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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 일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한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 공격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배의 전화가 오기까지 일베라는 곳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베라는 곳이 있다는 걸 언론 기사를 통해 알고만 있었다.

그런데 일개 시민기자인 내가 그곳에서 공격 당하고 있다니, 다소 놀랐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사로 쓰는 내가 왜 그들에게 공격을 당할까?

일베사이트에 올라온 <오마이뉴스> 기사를 비난하는 글. 직장에서 일하다 암 등 희귀질병에 걸렸다고 호소하는 해고노동자들 사진 밑에 올라온 비난글이다.
 일베사이트에 올라온 <오마이뉴스> 기사를 비난하는 글. 직장에서 일하다 암 등 희귀질병에 걸렸다고 호소하는 해고노동자들 사진 밑에 올라온 비난글이다.
ⓒ 인터넷 사이트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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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기사 내용은 제대로 읽지 않았나?

일베의 공격은 지난 3월 8일 <오마이뉴스>에 내 인터뷰 기사가 나가면서 시작됐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리는 시민기자 중에서 매주 한 명씩 돌아가면서 소개하는 코너인 '찜! e시민기자'에  내 인터뷰 기사가 실린 것을 공격한 것이다.

해당 기사는 제목은 "보수신문 행동대장이 '빨갱이 기자'가 됐습니다". 이 기사에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로 비판적인 시각으로 기사를 쓰다보니 지역의 지인들조차 나를 '빨갱이'로 지칭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사를 읽으면 제목이 이해된다.

일베에 해당 기사가 스크랩된 시각은 지난 3월 9일 오전 8시 47분. 확인해 보니 비슷한 시간에 <오마이뉴스> 해당기사에도 나를 비난하는 댓글이 여럿 달렸다.

놀라운 건 일베 사이트에서 본 글들과 이를 옹호하는 댓글의 내용들이었다. 특정 지역과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사정없이 비하하는가 하면, 진보적 성향의 연예인, 특히 일반 여성들도 비난의 주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도가 지나치다 못해 넘쳐났다.

이상한 건, '이 사이트가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것. '우리민족끼리' 사이트를 해킹한 어나니머스의 공개된 회원정보를 바탕으로 신상털기를 한 일베는, 20일에도 지난 10일자 <한겨례> 신문의 북한 관련 기사를 스크랩한 후, 해당 기자 메일을 첨부해 국정원에 신고했다는 내용이 자랑스럽게 올라와 있다.

해당 기사는 <한겨례> 워싱턴 특파원이 쓴 기사로,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것으로 읽혔다. 하지만 일베에서는 해당 기자에게 죄수번호를 매겨가며 '한겨레 기자 검거'라고 했다. 국정원에 좌익사범 등 혐의로 신고했다며 인정샷도 올렸고, 아래에는 수많은 비난 댓글이 달렸는데, 내게는 '행게이 ㅍㅌㅊ?'라는 알 수 없는 댓글이 더 이상해 보였다.

일베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니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올린 몇 개의 기사가 더 스크랩 돼 있었다. 그 중 한 기사는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원자력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깊어지는 가운데 원전에 둘러싸여 있는 울산 울주군 해당 지역 일부 주민들이 원전 자율유치를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자기가 사는 지역내에 인근 도시 포함 10여기의 원전이 둘러싸고 있다면 해당지역 주민으로서는 불안한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만일 서울 강남지역을 10여기의 원전이 둘러 싸고 있고,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면 불안하지 않을까?

하지만 일베에서는 '명불허전' 이라는 댓글을 달아 이 기사를 비난하는 타당성을 보였다. 앞서 국정원에 신고한 <한겨례> 기자나 이 기사에 공통점이 있다면 '북한'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점. 그것이 국정원에 신고하거나 비난할 타당성이 있을까? 이 기사 비난글에서 '명불허전' 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얼마전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게시판에서 본 내 기사에 달린 댓글 '명불허전'이 연상됐다.

18대 대선 이틀전인 12월 17일 박사모 게시판에 올라온 일베의 정리된 글들. 야당과 야당 후보, 진보성향 정치인과 연예인을 비난하는 글들이다
 18대 대선 이틀전인 12월 17일 박사모 게시판에 올라온 일베의 정리된 글들. 야당과 야당 후보, 진보성향 정치인과 연예인을 비난하는 글들이다
ⓒ 인터넷 사이트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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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연유로 박사모에서 사이트를 검색하다 보니 일베와 관련한 놀랄만한 내용이 박사모 목격됐다. 지난 18대 대선 이틀전인 12월 17일 박사모 게시판에 달린 '정사일베 자료 70% 정리, 산업화 필수 자료집'이라는 글인데, 일베 사이트를 링크한 후 박사모 회원들에게 '필수 저장자료'라고 알린 내용이다.

박사모 사이트에 올라온글은, 그동안 일베에 올라온 수백 개의 글을 정리한 것인데, 전직 대통령과 진보적 성향의 인사, 연예인들에 대한 비난글을 포함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인 사안들에 대해 저속한 용어로 비난한 것이 주를 이뤘다. 해당 글들의 공통점은, 여당과 대선 후보에는 우호적이지만 그 수가 적은데 반해, 야당과 후보에게는 글의 수나 내용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로 저급한 것.

결국 후배의 전화 한통으로 검색에 검색을 하다보니 '아, 이런 일도 있었구나' 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됐다.

만일 내가 그런 글들을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 2005년부터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리기 전, 평소 알고 지내던 변호사에게 명예훼손에 관한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변호사는 "'만일 그 사람이 진짜 도둑놈이라 할 지 라도 '그는 도둑놈' 하고 글을 쓰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 충고 했다. 그만큼 인터넷에 글을 쓴다는 것은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단, 그 글의 내용과 목적이 공익을 위한 것일 경우 재판 과정에서 참작이 될 수 있다는 것.

이후 나는 3000개 가량의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올리면서 두 차례 명예훼손으로 제소를 당한 바 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할 때 상대방의 반론과 편집진의 철저한 검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가 나간 후 당사자는 '기사로 말미암아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제소한 것.

제소를 당한 후 언론중재위 혹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한번 더 돌아보는 계기가 됐고, 그 때문에 당사자에게 갖는 미안함이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내 사례와 비교해 볼 때 일베의 글은 상당히 우려할만한 수준의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래도 잡혀가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명예훼손은 현존인은 물론 이미 돌아가신 고인에게도 공히 해당된다. 또한 고인의 유족과 그를 아꼈던 사람들에게도 큰 상처를 줄 수 있으므로, 그들이 문제 삼는다면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난 2008년 이후, 우리사회 여기저기서 표현의 자유가 업악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국가 경제를 우려한 글을 올린 미네르바가 구속되고, 수많은 네트즌들이 정부에 반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구속되거나 벌금을 물었다. 지난 5년간 그런 아픔을 겪으면서도 우리 사회가 지켜내고자 했던 것은 바로 표현의 자유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그 정당성이 보장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대다수 시민의 공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일들을 더 확대해 욕지거리와 이상한 어투로 당사자를 모욕하거나 비하하는 것은 정당한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이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하고, 대다수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용어와 내용을 담을 때 비로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태그:#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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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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