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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3일, 아내와 함께 이외수 감성마을을 찾았다. 우측에 보이는 납작한 건물이 지난해 문을 연 문학관이고 좌측 기와집이 강의실 용도로 쓰이는 모월당이다.
 지난 3월23일, 아내와 함께 이외수 감성마을을 찾았다. 우측에 보이는 납작한 건물이 지난해 문을 연 문학관이고 좌측 기와집이 강의실 용도로 쓰이는 모월당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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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씨도 따뜻한데, 감성마을에나 갈까?"
"음… 그러지 뭐."

지난 23일 아내에게 감성마을 여행을 제안했다. 그런데 웬일일까, 아내가 선뜻 응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빨래도 해야 하고, 아이들 간식도 만들어야 한다'는 대답을 하지 않고.

문제는 내게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주말, "가까운 뒷산에라도 가자"는 집사람의 말에 난 "사무실 나가야 해" 또는 "오늘 손님들 모시기로 했다"는 말로 거절하곤 했다. 그 후로 아내는 내게 동행을 제의하지 않았다. 일종의 복수라고 생각한 걸까. 휴일 모처럼의 내 외출 제안에도 아내는 '혼자 갔다 와' 식으로 대답했다.

"가면 이외수 작가님 뵐 수 있을까?"
"오후에는 문학관에 계실 때도 많으니까,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아내는 나와의 오붓한 데이트가 목적이 아니었나 보다. 지난 1월, 집사람이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아닌 말들을 만들어 작가를 헐뜯지 못해 안달들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할 때, 당시 (감성마을 논란으로 인해) 다소 격앙되었던 내 심정을 누그러뜨린답시고 하는 소린 줄 알았다.

아내는 "청소년 시절 <들개>라는 소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두 번을 읽고 이외수 작가의 팬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니 최근 그의 근황이 왜 궁금하지 않았겠나.

감성마을 찾은 아내의 웃음 "여보 이것봐, 시 제목이 '헐'이야"

감성마을 가는 길, 3월도 중순이 지났는데, 아직 잔설이 남아있다.
 감성마을 가는 길, 3월도 중순이 지났는데, 아직 잔설이 남아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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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봄이 오기는 올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난 겨울은 유난히 춥기도 했거니와 많은 눈이 내렸다. 그 탓인지 감성마을은 3월도 중순이 훨씬 지났는데 여전히 허연 잔설을 뒤집어쓴 산기슭을 뒤로하고 앉아있다. '매화가 피었네', '목련이 피었네'. 아래지방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한 달쯤 뒤에나 이곳에 도착할 듯싶다.

"옆 냇가에 산천어가 산다는 거 알아?"
"깨끗한 산속이니까 산천어가 살겠지! 아니다, 산천어는 화천에 살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나?"

감성마을 연못 이름이다. 이 연못에는 산천어들이 산다.
▲ 몽요담 감성마을 연못 이름이다. 이 연못에는 산천어들이 산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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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어는 대부분 동해로 흐르는 계곡에 산다. 또 여름철에도 수온이 20℃ 이상 오르거나 용존 산소량이 9ppm을 넘으면 폐사하기 때문에 청정의 대표 물고기로 손꼽히는 어종이다. 그런데 이곳 감성마을 계곡엔 산천어가 살고 있다.

그러나 터줏대감은 아니다. 감성마을 앞 '몽요담'이란 이름이 붙여진 연못에 살던 산천어가 아래 계곡으로 내려와 노니는 모습이다. 수온에 민감한 산천어들이 애완동물인양 감성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하류까지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도 재미있다.

감성마을 시석, 감성마을을 찾았을때 가장먼저 작가의 시를 새긴 140여개의 시석이 반겼다.
 감성마을 시석, 감성마을을 찾았을때 가장먼저 작가의 시를 새긴 140여개의 시석이 반겼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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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제목이 '헐'이다. 아내는 이 시의 제목을 보고 깔깔대며 웃었다.
 시 제목이 '헐'이다. 아내는 이 시의 제목을 보고 깔깔대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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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석(詩石) 숲을 지날 때, 아내는 무엇을 발견했는지 깔깔대며 웃는다. 무슨 재미있는 시구절이라도 있나 하는 생각에 들여다보려는데 아내는 "이것 봐, 시 제목이 '헐'이야"라고 말한다.

