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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울시청광장에서 3월 30일, 전국해고자의 날 행사가 진행되었다.
▲ 전국해고자의 날 서울시청광장에서 3월 30일, 전국해고자의 날 행사가 진행되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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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몰랐습니다. 오늘이 전국해고자의 날인지 저도 몰랐습니다.

'봄날은 왔어 해고는 갔어'

정말 봄날이 왔습니다. 흐리고 다소 쌀쌀한 기운이 돌긴했지만, 봄날은 현실입니다. 그런데 아직 '해고'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는 글귀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 전국해고자의 날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는 글귀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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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만 살 수 있는 세상', 이것이 얼마나 아픈 절규인지는 아픔을 겪어본 분이 아니면 모르겠지요.

1970년대말, 유신체제가 극에 달했을 때 교회에서 부르던 '가스펠송'이 있었습니다.

'미칠 것 같은 이 세상, 미칠 것 같은 이세상~ 주여, 내 기도 들으소서...'

그런 노래였는데 그때는 그 속에 담긴 의미들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냥 재미로 따라불렀지요. 왜 미칠 것 같은 세상이고, 미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인지는 청년이 되고 나서야 인식의 틀에 들어왔고, 중년이 돼서야 미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당신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것들

그들이 땀흘려 일하고자 할 때, 일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 전국해고자의 날 그들이 땀흘려 일하고자 할 때, 일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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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해고자의 숫자는 엄청날 것입니다.

그럼에도 시청앞 광장 한 켠, 100여 명 남짓 모여 행사를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의 아픔은 단지 그들의 아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아픔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인데 우리는 얼마나 무관심한지 말입니다.

하긴, 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걸 알지 못했다고, 그 현장에 없었다고 잘못이라고 말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세상을 향해 눈을 똑바로 뜨지 않으면 보지 못하고 지나갈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귀를 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고, 보이지 않고 듣지 못하면 할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벙어리가 된다는 것이지요.

드럼서클과 함께하는 젬배공연 모습, 드럼서클은 레크레이션 드럼연주의 한 형태로 심리적인 치유를 위한 공연이기도 하다. 해고노동자들의 아픔이 이 공연으로 조금이라도 치유되길 바란다.
▲ 전국해고자의 날 드럼서클과 함께하는 젬배공연 모습, 드럼서클은 레크레이션 드럼연주의 한 형태로 심리적인 치유를 위한 공연이기도 하다. 해고노동자들의 아픔이 이 공연으로 조금이라도 치유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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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내일은 부활절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가 하신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고, 귀머거리의 귀를 들리게 하고, 벙어리의 혀를 풀어주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것이 단순히 육체적인 병을 고쳐준 것이 아닙니다. 그 행간에 있는 의미들을 보지 못하고, 사이비 이단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친다고 예수를 팔지만, 거기에 구원이 있을까요.

드럼서클, 해고노동자들이 드럼을 치며 환하게 웃습니다.

처음 드럼을 치는 분도 있을 터인데, 능숙한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박자를 맞춰갑니다. 살아있는 예술,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예술이 천박해서가 아니라, 이런 예술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이지요.

그들의 마음을 담아 그림을 함께 완성하고 있다.
▲ 전국해고자의 날 그들의 마음을 담아 그림을 함께 완성하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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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이 다가와서 그런지 자꾸 종교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예수의 치유기적은 교회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 치유의 기적이란, 이땅의 고난당하는 자들을 보지 못하는 교인들의 눈을 뜨게 하는 일이요, 고난당하는 이들의 소리에 귀막은 이들에게 그 소리를 듣게 하는 것이요, 그런 세상을 보고 들었노라 외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적이 교회에 없으니 'MB 장로' 같은 이를 한국교회는 낳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중병에 걸려있는 그런 류의 신앙인들을 양산해 내는 대형 보수교회는 회개하지 않습니다.

'봄날은 왔어... 해고는 갔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대한민국, 거꾸로 걸린 현수막의 내용이 과거인 듯한 우리 정치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 과거와 현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대한민국, 거꾸로 걸린 현수막의 내용이 과거인 듯한 우리 정치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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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를 지켜보다 광화문역으로 오는 길에 우연찮게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봅니다. '현재 속에 들어있는 과거'라는 제목을 붙여봤는데 거꾸로 보이는 현수막의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이미 청산돼야 마땅한 '정치보복'도 여전히 살아있고, 1970년대 유신독재의 망령이 부활한 듯한 현실, 과거에 이미 사라졌어야 할 망령이 부활한 듯한 기분이 오싹합니다.

오늘은 전국해고자의 날이었습니다.

'봄날은 왔어, 해고는 갔어'

그런데 저는 어느 시인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꽃만 피면 봄이냐
감흥없는 사내도 품으면 님이냐'(최명란 <꽃지는 소리>)

봄날은 왔는데, 해고는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있습니다. 이 죽어버려야 할 망령같은 해고는 죽지 않고 남아 우리 곁에 남아있고, 과거의 망령들이 다시 부활하는 듯해 흐린 봄날처럼 마음도 흐렸습니다.


태그:#전국해고자의 날, #복직, #드럼서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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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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