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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내가 법관이 되길 원하셨고
평생을 가난에 찌드신 어머니는
아들이 돈 잘 벌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어쩌다 시에 눈이 뜨고
얘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나는 부모의 뜻과는 먼 길을 걸어왔다.

정희성 시인의 <길>을 읽다보면, 나 역시 직업 문제 때문에 부모님과 상당한 갈등을 겪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잠시 정희성 시인의 글을 빌려 나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아버지는 내가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고
사업가의 아내로 평생을 불안에 시달린 어머니는
딸이 교사가 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가장 말리시던 자영업자가 되어
나는 부모의 뜻과는 먼 길을 걸어왔다.

내가 직업문제로 갈등을 빚던 무렵이나,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지난 지금이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방에서 작은 동네 학원을 꾸려가는 영세 자영업자로서, 나는 딸 아이의 적성이나 바람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교대나 사범대로의 진학을 강권하는 부모님들을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다. 또 전공에 상관없이 일찌감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권하는 부모님들도 많이 보았다. 교사와 공무원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안정적인 직업으로 손꼽히는 것들이니,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남자들이 꼽는 신부의 직업 1순위도 교사, 공무원이 아닌가.

반면 자식이, 특히 딸자식이 자영업을 한다는 것은 부모들에게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자영업은 이것도 저것도 안 되었을 때, 즉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혹은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었거나 사업에 실패했을 때 마지못해 빼어드는 최후의 카드로 인식된다. 아이를 키우기 힘들고 살림도 제대로 할 수 없고, 그래서 결국은 대한민국 부모들의 지상과제인 아이의 교육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는 직업이 바로 자영업이라 여겨진다.

자영업하는 엄마의 육아 고민

근무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자영업자들은 아이를 맡길 곳 찾기가 더 어렵다.
 근무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자영업자들은 아이를 맡길 곳 찾기가 더 어렵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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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에 뛰어든 여성들에게 아이를 키우는 문제는 엄청난 질곡이다. 현재 일하는 여성들의 보육 문제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정부가 내놓는 수많은 보육 정책들은 대개 직장맘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생활패턴이 직장맘과는 판이하게 다른 자영업자들은 보육문제에 어떤 어려움이 있고 이를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까. 아직 윤곽조차 그려지지 않았다. 이제 5년차를 맞이하는 이 땅의 자영업자로서, 그리고 10살 난 아이의 엄마로서, 나는 우리 사회가 보육문제의 사각지대에 처한 또 다른 일하는 여성들과 그 아이들을 생각해 봤으면 한다.

가끔 대박을 내는 일부의 자영업자들을 제외하면 자영업자들의 삶은 정말 팍팍하다. 말이 좋아 사장님이지 사실은 청소에서부터 회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영세 점포 주인이 바로 대다수의 자영업자들이다. 주지하다시피 구제금융 위기 이후 명퇴를 당한 많은 직장인들이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도저히 재기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상처를 입고 물러났다. 그 여파로 인해 지금은 자영업이 도리어 줄어드는 추세이다.(2012 여성 가족부,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줄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그 중에서도 여성 자영업자들은 대부분이 생계형 자영업자이고 남편이나 다른 가족 구성원의 가게에서 '무급 가족 종사자'로 일하는 형편이다.  

자영업자들이 우리사회에서 힘든 직업군으로 인식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장시간의 근로와 강도 높은 노동 때문이다. 일단 출근하면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10~12시간 근로는 기본이다. 주말에도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으며, 정기 휴무가 없는 경우가 약 20.2 % 정도 된다.(경기도 가족 여성 연구원 보고서, 경인일보, 2012, 12월 18.)

또한 자영업은 경기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어제까지 괜찮던 사업이 오늘 갑자기 안 될 수도 있는 것이 자영업이다. 게다가 자영업 시장의 과다경쟁으로 인해 자영업자의 47%가 3년 이내에 폐업을 한다는 보고도 있다. (충청일보, 2013년 3월 13일) 심지어 자영업자들의 행복지수가 무직자와 비슷하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다. (현대 경제 연구원, "경제적 행복감의 현실과 전망" 2013년, 1.29)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양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여성 자영업자들은 과다한 노동과 불안정한 미래에 덧붙여 가사 노동 및 아이의 양육까지 책임져야 한다. 몇 년 전부터 화제가 되고 있는 '육아 휴직'은 자영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는 아예 성립조차 되지 못하는 개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의 아이들은 보육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영유아기는 영유아기대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들어간 대로 지속적인 보육 공백지대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사를 감행했지만....

많은 자영업자 엄마들이 아이를 친정 어머니나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있다. 먼 지방까지 보내기도 한다. 자영업자의 형편에 맞는 돌봄 서비스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나역시 아이가 태어난 후 바로 대전의 시어머님께 아이를 맡겼다. 아이를 보낼 때는 엄마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경제적 기반을 탄탄히 하는 것이 아이의 미래에도 좋은 일이라고 자위했지만, 아이를 자주 보지 못해서 발생하는 정서적 공감대의 빈틈은 생각보다 훨씬 큰 문제였다. 게다가 우리 아이를 맡아주시면서 어머님도 하던 일을 그만두셨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두 집 살림' 경제체제로 진입하게 되었다. 아이의 양육비는 물론 어머님의 생활비까지 모두 책임지다보니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그리고 그 힘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더 일에 매달리다보니 삶의 질은 더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결국 2년만에 서울에서의 일을 모두 접고 대전으로 내려와 살림을 합치게 되었다.

