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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폭발음이 난 뒤, 5초 후에 또 다른 폭발음이 들렸다. 즉시 밖으로 뛰쳐 나가보니 길바닥이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15일(현지 시각)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 테러 현장에 있었던 부르스 멘델슨씨가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2001년 9월 11일 테러 이후 미국 본토에 일어난 첫 테러로 충격은 매우 컸다. 이날 보스턴 보일스턴가에서 일어난 테러로 최소 3명이 숨지고 180여 명이 다쳤다. 숨진 사람 중에는 8살 어린이도 있었다.
 
우리 신문사들은 17일 자 신문에서 참혹한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 한 장을 실었다. 내가 구독한 신문도 2면에 컬러 사진을 그대로 실었다. 생생한 현장 사진을 '편집'없이 독자들에게 전달해 얼마나 참혹한 테러였는지 보여주는 것을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컬러 사진을 본 순간 첫 느낌은 '불편'했고, 머리에는 "꼭 컬러로 실어야 했을까"였다. 흑백 사진으로 처리해도 테러 현장을 모습을 전달하는 데 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혹시 흑백으로 처리한 신문는 없는지 궁금했다. 있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17일 1면 ''미국의 정신' 보스턴 테러 당해다' 제목 기사 사진을 흑백으로 처리했다. <조선일보>는 흑백으로 처리한 이유를  "유혈이 낭자한 원본 사진은 게재하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흑백 처리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사진 때문에 몇 번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지난해 7월 19일 태풍 '카눈'이 왔을 때 부산 해운대 모습이라고 실은 사진은 2009년 태풍 '모라꽃' 사진이었다. 같은 해 9월에는 전남 나주 성폭행범으로 올린 사진은 아무 죄도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밝혀져 큰 파문이 일었다. 이에 앞서 지난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사진은 단순한 오보가 아니라 '포삽질'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런 경험이 작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참혹한 보스턴 폭탄 테러 현장은 흑백 처리했다. '모라꽃'과 '잘못된 범인 사진', '연평도 포격 사진'은 강하게 비판했지만, 보스턴 흑백 사진만은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판 컬러 사진이 너무 참혹했기 때문이다.
 
신문은 어른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본다.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신문을 보는 사람은 초등학교 6학년인 막둥이다. 현관 앞에 있는 신문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몰라도, 17일 신문은 내가 직접 가져와 이날 막둥이는 2면에 실린 그 사진을 보지 못했다. 아빠가 목소리만 조금 크게 내도 무서워하는 막둥이다. 당연히 끔찍한 테러 현장을 생생하게 담은 사진을 봤다면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일보> 1면 사진은 테러 현장을 생생하게 보도하면서도 독자들에게 심리적 충격은 덜 받게 한다. 이런 점에서 흑백처리는 분명 박수받을 일이다. 또 테러로 숨진 8살 어린이 사진도 그대로 보도됐다. 물론 미국 언론이 보도했기 때문에 우리 언론도 사진을 보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어린이가 아니더라도 테러로 희생된 아이 사진을 싣는 것이 적절한지 따져봐야 한다.
 
물론 컬러와 흑백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유혈이 낭자한 원본 사진은 게재하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흑백 처리했다"면서 흑백 처리한 것은 다른 언론들도 한 번쯤은 생각할 필요는 분명 있다.

태그:#조선일보, #신문보도사진, #보스턴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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