주차장에서 모월당까지 140여 개로 조성된 시석들은 갖가지 모습으로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발길을 멈추는 건 아마도 '삶에 대한 고뇌', '가슴시린 그리움' 등의 아픔을 해학으로 풍자한 작가의 글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내가 너무 무심했나봐, 언제 이런 시설이 여기에 만들어졌지?"

이외수 문학관 내부 모습,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외수 문학관 내부 모습,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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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무심한 게 아니라, 한 번도 같이 오지 않은 내 잘못이다. 감성문학관은 지난해 8월 문을 열었다. 연면적 1243㎡에 전시관 964㎡, 영상실 48㎡, 수장고 115㎡, 퍼포먼스공간 55㎡, 중앙정원 339㎡의 구조로 만들어졌다. 전시관에는 작가가 지금까지 집필한 작품 등 그림, 시를 비롯해 과거에 그가 사용했던 다양한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글자체가 여러 번 바뀌었네."

이외수 감성문학관 내 작품전시관, 작가의 다양한 글씨체를 볼수 있다.
 이외수 감성문학관 내 작품전시관, 작가의 다양한 글씨체를 볼수 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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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작가의 과거 기록물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이외수체로 알려진 목저체에 익숙해 있던 나와 아내는 작가필체의 변천사를 보며 새로운 유물이라도 발견한 듯 신기해했다. 워드프로세서라는 말이 생겨나기 이전엔 손 글씨체가 그 사람의 인간됨의 평가기준이 되기도 했다.

옛날 나는 고르지 않고 균형감이 없는 내 글씨체에 불만이 많았다. 글씨를 예쁘게 쓰기 위해 비스듬한 모양으로 써 보기도 하고 이응과 미음을 유독 크게 만들어 보기도 하면서 나만의 글자체를 만들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기억도 난다. 결국 어떤 게 정확히 내 글씨체인지 정하기도 전에 PC라는 기계를 맞이했다.

이외수 문학관. "여유를 만들어 이곳을 찾아 책을 한권 읽고 싶다"고 아내는 말했다.
 이외수 문학관. "여유를 만들어 이곳을 찾아 책을 한권 읽고 싶다"고 아내는 말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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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시간되시면 집필실 좀 들르실 수 있느냐고 물으시는데요."

문학관에서 전시물들을 돌아보는 내게 문학관 관리인이 말을 건넸다. 아마 작가는 이곳 직원으로부터 내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던 모양이다. 아내는 뜻밖이란 표정을 짓는다. 작가가 어느 정치인과 만났고, 유명배우가 감성마을에 다녀갔다는 소식만 들었던 터라 작가가 나를 불렀다는 게 못내 신기하다는 눈빛이다.

"작가께서는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보다 마을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
"어쩐지…. 하긴 당신도 화천군민이니까, 일종의 마을주민인 셈이네." 

"내 광고비는 고로쇠 몇 병과 멜론 한 박스"

감성마을 집필실, 많은 사람들이 아방궁이라고 말했던 건물이다.
 감성마을 집필실, 많은 사람들이 아방궁이라고 말했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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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아방궁이에요?"

아뿔싸. 집필실에 들어간 아내는 작가를 만나자마자 대뜸 '이곳이 아방궁이냐'고 묻는다. 작가 입장에서 '아방궁'이란 단어조차 되짚어보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전에 '아내에게 주의를 줄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하는데 작가의 대답이 뜻밖이다.

"네, 맞습니다. 여기가 아방궁입니다. 저기 있는 게 15캐럿 다이아가 달린 소파이고, 저기 있는 저건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는 오디오입니다."

