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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대전 중앙시장 먹자골목에서 난생처음 먹어보았던 노릇노릇한 튀김 닭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 많던 튀김 닭집들은 다 사라지고 어린 시절 봤던 그 방식으로 닭 튀김을 구워내는 곳은 단 한 곳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대전 중앙시장 먹자골목에서 난생처음 먹어보았던 노릇노릇한 튀김 닭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 많던 튀김 닭집들은 다 사라지고 어린 시절 봤던 그 방식으로 닭 튀김을 구워내는 곳은 단 한 곳뿐이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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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절,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없는 한두 가지 특별한 음식에 대한 맛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내게도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닭튀김을 처음 접했던 40여 년 전, 유년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40여 년이나 지난 세월의 맛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냐고요? 거기에는 고소한 닭튀김 맛과 더불어 그 어떤 사연이 양념처럼 버무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누런 콧물 찔찔 흘리고 다니던 재마루(대전시 중구 옥계동) 촌놈이 징검다리 건너 산내 버스길, 흙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 따라 대전 중앙시장 먹자골목에서 난생처음 닭튀김을 맛봤던 것입니다.

어쩌다 명절 때나 제사상 위에 놓인 백숙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습니다. 그 어린 촌놈이 어떻게 혼자서 중앙시장을 찾았냐고요? 촌놈이 그럴 용기는 둘째 치고 어디 튀김 닭 사 먹을 돈이라도 있었겠습니까? 북적거리는 시장통에서 어리바리한 셋째 아들놈 잃어버릴까봐 꼭 잡은 엄니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것이지요. 

평생 농사를 지어오다가 농토가 신작로로 변하자 농기구 대신 술잔을 들고 세월을 보내시다 환갑 넘기자마자 세상을 떠난 아버지. 어린 시절 엄니는 하루라도 쉬지 않고 온갖 일을 하셨습니다. 내가 태어날 무렵에는 두부 목판을 머리에 이고 대전 가마니 시장으로 나섰고, 생활 형편이 나아지면서 구멍가게를 꾸려 7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랴 중앙시장을 당신 집 드나들 듯했습니다.

아버지와 엄니는 그 많은 자식들을 어떻게 입히고 먹여 살렸을까요. 명절 때가 되면 엄니의 머리에는 엄니의 체구보다 더 커 보이는 짐 보따리가 얹혀 있었습니다. 자식들을 위한 신발이며 옷가지들이었습니다. 엄니가 어린 나를 형제들 몰래 대전 중앙시장 먹자골목에 자리한 튀김 닭집으로 이끌고 간 그날은 아마 명절을 앞둔 어느 날이었을 것입니다.

40년 전 그 맛 찾아 시장에 갔습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튀김 닭집들이 즐비했던 대전중앙시장 먹자골목.
 30년 전까지만 해도 튀김 닭집들이 즐비했던 대전중앙시장 먹자골목.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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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중반이 다 된 나는 40년 전 그 튀김 집을 찾기 위해 지난 5일 대전 중앙시장 먹자골목을 찾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 이후 처음 찾는 먹자골목이 아니었습니다. 먹자골목에 들어서자 뒤늦게 대학문을 두드린 나이 많은 대학생이 돼 주머니에 용돈이 생기며 먹자골목에서 비틀거렸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무지막지하게 곤봉을 휘두르던 백골단과 매캐한 최루가스를 뿜어대며 쥐약 먹은 미친개처럼 골목골목을 휘젓던 '지랄탄'에 쫓겨 눈물 콧물 쏟아내며 내달리던 그 먹자골목. 주머니 사정이 따라 길거리 좌판 순대 집에서 순대 한 접시 시켜놓고 친구 후배들과 함께 진창 눌러 앉아 소주로 배를 채워가며 갈아엎어야 할 시국을 향해 분노의 술잔을 들기도 했습니다.

젊은 혈기에 취해 비틀거리며 늦은 밤거리를 헤매고 다녔던 그 시절의 먹자골목. 지금도 변함없이 늘어서 있는 길거리 순대 집이 그렇듯 먹자골목의 모습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는 것을 금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먹거리 즐비한 골목골목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줄줄이 늘어서 있던 튀김 닭 집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엄니 손에 이끌려 찾아갔을 때는 아래층 손님을 다 수용할 수 없어 비좁은 이층 다락방으로 올라가야 할 정도로 튀김 닭집은 사람들로 넘쳐 났습니다.

대전의 튀김 닭집의 역사가 얼마나 됐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그 무렵 한창 인기를 끌었던 모양입니다. 지금이야 동네방네 온갖 종류의 양념 치킨 집들로 넘쳐 나고 있지만 그 시절의 튀김 닭집은 아마 중앙시장 먹자골목이 전부였을 것입니다.

정작 '대전'이 들어간 간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대전에 모여든 전국각지 사람들의 출신을 말해주듯 함경도·강원도·전라도 등 각 지방 이름이 적힌 간판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 먹자골목에서 두 군데의 튀김 닭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영업을 시작한 지 몇 년이 채 안된 튀김 집과 '서울 치킨'이라는 간판이 내걸린 오래된 튀김 닭집이 있었습니다.

"본래는 서울 집, 서울 닭집이었는데 지금은 다들 치킨이라고 하잖아요. 우리도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춰 치킨집으로 바꿨지요."