대전에서 아이와 같이 살게 된 점은 좋았지만, 예상치 못한 시어머님과의 동거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나나 어머님이나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그리고 서울 토박이였던 내가 서울에서 쌓아온 모든 인간관계와 경력이 단절되는 바람에, 한동안 나는 나홀로 외따로 떨어져 있다는 고립감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헌신적으로 아이를 돌봐주시는 시어머님 덕에 우리 부부는 일에 매진할 수 있었고, 아이와 떨어져 지내는 괴로움이 소멸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어려움은 참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영유아기를 힘겹게 넘겼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이번에는 아이의 학교생활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이었다.

작년 한해, 우리 아이는 학교생활에서 정말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 1학년 때와는 달리 숙제량이 늘어나고 시험도 보게 되면서 학습의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의 학교생활과 학습문제는 시어머님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일을 마치고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는 숙제를 다 못하고 잠들어 있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 결과 아이는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숙제를 불성실하게 한다"는 꾸지람을 몇 번이나 들어야 했고, 숙제를 처음부터 다시 해오라는 '숙제 퇴짜'를 맞기도 했다. 심할 때는 똑같은 숙제를 3번이나 해 간 적도 있었다.

우리 부부가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하며 우리의 특수한 상황을 설명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아이는 걸핏하면 "전학가고 싶다,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다"고 말해 가족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그 후로 숙제에 신경을 쓴다고 썼지만, '아이와 함께 동네 사진 찍어오기' 혹은 '우리 동네 가게에 들어가 인터뷰 해오기' 등의 체험학습 숙제가 나오는 날은 한숨밖에 나오질 않았다.

게다가 우리 부부가 하루 종일 나가 일하는 주말은 또 다른 형태의 문제가 나타났다. 시어머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에게 맞는 형태의 놀이, 학습, 체험 등의 돌봄은 이루어 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아이가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아이는 평일 저녁과 주말에 TV를 끼고 산 덕분에 최신 광고와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줄줄이 꿰고 드라마란 드라마는 모르는 것이 없는 'TV소년'이 되어 갔다.

빈틈 메우는 촘촘한 정책 필요

부산에 있는 한 지역아동센터의 모습
 부산에 있는 한 지역아동센터의 모습
ⓒ 금샘마을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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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나의 사정이 급한데 국가적 대책이 나오기만을 바라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우리 가족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도 했다. 주말에 같이 모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았지만, 같은 자영업자라 해도 각자의 상황이 다 달랐다. 또 일요일에도 일을 하겠다는 사람을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학원에 선생님을 고용해서 일하는 시간을 어떻게든 줄여보려고도 했으나 경기불황의 한파 속에 있던 선생님도 오히려 다 내보내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며칠 전, 아이가 학교에서 '정부 제공 방과 후 돌봄 서비스'라는 팜플릿을 받아왔다. 꼼꼼히 살펴보니 이전보다 돌봄 서비스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돈으로 육아비를 지원하는 것이 보육 정책의 주를 이루었는데 이제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초등 돌봄 서비스'에서부터 '지역 아동센터 운영', '청소년 방과 후 아카데미','방과 후 아이 돌봄 서비스' 등 총 4개의 카테고리에서 만 18세까지의 아동을 돌보는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중에서도 초등 돌봄 서비스의 경우는 반응도 꽤 좋은 것 같았고 올해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하는 곳도 있어 자영업자들에게는 꽤 반가운 소식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처지의 한 학원 원장님은 신청서를 넣었다고 하면서도 이 프로그램을 이용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었다. 일단 20명 정원의 한 학급밖에 없는 데다가 저소득층, 한 부모 가정, 장애인 가장이 우선 순위라는 것이다. 주변의 다른 지인들의 의견도 걱정이 많은 편이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돌봄 교실이 시설이나 프로그램 면에서 너무 빈약하다며 그냥 학원을 돌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도 했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아이를 밤 늦게까지 돌봄 교실에 보내면 문제 있는 가정으로 눈총을 받을까봐 못 보내겠다는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나는 내게 가장 시급한 주말 돌봄 기능이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필요한 돌봄은 집에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 파견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갖춘 시설에서 여러 아이들과 함께 놀이와 예,체능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형태와 가장 유사한 것이 '지역아동센터'나 '청소년 방과 후 아카데미'인데, 이 역시 일요일에는 운영되지 않는 데다가 '청소년 방과 후 아카데미'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이용이 가능했다.

나의 이해와 요구를 떠나서, 돌봄 서비스를 담당하는 기관이 교육과학기술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의 3개 부서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 눈에 봐도 프로그램 및 교육의 중복을 피하기 어려워 보였고, 질적 내용을 담보할만한 재원이 있는지도 의아스러웠다. 작년에 벌어졌던 만 5세 미만의 무상 보육 지원 문제에서도 재원 부족으로 인한 지자체와 중앙 정부의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의 보육 정책이 자리를 잡으려면 양적 확대보다도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주는 질적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행정이 통일성과 각 돌봄 서비스의 표준화된 프로그램, 전문적인 인력 수급이 필수적이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적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보육 서비스는 결국 이용률 저조로 인해 폐기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 전체의 인식 재고도 필요하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기관에 아이를 맡기는 것을 엄마의 책임 방기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엄마가 일을 하는 것이 아이의 불행으로 이어지는 한, 우리 사회는 결코 선진사회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찾아가는 맞춤형 보육 서비스를 천명한 만큼, 사회 구성원들 모두의 노력으로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사회적 양육 시스템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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