작가는 소파에 달린 유리구슬이 고가의 다이아몬드로 둔갑하고, 수십 년간 오디오 만들기만 고집해온 어느 지인이 '작가에겐 좋은 음향도 중요하다'며 150만 원짜리라고 선물한 오디오가 최고의 명품으로 헛소문 났었다는 게 황당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아방궁이란 표현을 썼을까, 아무리 둘러보아도 일반 가정집 거실 수준이다.

작가를 만나면 물어야지 했던 것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작가를 만날 줄 알았으면 미리 질문 요지를 만들어올 걸 그랬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 점퍼 안주머니에 취재수첩이 있다는 거였다. 한 시간여 이것저것 궁금했던 사항들을 떠올리며 작가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외수 작가와의 인터뷰, 그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브이 포즈를 취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이외수 작가와의 인터뷰, 그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브이 포즈를 취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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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에 BBQ치킨을 선전하고 받은 비용 1000만 원을 지역에 장학금으로 낸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 일을 그만두게 된 건가.
"1000만 원이 아니고 6000만 원이다. 그 돈을 1000만 원씩 나누어서 강원도 6개 시군을 찾아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왜 그만두게 된 이유를 말하기 전에 그 시작부터 말해야겠다. 2010년 봄에 BBQ치킨으로부터 트위터를 통한 기부캠페인 후원제의가 들어왔다. 내용은 한 달에 네 번 트위터에 BBQ를 언급하면 업체에서는 월 1000만 원의 후원금을 내겠다는 거였다.

강원도 산간 교육환경이 낙후된 지역아이들에게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월 1000만원씩 받아 강원도 화천, 양구, 인제, 고성, 춘천 등 6개 지자체에 600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그러다 문제가 생긴 거다. 모 국회의원의 '이외수가 트위터를 이용해 돈벌이를 한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결국 그 사람으로 인해 나눔 재능기부도 끝났다. 가난한 산골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이 제일 아쉽다."

- 트위터를 말했으니까 생각난 게 있어 묻겠다. 트위터를 통한 지역 농산물 판매에 있어 2010년 구제역으로 산천어축제가 취소되었을 때 15억여 원의 농산물이 판매되는 데 기여를 했고, 2011년 전국적으로 배추파동이 일었을 때 (감성마을) 다목리에서 생산된 배추는 전량 판매되는 효과를 거두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 외에 또 어떤 것들이 있나?
"지난해 화천군 간동면 멜론 작목반에서 멜론을 가져와 맛을 보여주면서 500박스만 팔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맛을 보니 당도가 뛰어났다. 대박날 것 같다는 생각에 미안해하지 말고 5000박스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결국 짧은 기간에 다 팔렸다. 그래서 올해는 그보다 더 많은 멜론재배를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 놓은 상태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3월초 화천읍 동촌리 마을에서 트위터를 통해 고로쇠를 팔아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강원도 산골 고랭지에서 생산된 것이기 때문인지 2시간 만에 1600병이 팔렸다. 그런데 올해는 그 마을에서 내게 '고로쇠 판매'를  부탁하지 않았다.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하는 생각에 그 마을에 확인을 해 보니, 마을사람들은 지난해 고로쇠를 구입한 고객들의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파악해 고로쇠 소식을 알리는 등 나름대로의 마케팅 전략으로 지난해 보다 더 많은 물량의 고로쇠를 판매했다는 거다. 그 소식을 듣고 큰 보람도 느꼈다.

또 화천읍 풍산리 어떤 농가에서 양봉꿀을 생산하는 분이 꿀 한 병을 가져와 맛을 보고 괜찮으면 판매 좀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감성마을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맛을 봐 달라고 했더니, 설탕을 쓰지 않는 진품양봉이란 말들을 했다. 그래서 자신있게 트위터에 소개를 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적게 팔렸다. 소개방법의 다양화를 통해 여러 가지 문구로 다시 소개해 볼 참이다."

그런데 그는 느닷없이 내게 "신 기자님 혹시 꿀맛을 아느냐"는 질문을 한다. "단맛 아니냐"는 내 대답에 그는 "꿀에는 신맛, 매운맛, 단맛, 쓴맛, 짠맛이 난다, 그게 진짜 꿀이다, (풍산리에서 가져온) 이 꿀에서 그 맛은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니들이 꿀맛을 알아?'라고 말하는 듯한 작가의 표정이 재미있었다. 

