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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에 따른 긴급조치 피해자 설명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설명회에 앞서 긴급조치 피해자들을 기리며 묵념을 했다.
 4월 1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에 따른 긴급조치 피해자 설명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설명회에 앞서 긴급조치 피해자들을 기리며 묵념을 했다.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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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전, 장재설(68)씨는 출근 28일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상사는 그에게 '반국가적 행동을 한 사람의 아들이 여기서 일할 수 없다'며 사표를 쓰라고 요구했다. 장씨의 아버지가 버스에서 "지금 세상에는 돈과 권력만 있으면 양반이다, 고령 박씨도 박정희 대통령이 나왔으니 이 나라 최고 양반이 됐다"고 말한 뒤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 등으로 체포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65세였던 아버지는 서대문교도소에서 8개월형을 살았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아버지는 잠자리에서 옷을 벗지 않았다. 누가 잡으러 오면 곧바로 도망가야 한다고 했다. 세상을 뜨는 날까지 변함없었다.

38년 후, 장씨는 1일 서울 중구 민주노동총연맹 대회의실에서 열린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에 따른 긴급조치 피해자 설명회'에 참석했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고, 정당한 보상을 받는 길을 찾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이날 설명회는 지난 몇 년간 긴급조치 위헌 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아래 민변) 긴급조치 변호단이 마련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장씨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60여명 참석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긴급조치 희생자는 1500여명에 이른다. 이제 본격적인 재심 청구 및 국가배상 청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설명회는 그 움직임을 예고하는 자리였다.

국가배상 받으려면 '입증' 문제 등 남아

4월 1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에 따른 긴급조치 피해자 설명회'가 열렸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긴급조치 1호와 2호, 9호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4월 1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에 따른 긴급조치 피해자 설명회'가 열렸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긴급조치 1호와 2호, 9호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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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가 시행된 날부터 4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만큼, 설명회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중간 중간 "마이크 소리 좀 키워 달라"고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민변은 2008년 긴급조치 변호단을 꾸려 이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부각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단장을 맡고 있는 이석태 변호사는 "그때는 긴급조치 문제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민변 내부에선 '긴급조치야말로 국민들의 기본권을 빼앗고, 민주주의를 늦춘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했다"며 "3월 21일, 드디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긴급조치) 위헌 결정이 나왔다"고 말했다.

긴급조치 피해자들은 이제 산 하나를 넘었을 뿐이다. 피해자들은 앞으로 무죄를 입증받는 형사재심과 피해를 보상받는 형사보상, 국가배상 절차를 밟아야 한다. 민변 긴급조치 변호단은 우선 4월 30일까지 1차로 긴급조치 1호와 4호, 7호, 9호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면소판결 또는 기소유예 등 불이익을 받은 사람들의 신청을 받아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 드는 비용은 모두 민변에서 부담하되, 국가배상 청구 소송비용은 피해자가 먼저 받을 형사보상금에서 충당할 예정이다.

조영선 변호사는 "형사재심과 형사보상은 위헌 판결로 '시간의 문제'가 됐을 뿐 충분히 가능해졌지만, 국가배상은 입증 문제가 있다"며 "법 논리나 향후 나올 쟁점 등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변 긴급조치 변호단은 조만간 국가배상 절차를 진행하고, 법리 등을 고민할 전담(TF)팀을 구성한다. 한편 긴급조치 피해자 대책위원회와 함께 피해자들의 기부를 받아 '긴급조치공익재단'을 설립하는 일도 계획하고 있다.

조 변호사는 "(60~70명 정도 설명회에 참석한 것을 보면) 긴급조치의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긴급조치 관련 소송은 형사보상이나 국가배상을 받는 차원보다는 저항의 역사, 고난의 역사를 우리 가슴에 새겨놓는다는 뜻으로 시작했다"며 "이런 아픔을 되새기지 않고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할 수 있도록 같이 힘쓰길 바란다"고 밝혔다.


태그:#긴급조치,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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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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