 유사시 남침하는 인민군과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철로와 도로를 뚫어주면 지금까지 투자한 모든 방어시설이 의미를 잃게 된다, 서울은 불과 5시간 이내에 점령되고 5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미국인과 일본인이 인질로 잡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남북의 보수·강경 세력이 모두 개성공단의 건설과 이에 따른 경의선 연결에 반대했다는 사실은 아주 흥미롭다. 이런 우려는 모두 과거의 경험에 기인한다.

북위 38도선 이남의 개성은 한국전쟁 이전에는 한국 땅이었지만, 전쟁 전부터 남북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개성 북방의 송악산과 서쪽의 오봉산, 남쪽의 진봉산을 잇는 주변 능선은 개성을 반월형으로 감싸고 있는 전술적 요지였기 때문에 북한군은 이 일대에 진지를 구축하고 이 지역의 전술적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뒤늦게 국군이 진지 공사에 착수하자 북한군은 갖가지 방법으로 공사를 방해하다가 계획적인 공격을 감행, 1949년 5월 4일 남북한 군 사이에 최초의 대규모 군사충돌이 벌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송악산 전투다. 국군이 재탈환하고, 북한군이 반격하고, 국군이 다시 육탄특공대를 투입하는 등 나흘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국군 제1사단과 인민군 제1사단 사이에 벌어졌던 이 전투로 쌍방에서 수백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한국전쟁 이전부터 대규모 군사충돌 벌어졌던 개성

이듬해인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면남침을 개시했을 때 서울로 이어지는 개성-문산 축선은 북한군 기계화 부대의 주요 남침로였다. 당시 이 지역을 방어하고 있던 국군 1사단은 제 11, 12, 13 연대의 3개 연대로 황해도 연백군의 청단에서부터 경기도 파주의 적성에 이르는 90 여Km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개성-문산 축선으로 들이닥친 북한군은 제203 전차연대(T-34전차 40대)의 지원을 받는 인민군 1사단 전체와 인민군 6사단의 2개 연대였다.

개전 당일 강력한 기습에 직면한 국군 1사단의 방어진지는 급속하게 붕괴됐으며, 서해안에서부터 개성 동북방을 담당하고 있던 제12연대는 인민군 공격 시작 6시간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13연대와 사단예비로 있던 11연대의 분전으로 1사단은 4일 동안 서울의 서북방을 가까스로 방어할 수 있었지만, 결국 28일 중화기와 중장비를 버리고 개인화기만 휴대한 채로 한강을 건너 뿔뿔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10년 6월 MBC가 한국전 60주년을 맞아 방영한 <로드 넘버원>은 바로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라남도 목포를 출발해 평안북도 의주까지 이어지는 국도 1호선이 지나는 곳이 바로 개성인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는 북한군 전진 배치로 이어질 가능성 커

지난해 9월 25일 오전 개성공단으로 통하는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도로. 무장한 군인들이 철문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9월 25일 오전 개성공단으로 통하는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도로. 무장한 군인들이 철문을 지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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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이후에도 한반도 서부에 위치한 서울과 평양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개성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국군 1개 사단이 이 곳에 배치돼 있었지만, 지금은 1개 보병군단과 1개 기계화군단이 방어를 담당하고 있다.

북한군도 1개 보병 군단과 1개 기계화군단, 1개 전차군단을 배치해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 안에서도 군사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된 것이다. 화기의 위력을 감안하면 이곳의 군사적 긴장상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개성-문산 축선은 서울로 진입하는 최단 경로(65km)이면서, 동시에 평양-개성(170km)은 자동차로 불과 두 시간 거리다. 북한 군부가 이곳을 내주는 것에 강력 반발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군으로선 자신들의 군사행동시 서울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개성공단이야말로 목의 가시 같은 존재이면서, 반대로 평양을 향해 뻥 뚫려 있는 안보 취약지역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의 폐쇄는 북쪽으로 물러났던 북한군의 전진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곧 남북 관계를 지난 2000년 6·15 공동선언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게 될 것이 확실하다. 이는 남측이 서부전선에 화력을 집중시킨 상황에서 북측이 개성과 같은 군사적 요충지를 마냥 내버려둘 수 있겠느냐는 군사적 시각에 따른 것이다.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중단된 금강산관광 사업을 통해 경험했듯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한번 닫은 문을 다시 열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게 될 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북보다는 상대적으로 남이 지켜야 할 가치가 많고 평화를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개성공단의 폐쇄로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북측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


태그:#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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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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