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누리꾼 평점 9점을 넘긴 작품이다.
▲ 영웅 포스터 누리꾼 평점 9점을 넘긴 작품이다.
ⓒ 마인스엔터테인먼트

관련사진보기

'네이버 영화 평점 9.41'

누리꾼 평점 9점을 넘기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가 있다. 사나이의 대명사, 영화배우 김보성이 출연한 <영웅 셀러멘더의 비밀>(이하 <영웅>, 3월 14일 개봉)이다. 네이버의 역대 영화 평점에서도 1위에 올랐다. 누리꾼들의 영화 보는 눈이 높아지면서, 어떤 명작 영화라도 누리꾼 평점 9점을 넘기기는 힘들다. 이 영화는 정말 대단한 영화일까?

이 영화의 현실을 살펴보자.

일단 영화의 흥행 성적표는 초라하다 못해 처참하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집계한 자료(2013년 3월 22일 ~ 2013년 3월 24일)를 보면, 영웅의 누적관객 수는 5855명이다. 작품성이 높은 영화가 대중적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경우는 자주 있다. 너무나도 뛰어난 작품성이 흥행에 저해가 된 것일까? 하지만 작품성도 그리 좋지 못한 것 같다.

영화 평론가들은 혹평한다.

"영화 속 사건에 비해 황당할 만큼 거대한 설정, 엇갈리기 일쑤인 배우들의 감정,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는 인물들의 등퇴장, 갑작스럽게 전환되는 음향 및 영상의 편집은 보는 이의 몰입을 불허한다." - 시네 21, 이기준 /평점 2.5(10점 만점)

"효도르만 나오는 영화가 아니다. 믿을 수 없겠지만 룻거 하우어와 마이클 매드슨도 나온다. 의외의 영화일 가능성을 염두하고 없는 의리를 쥐어짰으나. 다 내 잘못이다." - 네이버 영화 허지웅/평점 3점

<영웅> 네이버 평점, 뭔가 이상하다

<영웅>은 네이버 평점에서 쉽게 받을 수 없는 9.41이란 점수를 받았다.
 <영웅>은 네이버 평점에서 쉽게 받을 수 없는 9.41이란 점수를 받았다.
ⓒ 화면캡처

관련사진보기


상황이 이렇게 되면, 누리꾼의 평점에 대해 의심이 생긴다. 네이버에서 평점 매기기에 참여한 사람은 1만2243명이다. <영웅>의 누적 관객 수는 5천 명이다. 관람한 5천명이 모두 평점을 줬다고 가정하더라도 7천명은 영화를 안 보고 평점을 준 것이다. 평점을 매기는 사람이 영화 관람객보다 많은 이 기이한 현상은 어떻게 된 것일까?

10점 만점을 준 누리꾼들의 이야기를 보자.

"오예 의리!!! (einu****)", "역시 실망시키지 않아 으리으리 형아!(sapz****)", "으리으리! 영웅! 으리!(chld****)", "남자들의 참여평점이 92% 역시 남자들의 으리영화! 외쳐!! 으리!! (xogu****)"

'의리'를 외치는 누리꾼들의 평점은 대부분 10점이었다. 이들 누리꾼이 사나이의 의리를 증명하는 방식은 '영웅'에게 10점 만점을 주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의 배경은 영화에 출연한 김보성씨의 독특한 홍보 방식 때문이었다. 영화배우 김보성씨는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리와 애국심으로 이 영화를 봐 달라"고 말했다. 애국심과 의리는 영화의 외적 요소에 불과하다. 영화의 내용이나 작품성 대신 "애국심과 의리"에 호소하는 독특한 홍보 방식은 누리꾼들에게 영감을 줬다.

그래서 누리꾼들의 영웅 평점 매기기 운동이 시작된다. 이들은 "남자라면 의리"를 외치며, 평점 10점을 주기 시작한다. 남성적 성향이 강한 모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영웅> 평점 10점 매기기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평점 올리기에 화력을 집중해달라고 독려하는 글도 자주 눈에 띈다. 영화를 직접 보고, 티켓 인증샷을 올리는 사람도 있지만, 호응도는 낮은 편이다. 오히려 영화 티켓 인증 사진을 올린 사람에게는 "끝까지 봤느냐?"며 사뭇 진지해진다. 의리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영화 <영웅>을 대하는 진짜 태도다. 

이 영화는 '의리'가 없으니까, 평점 1점?

시어머니와 함께 영웅을 관람한 후기
 시어머니와 함께 영웅을 관람한 후기
ⓒ 네이버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의 평점에 낚인 피해자도 생긴다. 시어머니와 보러 갔다가 관계가 소원해진 사람, 소개팅 여성과 보러 갔다가 연락 끊긴 사람, 간경화 후유증으로 아프신 아버지와 보러 갔다가 분위기만 이상해져버렸다는 사람. 이 사람들은 진지하다. 궁서체다.

이런 '의리 놀이'는 허경영 신드롬 이후 대중이 유명인을 소비하는 한 방식이다. 그런 점에서 김보성이라는 배우는 <화랑의 후예>에 나오는 황 진사를 닮았다. 시류와 동떨어진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의 희화화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김보성은 진지하게 의리를 이야기하지만, 대중들은 진지하게 받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에 대한 과장된 충성심을 보이며, 충성의 대상을 희화화한다. 그저 '놀이'인 셈이다. 영화도 보지 않고, 평점 매기기에 참여한 누리꾼들이 외치는 '의리'에는 영혼이 없다.

의리 놀이는 계속됐다.
 의리 놀이는 계속됐다.
ⓒ 네이버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여기에서 끝났다면 평점 매기기 놀이는 그냥 발랄한 누리꾼들의 놀이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의리를 기준으로 한 평점 매기기가 다른 영화 작품들로 옮겨가면서 문제가 됐다.

최근 개봉한 <연애의 온도> 등도 평점 매기기 대상이 됐다. 다수의 누리꾼들은 '이 영화에는 의리가 없다'며, 평점 1점을 줬다. 이 때문에, 해당 영화는 한때 기형적인 평점 저하 현상에 시달려야 했다. 배급사가 나서서 자제를 당부할 정도였다. 누리꾼 평점이 영화 흥행에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놀이는 적당히 즐길 때, 재미있다. <영웅>이라는 영화에 '의리'로 10점을 주는 행위는 누리꾼들의 발랄한 문화 소비 행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의 행위가 다른 작품들을 두고도 계속되고, 그것이 피해를 입힌다면, 곤란하다. 발랄함도 없고, 재미도 없는 그런 행위는 애꿎은 피해자만 낳는다.


태그:#영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