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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봄 3월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설렘을 가득 안고 모두 3월의 봄을 만끽하고 있을 요즈음. 직장맘들의 봄은 여전히 치열하다.

며칠 전 내가 일하는 사무실의 엄마들 몇몇이 모여 잠시 수다타임을 가졌다. 화제는 자연스레 아이들 이야기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이야기로 모아졌다. 봄을 맞이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자.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한 김아무개(40)씨]

"이제 학부형 돼 좋겠어."
"야야 말도 말아라 챙겨야 될게 얼마나 많은지... "

그렇게 시작한 선배 김씨의 한탄은 이러하다. 아이는 새로운 환경을 만나 신났지만 엄마는 죽을 맛이란다. 챙겨주어야 할 것이 어찌나 많은지 아이가 쓰는 연필, 크레파스, 사인펜까지 일일이 한자루마다 이름표를 붙여주어야 하고 알림장도 필통까지도 학교에서 정해준 규격 조건대로 준비해 가야 한단다. 그중 가장 김씨를 경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엄마숙제'.

서울 한 초등학교 입학식 모습.
 서울 한 초등학교 입학식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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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숙제를 내주면서 직접 이건 '엄마 숙제'라고 써준단다. 첫날 입학하는 아이에게 편지를 써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종종 김씨에게 떨어지는 엄마숙제에 그는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건지 내가 학교를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직장 다니는 엄마들의 일과는 뻔하다. 아침에 부랴부랴 아이들을 학교로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출근하다보면 아침에 벗어놓은 옷, 아침 설거지 등은 그대로 쌓여있기 마련이다. 퇴근하며 아이를 찾아오는 것과 함께 밀려있는 집안일들을 해치우며 아이들 저녁 먹이고 씻기기도 하고 빨래 돌리다보면 바로 자야할 시간. 하지만 김씨는 엄마 숙제를 하느라 잘 수 없었다.

"야 남편은 엄마숙제니까 엄마가 해야 한다며 자기는 거들떠 보지도 않아."
"그러니까 왜 엄마숙제야? 부모님 숙제면 또 몰라도. 엄마 없는 애들은 어쩌라고?"
"엄마가 죄졌대? 왜 엄마한테만 하래?"

뭐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 테니 엄마 숙제를 내면 안 된다고까지는 말하지 못하고 엄마 숙제가 아니라 부모님 숙제가 되어야 된다, 용어 자체가 잘못 되었다 정도에서 초등학교 1학년 엄마에 대한 수다는 마무리 되었다.

[이제 막 돌 지난 아이를 둔 오아무개(33)씨]

"오늘도 오전 내내 어린이집에서 있었어... 사무실에 눈치보여 죽겠네."

오씨는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으로 옮겼는데 처음 어린이집에 입학하면 대부분의 어린이집에서  신입원아 적응기간을 거친다.

신입원아 적응기간은 보통 일주일 정도. 첫날은 어린이집에서 두시간정도 엄마와 같이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고, 다음날은 세시간 정도 있다가 돌아가고, 다음날은 한시간 정도 엄마와 있다가 엄마가 없는 상태에서 두시간 정도 어린이 집에 있고, 뭐 이런식으로 아이가 원에 엄마 없이 지내는 시간을 늘려가며 점차 적응해간다.

이게 낯선 환경에 접한 아이들에게는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시간이지만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에게는, 특히 어디 부탁할 연고자도 없이 그저 부모가 아이를 다 책임져야 하는 집에서는 상당히 난감한 상황을 만든다.

작년 둘째가 어린이집에 입학하던 3월에 나도 남편과 3일씩 휴가를 내서 신입원아 적응기간 일주일을 보내야 했다.

이 역시 아이에게 필요한 일이니 이렇다저렇다 불평하기도 좀 그렇고 해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병가처럼 육아휴가 뭐 이런 것도 법적으로 할 수 없나?"
"애들 일주일 방학할 때도 정말 난감하잖아."

[3살, 4살을 시립과 민간 어린이집에 보내는 필자]

서울 용산구 원효로 공동육아로 운영하는 '동글동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나무조각 쌓기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 공동육아로 운영하는 '동글동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나무조각 쌓기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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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라고 고단한 3월을 비껴가지는 못한다.  새학기가 시작되다보니 아이들은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더라도 다시 새로운 환경에 직면한다. 반이 올라갈 때마다 선생님도 바뀌고 새로운 친구들도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집은 연년생으로 4살 딸과 3살 아들이 서로 다른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첫째는 근처 아파트 단지의 민간어린이집을 다니고 둘째는 근처 시립어린이집을 다닌다.