- 많은 사람들이 작가께서 지역 농산물을 팔면 판매액의 몇%를 먹는다느니 하는 말들도 한다. 정확히 광고비를 얼마나 받는지 궁금하다.
"글쎄, 배추를 팔았을 때는 농가에서 배추를 보냈고, 멜론 농가에서는 멜론 한 박스를, 고로쇠 마을에서는 고로쇠를 몇 병 보내줬다. 그게 광고료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는데, 금액으로 환산하면 몇 %나 될까? 잘 모르겠다(웃음). 어쨌든 올해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토마토도 홍보해 나갈 계획이다. (토마토를) 직접 먹어봤을 때 찰진 정도와 단백함이 뛰어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 내게 대가를 주고 싶다면 토마토 몇 개만 주면 된다."

다목리의 상가 간판이 새롭게 정비되었다. 이외수 목저체 간판 모습
 다목리의 상가 간판이 새롭게 정비되었다. 이외수 목저체 간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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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라오면서 다목리에 들렀는데 많은 상가에서 간판을 '이외수체'로 바꾼 것을 봤다. 그런데 선생님의 목저체와 약간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문학관 준공 이후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 것으로 보인다. 금년 한 해 어느 정도의 방문객을 예상하나?
"'희망마을 만들기사업'의 일환으로 무질서하던 상가간판을 단정히 정리하기로 하고 (이외수체라고 부르는) 목저체를 쓰기로 했다. 그래서 밤을 새워 간판에 쓰일 손 글씨를 만들었는데, 주민들은 내게 부탁하는 게 미안하다고 생각했던지 인터넷에서 내 폰트를 가져다 썼다. 목저체의 뜻은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쓴 '나무젓가락체'를 의미하는데, 내가 지금 독자들에게 사인해 주는 글자체가 '라면 젓가락체'로 본다면, 마을 간판에 쓰인 체는 '튀김용 젓가락체'로 보면 된다(웃음). 그리고 문학관 방문객은 한 달 평균 4000명을 상회하는 편이니까 1년이면 대략 5만 명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 다리가 완공되면 '벌떡교'란 이름이 붙여진다.
 이 다리가 완공되면 '벌떡교'란 이름이 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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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마을 집필실 주변 싸릿문. 마을주민들이 작가를 위해 무료로 설치했다.
 감성마을 집필실 주변 싸릿문. 마을주민들이 작가를 위해 무료로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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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실을 찾는 손님들 때문에 더 이상의 인터뷰는 작가에게 실례가 되는 듯했다. 신발장 앞까지 배웅을 나오는 그에게 "모월당과 도로를 연결하는 곳에 출렁다리가 공사 중이던데 다리이름을 정했느냐"고 묻자 그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벌떡교'로 하면 어떻겠냐"고 오히려 내 의향을 물었다.

감성마을 위쪽으로 오르다보면 약수터가 하나있다. 이 약수이름이 벌떡수다. 그 이름에 야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면 잘못이다. 옛날 앉은뱅이(걷지 못하는 사람)가 그곳 약수터에 터를 잡고 물을 마시며 매일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앉은뱅이는 벌떡 일어나 산을 내려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이후로 이 약수가 뼈에 좋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벌떡 약수터이다. 벌떡교! 역시 작가다운 발상이다.

"당신 사이비인줄 알았더니 이외수 작가님도 인정해 주는 유명한 기자네, 대단한데?"

감성마을을 내려오면서 아내가 내게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말을 건넨다. 아내의 얼굴을 보니 비아냥은 아닌 것 같아 피식 웃었지만, 왠지 모르게 아내의 칭찬엔 늘 기분이 좋다. 아마 평생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할 사람에게서 듣는 말이기 때문일 게다. 진심일 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기자는 화천군청 관광기획담당입니다.



태그:#감성마을, #이외수, #이외수문학관, #아방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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