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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 포스터
 KBS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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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유럽 혁명의 시기 <공산당선언>이라는 책을 통해서 혁명의 주체는 프롤레타리아트(노동자)라고 선언했다. 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 전 유럽에 걸쳐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 가장 억압받고 착취 받는 계급을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라 지칭한 것이다.

아직 영국 이외 나라에서는 대량의 산업 노동자들이 늘어나지 않았지만 마르크스는 머지 않는 미래를 내다보며 노동자의 단결이 이런 자본주의의 파렴치한 역사를 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20세기는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유럽)과 절대왕정에 대한 노동자들의 혁명(러시아)의 역사였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된 현대 사회에서 과연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이 존재할까?

필자가 보기에는 KBS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이 이 물음에 대답을 던져준다.

"누구나 한때 크리스마스트리인 줄 알 때가 있다. 하지만 곧 자신은 그 트리를 밝히던 수많은 전구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더 중요한 진실을 알게 된다. 크리스마스트리 전구에도 급수가 있다."

<직장의 신> 7회에서 비정규직 사원은 이렇게 독백한다. 그 설명을 통해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지만 각자 연봉도 다르고 직책도 다양해 임금 이외에도 각 직급별 차별이 다양하게 존재함을 보여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 비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대립, 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의 대립, 부잣집 딸과 지방의 평범한 딸의 대립 등 드라마는 더 이상 노동자는 하나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분화된 것이다.

"정규직은 OO씨! 비정규직은 언니!"

KBS 2TV <직장의 신>의 미스김(김혜수 분).
 KBS 2TV <직장의 신>의 미스김(김혜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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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Y장 기업 정규직 팀장 장규직(오지호 분)은 비정규직을 회사의 하찮은 존재로 보는 대표적인 비호감 등장인물이다. 장규직은 절대 비정규직 직원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장규직은 비정규직 직원은 우리의 가족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비정규직 미스김(김혜수 분)을 '어이 김씨', '언니' 라고 부르며 동료로 대우해주지 않는다.

3개월 계약해서 잠시 일하다 가는 비정규직에게 정규직 사원과 같은 대우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비정규직 직원들은 시간 외 업무를 강요당하고, 임금 차별, 성적 희롱의 대상이 되지만 찍 소리 하지 못한다.

드라마의 정규직 신입사원 금빛나(전혜빈 분)와 비정규직 신입 정주리(정유미 분)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인생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노력과 열정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빛나는 은행장의 딸로 곱게 자란 부잣집 딸이다. 30살 평생 지하철을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고 매번 전용 운전수가 회사까지 고급 승용차로 데려다 준다.

심지어 밥을 한 끼 먹어도 수 십 만원짜리 레스토랑에서 먹고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이대, 서울대 등 명문대를 졸업해 정규직 사원으로 일한다. 하지만 주리의 인생은 180도 반대다. 평범한 지방의 딸로 태어나서 지방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정규직 사원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막무가내로 올라왔다.

백도 없고 돈도 없는 주리는 단칸방 자취방에서 거주하고 학자금 대출 3500만원의 빚 독촉 전화에 시달린다. 첫 월급을 모두 대출 빚과 생활비로 내는 가난한 30대의 인생을 보여준다. 그들의 삶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개인 노력의 여부와 상관없이 결정됐다는 것을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다.

Y장의 황 부장(김응수 분)과 고 과장(김기천 분)은 30년지기 친구이다. 두 사람은 같은 날에 입사한 회사 동기다. 하지만 현재 한 명은 부장 한 명은 과장이다. 그리고 직급의 차이를 넘어서 고 과장은 드라마 9화에서 정리해고 대상자로 사장에게 지명되기도 한다.

정리해고 대상자로 지명된 고 과장에게 황 부장은 술 한잔 건네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9화에서 고 과장은 이런 황 부장의 고민을 모른 채 술 한잔 받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며 30년 세월을 회고한다.

드라마가 한 발 더 나간 것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직원 간의 문제만 조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 극심해지고 있는 정규직 직원 간의 문제 또한 그리고 있다. 정규직으로 입사해 평생직장으로 여기고 다녔지만, 50대가 되면 정리해고를 당하는 현실이다.

미스김, 새로운 연대 만들 수 있을까

드라마에서 가장 모호한 캐릭터는 바로 미스김이다. Y장 3개월 비정규직 직원으로 들어왔지만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와 다르다. 시간 외 수당 없이는 절대 업무를 초과하지 않으며 회사 사람들과 개인 친분은 사절, 정규직 노동자로 채용하겠다는 부장에게 "당신들과 같은 노예가 되기 싫다"고 잘라 말하며 거절한다.

그리고 포크레인 운전, 조산사 자격증 등을 지닌 원더우먼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미스김에 대한 사연은, 과거 정규직 사원 시절 정리해고를 당하면서 여러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미스김의 캐릭터를 통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설움을 시청자는 해소하고 있다. 시간외 업무를 진행 했을 때 철저한 업무 수당 청구서를 팀장에게 내밀거나, 여성 직원을 무시하고 비정규직을 하찮게 대하는 장규직 팀장을 놀림감으로 만들어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조금 더 세부적인 현실과 그 이후에 대해 상상하고자 노력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은 사실 현대 사회의 자본과 노동자의 대립을 분화한 것이다. 자본은 효율성을 위해서 비정규직을 양산했고 노동자들은 그들 사이의 장벽을 만들고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혁명을 일으킬 프롤레타리아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극의 초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극의 중반부부터는 그들 사이의 공통의 이해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23일 방송된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미스김(김혜수 분)이 장규직(오지호 분)에게 소주 한잔을 건네고 있다.
 지난 23일 방송된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미스김(김혜수 분)이 장규직(오지호 분)에게 소주 한잔을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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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인 예로 8화에서 장규직이 비정규직 직원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 사실을 부장에게 보고하는 것을 놓고 미스김과 씨름 내기를 하는 장면이다. 장규직은 결정적인 순간에 미스김에게 의도적으로 넘어지면서 게임에서 져준다.

장규직은 "회사의 멍멍이도 회사에서 해야 할 도리가 있다"라고 말하며 회사를 챙기는 자신의 처지와 비정규직이지만 소속 팀원을 챙기려는 상사의 모습 사이에서의 고뇌를 털어놓는다. 미스김은 장규직의 고뇌에 소주 한 잔을 건넨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프롤레타리아트 단결의 시대는 지나갔다. 하지만 현재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정리해고 등 불안정한 노동자가 양상되는 시대에서 더이상 안정적인 노동자는 없다.

드라마는 비정규 불안정노동자(비정규직과 미래 정리해고될 정규직 등) 모두 비슷한 처지고 그들 간의 분화는 더 이상 진행되면 안 된다고 넌지시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구조의 문제에 저항할 것에 대한 계몽적 태도보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그들 간의 인간적 유대에서 출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1830년에 그려진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라는 그림이 <직장의 신> 포스터와 흡사하다. 미스김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으로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태그:#직장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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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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