며칠 전 퇴근길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첫째를 데리러 오후 6시30분경 어린이집 문을 열었다. 혼자 시무룩하게 놀고 있던 아이가 나를 보자 "엄마~!" 하고 부르는데 평소보다 더 힘이 없어 보였다. 웬일이지? 하던 중 아이는 문앞에서 왈칵 토하고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하루종일 힘들었던 모양이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럴 수 있지...하지만 첫째는 둘째에 비해 유독 3월을 더 힘들게 보낸다.

"우리 수민이가 많이 힘들었구나."

아이를 다독이며 둘째를 데리러 시립어린이집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첫째가 얼마나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이해가 됐다. 시립과 민간 어린이집은 다른 점이 많다. 이건 선생님들이 좋고 나쁘고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등원, 하원때의 풍경이 다르다. 첫째를 데리러 어린이집 문을 열면 항상 혼자 쓸쓸히 미끄럼틀을 타고 있거나 책을 보고 있다. 하지만 둘째의 경우는 늘 친구들과 같이 시끌벅적하게 뛰어 놀고 있다.

보육료 지원이 전 계층으로 확대되면서 맞벌이가 아닌 집에서도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경우가 많아 맞벌이 가정이 우리집 뿐인 첫째의 어린이집 친구들은 오후 5시 전에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 아이 혼자 남아 엄마를 기다린다. 반면, 조건을 따져 점수제로 아이들 입학이 허가되는 시립 어린이집은 나같은 맞벌이가 아니면 거의 보낼 수 없다. 그래서 둘째는 혼자서 엄마를 기다린 적이 없다.

또 다른점은 새학기의 풍경이다.

둘째는 반이 바뀌고 선생님이 바뀌더라도 같은 어린이집에서 작년까지 함께했던 선생님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같이 많이 도와줄 수 있어 그리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첫째의 경우는 원장선생님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선생님이 바뀌는 걸 해마다 경험하고 있다.

너무 다른 시립 어린이집과 민간 어린이집

선생님에 대한 대우가 국공립은 비교적 좋은 편이라 이직률이 그리 높지 않으나(하지만 국공립도 노동환경이 다른 집업에 비해 좋은 편은 아닌지라 역시 아예 다른 직업으로 바꾸는 선생님들도 꽤 된다고 한다.) 민간어린이집의 경우 월급도 노동량도 더 열악할 수밖에 없어 선생님들의 이직률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같은 어린이집을 3년째 다니고 있는 첫째는 벌써 다섯번째 새로운 선생님을 만났다. 그래서 첫째는 다른 아이에 비해 어린이집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3월 한달은 어김없이 어린이 집에 가기 싫다며 엄마를 따라 가겠노라고 떼를 부린다. 건강하던 아이가 유독 3월엔 체하기도 많이 체하고 장염도 잘 걸린다. 

친구들이 다 돌아가고 낯선 선생님과 단 둘이 남아 혼자 미끄럼틀에 앉아 있던 아이는 엄마가 돌아올때까지 근 두시간 가량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야기가 이즈음이 되자 괜히 코끝이 시렸다.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자주 그만 두는거야?"
"일은 힘든데 월급은 적으니까 그렇지."
"아이들이 국력이고 나라의 기둥이고? 웃기고 있네. 기둥 키우는 사람 대우는 왜 그따위인거야."
"이번에 손주들 봐주는 할머니들한테 지원금 준다며?"
"아무튼 뻘짓은 아주 골라가면서 해요. 그럴 돈으로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리라고!"
"선생님이 일 할만 해야 애들 봐줄 힘도 나지."

아이 얘기를 더 하다가는 울음바다가 될 것 같아 우리는 괜히 더 큰소리로 나라욕이나 하고 말았다.

모든게 파릇파릇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3월이 저물어 가고 있다.  우리 직장맘들에게 그렇게 가혹했던 3월도 저물어 가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5년의 첫걸음인 3월도 저물어 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든 또 그 3월을 이겨내었고 이제 조금씩 나아지겠지만 새로운 5년은 어찌될지 조금 걱정이 된다. 그 수많은 복지공약들은 어디로 가고, 아이 봐주는 할머니들에게 수당주겠다는 어이없는 이야기가 고개를 드는 3월, 앞으로 5년이 참 걱정스럽다.


태그:#입학, #봄, #어린이집, #새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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