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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석 서울중앙지법원장이 21일 헌법재판관에 내정되면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혐의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재판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서 후보자는 서울고법 부장판사였던 2008년 이 사건 항소심에서 재판장이었다.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의 비리를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쓴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는 서 후보자가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다. 내용은 비판적이다. 97페이지에는 작은 제목으로 "영혼을 오염시킨 서기석 재판부"라고까지 명시되어 있다.

2심 재판, 이건희 회장에 가장 유리하게 판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2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경영쇄신안 발표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2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경영쇄신안 발표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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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는 책에서 "삼성특검 사건 재판에서 주로 관심이 쏠린 것은 민병훈 부장판사가 진행한 1심 재판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었다, 그 사이에 끼어있는 2심 재판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면서 "하지만 삼성특검 사건 재판 가운데 최악의 판결이 나온 재판을 꼽으라면, 나는 서기석 재판부가 진행한 2심 재판을 꼽겠다"고 말했다(97~98페이지).

실제 결과를 놓고 보면 당시 사건 1, 2, 3심 재판 중 2심 재판이 이건희 회장 측에 가장 유리하게 나왔다. 1심에서는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혐의(특경가법상 배임)에 대해 무죄를, SDS BW 헐값 발행 혐의(특경가법상 배임)에 대해 면소(소송 조건이 결여되어 공소권이 없어져 기소를 면제하는 것)를 선고했다.

면소 이유는 이건희 회장 등의 행위가 배임이 될 수 있으나 공소사실의 평가액이 잘못되어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심에서는 에버랜드 CB 부분은 무죄를 유지한 채 SDS BW 부분에서도 1심을 뒤집어 무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 배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부분은 법리 오해라는 것이었다.

이런 2심 판단은 대법원에서 뒤집어졌다. 다음해인 2009년 5월 29일 대법원은 SDS BW 부분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고, 그 해 8월 14일 파기환송심(서울고등법원 형사4부 김창석 부장판사)에서 유죄를 확정했다.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혐의는 여전히 무죄였지만, SDS BW를 헐값에 발행하므로써 배임을 저질렀다는 점은 법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 2심 재판장 서기석 판사에 '삼성 관리 의혹' 제기

지난 21일 헌법재판관으로 내정된 서기석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원장.
 지난 21일 헌법재판관으로 내정된 서기석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원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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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점은 김 변호사가 단지 2심 판결에 대한 평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삼성 측이 2심 재판장이었던 서 후보자를 재판이 있기 훨씬 전부터 지속적으로 관리해 왔다고 적은 것이다. 김 변호사는 삼성 법무팀장이던 2002년 서 후보자와 골프를 쳤다고 증언했다. 장소는 에버랜드에서 운영하는 안양 베네스트였다.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에서 함께 골프를 친 판사 중에 서기석이 기억에 남는다. 2002년께 몇몇 검사들과 서기석 판사가 나와 함께 골프를 쳤다. 훗날 서기석은 내 양심고백을 계기로 열린 삼성 비리 사건 2심 재판을 맡아서, 삼성에 면죄부를 줬다."(175페이지)

안양 베네스트는 국내 최고 골프장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삼성 고위 임원의 초청이 없으면 라운딩을 할 수 없는 곳으로, '대한민국 1%'만 간다고 알려져 있다. 김 변호사가 밝힌 안양 베네스트의 내방객 명단 작성 방식도 특이하다. 보통 골프장은 함께 골프를 치는 팀 단위로 명단을 기록하지만, 그곳은 누가 누구와 골프를 치는지 알 수 없도록 명단이 작성됐다고 한다. 그나마 이 명단마저 매일 폐기했다고 적었다.

삼성 측 서 후보자 관리 창구로 지목한 사람은 황백 당시 제일모직 부사장이었다. 황 부사장은 2심 판결 이후인 2009년 초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했고, 현재는 퇴직한 상태다. 김 변호사는 "2심 재판부의 서기석 판사를 관리한 황백 제일모직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한 것도 이때(2009년 1월 16일 인사)다"라고 말했다(101페이지). 두 사람은 경남고 동기 사이다.

서 후보자 "관련 내용 개정판에는 빠졌다"... 하지만 일부만 맞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
ⓒ 사회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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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후보자는 관련 내용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 후보자는 서울중앙지법원 대변인을 통해 전한 해명에서 "그 책이 나온 이후 김 변호사에게 '그런 사실이 없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 항의했고, 그래서 이후 개정판이 나올 때 그 내용이 삭제됐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원장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해명은 일부만 맞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개정판을 내지는 않고 쇄를 거듭할 때 필요한 부분을 수정해 현재 21쇄에 이르고 있다. 출판사인 사회평론에 확인한 결과, 서 후보자 관련 부분은 8쇄를 찍으면서 98~99페이지 내용이 전면 바뀌었다.

하지만 바뀌고 난 후에도 97~98페이지, 101페이지, 175페이지 내용은 변함이 없었다. 즉 ▲서 후보자가 2002년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에서 김 변호사와 함께 골프를 쳤고 ▲삼성이 서 후보자를 관리해왔으며 ▲삼성에서 서 후보자를 관리한 사람은 황백 부사장이라는 핵심 내용은 그대로다.

1쇄를 확인한 결과 8쇄부터 빠진 내용은 주로 경남고 관련 내용이었다. 출판사 관계자는 "빠진 부분은 김 변호사가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전해들은 부분이었다"면서 "나머지는 뺄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드물게 지금까지 약 16만부 정도가 팔렸다.

김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골프와 황 사장 등 서 후보자 관련 사항에 대해 책에 적은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서도 "더 이상 애써서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김 변호사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태그:#서기석, #헌법재판소, #삼성,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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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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