"방송 보고 오는 손님? 중요하지 않습니다"

먹자골목에서 30년 동안 한결같이 튀김 닭을 튀겨오고 있는 '서울 치킨' 주인장 한봉휘(70)씨.
 먹자골목에서 30년 동안 한결같이 튀김 닭을 튀겨오고 있는 '서울 치킨' 주인장 한봉휘(70)씨.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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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방식 그대로 커다란 가마솥 뚜껑에서 펄펄 끓는 기름에 닭을 튀기고 있는 한 봉휘씨. 그의 고향이 서울이라서 서울 치킨이라 이름 지었답니다. 얼핏 보기에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주인장의 나이가 70세라고 해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은 가스불을 이용하지만 예전에는 다들 연탄불로 기름을 끓여 튀겼지요."
"연탄불로 서서히 튀겼던 예전의 그 튀김 닭이 더 맛있었겠네요. 제가 어렸을 때 그 튀김 닭을 먹었었던 것 같은데..."
"아니지요. 열이 약하면 잘 튀겨지지 않습니다. 그만큼 맛이 덜하죠. 그때는 먹을 게 귀해서 다 맛있었으니까요."

예전에 사용하던 튀김용 기름도 다릅니다. 예전에는 흔히 '쇼팅'이라 불리웠던 돼지비계 기름과 같은 값싼 동물성 기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보다 훨씬 가격이 비싼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닭을 직접 잡아 튀겼는데 지금은 조류독감 때문에 도계장에서 검열을 거친 닭들만을 취급합니다."

지금은 공장에서 물건들을 대량 생산하듯 흔하디흔한 게 닭입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아무런 검열을 거치지 않았어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닭 먹고 죽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습니다. 어쨌든 먹거리들이 넘쳐난다는 것은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닌 듯합니다. 표 나게 서울 말씨를 쓰는 안주인은 단골손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방송에도 나갔었는데 방송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입으로 손님들 입맛으로 소문이 나는 게 중요합니다. 손님이 손님을 불러들여야 합니다. 내가 잔소리 쳐도 손님이 찾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냄새가 나는 손님, 손님 대접 받으려면 비싼 집으로 가라 합니다. 돈 몇 푼 있다고 거드름 피우는, 인간답지 않은 손님은 필요 없습니다. 먹을 가치도 없습니다. 그런 손님은 받지 않습니다. 우리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단골손님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밥 먹여 줍니다. 재래시장은 뜨내기손님보다는 단골손님이 많아야 합니다. 단골손님 없으면 굶어 죽습니다."

서울 치킨에도 2층으로 오르는 비좁은 계단이 있었습니다. 비좁은 계단을 타고 오른 다락 손님방에는 대여섯 개의 탁자가 보입니다. 40여 년 전, 엄니의 손에 이끌려 튀김 닭을 먹었던 곳이 바로 이런 곳이었습니다.

"예전에 먹자골목 튀김 닭집들이 한창 성행할 때 열 곳 가까이 있습니다. 그 중 아래 위층에서 영업하는 곳이 몇 군데 있었지요. 우리가 서울 닭집으로 자리 잡기 이 전에도 튀김 닭집을 했었던 곳이니까, 선생이 찾고 있는 어린 시절 그곳이었을 수도 있지요."

먹자골목에서 장사를 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지금은 2층까지 사용하던 튀김 닭집이 다 사라지고 밤이 되면 서울 치킨 한 곳에만 불이 켜진다고 합니다. 밤이 되면 줄을 설 정도로 많은 손님들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 닭집은 배달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튀김 닭을 먹고 가는 사람들 보다는 미리 주문을 해놓고 직접 찾아가는 단골손님들이 많다고 합니다.

공공연한 비밀... '튀김 닭 먹었다고 말하지 마라잉'

서울치킨 손님들은 대부분 단골손님이랍니다. 이 닭집은 배달을 하지 않기 때문에 손님들이 미리 주문을 해놓고 직접 찾아간다고 합니다.
 서울치킨 손님들은 대부분 단골손님이랍니다. 이 닭집은 배달을 하지 않기 때문에 손님들이 미리 주문을 해놓고 직접 찾아간다고 합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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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한낮이라 손님이 없는 텅 빈 다락방에 우두커니 서서 튀김 닭 반 마리를 시켜놓고 허겁지겁 먹어대던 어린 나를 바라봅니다. 난생처음 먹어 보는 튀김 닭. 엄니는 그 맛난 튀김 닭을 입에 대지도 않고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내 모습만 내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튀김 닭집에서 나와 엄니는 내 입에 묻은 기름을 닦아 주시며 그러셨습니다.

"집에 가서 튀김 닭 먹었다고 말하지 마라잉."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을 때 튀김 닭 얘기가 나왔는데 나뿐만 아니라 몇몇 형제들은 엄니의 손에 이끌려 중앙시장 먹자골목 어딘가의 튀김 닭집에 갔었다고 합니다. '집에 가서 튀김 닭 먹었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엄니의 당부와 더불어.

어린 자식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엄니가 눈시울 붉게 떠오르는 순간, "튀김 닭 한 마리 싸 주세요"라고 하려다가 입을 닫아 버렸습니다. 팔순을 넘긴 지 이미 오래인 엄니. 아래위 틀니로 고생하시는 엄니는 더 이상 닭튀김을 드실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츠 대전 tv'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태그:#맛난 이야기, #유년의 튀김 닭, #대전중앙시장 먹자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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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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