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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꼭 1년이 된다. 1년 전 정부는 거대시장 미국으로의 경제고속도로가 연결됐다고 자축했다. 자동차부품과 섬유의류 등을 중심으로 수출이 늘어 국내 기업들이 큰 이익을 볼것이라고 했다. 반면 국내 농축산업 등의 피해도 우려됐다. 지난 1년 한미FTA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오마이뉴스>는 중소 수출기업과 감귤농장 등의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 등과 함께 향후 대안을 고민해본다. [편집자말]
"자유무역협정(FTA) 되면 가격 내려간다길래 좀 기다렸는데 그대로더라고요. 그리고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인터넷 쇼핑몰에서 할인쿠폰 주길래 결국 그걸로 샀어요."

서울 거주 회사원 박아무개씨(29)는 지난해 3월 초 미국 액세서리 전문 브랜드 코치(COACH) 사에서 만든 한 가방을 사기로 점찍었다. 그는 "뉴스에서 한미FTA 발효되면 관세가 인하돼서 가방 가격도 10%는 떨어질 거라고 했다"는 한 지인의 말을 듣고 며칠 기다렸지만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박씨는 나중에 한 언론의 기사를 보고 이유를 알게 됐다. 자신이 눈여겨봤던 그 가방은 중국에서 만든 것이라 원래부터 한미FTA 관세인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미FTA가 발효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정부가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던 미국산 식료품 및 생활용품들의 가격인하 폭은 대체로 관세 인하율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품목의 가격은 소비자 입장에서 봤을 때 정부가 호언장담했던 것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FTA효과' 제대로 본 건 오렌지, 주스원액... 쇠고기는 되레 올라

정부가 지난 2011년 10월 발간, 민간에 배포한 <한미FTA로 달라지는 우리생활>.
 정부가 지난 2011년 10월 발간, 민간에 배포한 <한미FTA로 달라지는 우리생활>.
ⓒ 관계부처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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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2011년 10월 <한미FTA로 달라지는 우리생활>을 발간, 민간에 배포했다. FTA가 체결되면 미국산 먹거리와 생활용품 가격이 내려가고 일반 소비자들이 인터넷 쇼핑 시 관세 인하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그러나 실제 인하된 장바구니 가격 폭은 홍보된 내용에 비해 아쉬운 수준이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FTA 발효 즉시 8%의 관세가 사라지며 가격인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던 아몬드 700그램(g) 가격은 1년 새 5.2% 하락하는 데 그쳤다.

정부가 대표적인 FTA 효과 품목으로 꼽았던 체리는 24%에 달하는 관세가 철폐됐지만 계절과일임을 감안해 본격적으로 출하되는 시점인 5월 기준으로 보면 가격은 10.1% 내려가는데 그쳤다. 2011년 5월에는 300g 당 9900원이던 가격이 FTA 발효 후인 2012년 5월에는 8900원으로 떨어진 것.

미국산 저가 와인인 '칼로로시 레드와인'도 관세 15%가 없어졌지만 가격은 10.2% 하락했다. 밀러맥주는 2년에 걸쳐 관세가 7.5% 줄었지만 가격은 변동 없이 2150원을 지켰다. 6% 관세인하 효과를 본 오뚜기의 스위트콘도 판매가격은 그대로였다. 오뚜기 관계자는 "그동안은 옥수수 가격 상승분 때문에 반영을 못 하고 있었지만 올해 2월 1일부로 5.4% 가격을 낮췄다"고 해명했다.

관세가 2.7% 내린 미국산 쇠고기는 곡물가 인상과 국제 공급사정 탓에 되려 가격이 5.8% 올랐다. 롯데마트의 미국산 냉장 척아이롤 100g은 지난해 3월에는 2080원이었지만 올해 3월 가격은 2200원을 기록했다.

장바구니 속 한미 FTA 체면을 살려준 것은 오렌지와 주스 원액 정도였다. 10개들이 네이블 오렌지는 2012년 2월에는 1만3000원이었지만 올해 2월에는 26.9% 떨어진 9500원에 팔렸다. 관세 하락분인 25%를 소폭 넘어서는 효과다.

농심에서 원료를 미국에서 수입해 가공·판매하는 웰치스 주스도 주스 가격에서 원액이 차지하는 하락폭이 적절히 반영된 경우다. 농심은 지난해 4월 10일부터 웰치스 오렌지주스와 포도주스 가격을 8.6% 내려 받고 있다.

대형마트 한미FTA관련 가격조사
 대형마트 한미FTA관련 가격조사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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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어놓고 '싸진다'던 정부... 안 내려가니 '기업 조이기'

소비자들의 오해가 가장 많았던 지점은 의류, 화장품 등 생활용품에 해당하는 물품들이었다. 미국 의류업체인 '아베크롬비앤피치(A&F)' 옷을 즐겨 구매하는 김경진씨는 "1년 사이에 옷을 몇 벌 샀지만 가격이 싸졌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기획재정부에서는 한미FTA 출범에 앞서 "미국산 화장품(8%), 의류(13%), 셔츠(13%), 넥타이(8%), 모자(8%) 등 구체적인 관세 철폐 품목들의 가격부담이 경감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지만 시중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회사는 '미국산'이지만 제품은 그렇지 않은 회사가 많았기 때문.

한미FTA관세는 회사를 불문하고 제품 원산지가 미국이 아닐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아시아 국가에 생산기반을 두고 있는 미국 의류업체인 '갭(GAP)', '나이키(NIKE)', '캘빈클라인(CK)'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정부의 '다그치기식' 모니터링으로 속앓이를 하는 기업도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4월 한미FTA에 따른 관세 인하효과가 실제 가격인하로 연결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15개 해외브랜드와 16개 품목의 소비자 가격을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밝힌 15개 해외 브랜드에는 미국의 화장품 기업 '키엘(KIEHL'S)'이 포함되어 있었다. 화장품 관세는 10년에 걸쳐 8%가 철폐되는데 매해 0.8%씩 없어지는 관세효과가 제대로 적용되는지 지켜보겠다는 것이었다. 공정위는 '키엘의 경우 2013년 1월 1일부터 모니터링 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침도 내놨다.

이에 대해 키엘 관계자는 "한미FTA로 화장품 수입 원가에 해당하는 관세가 점진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맞지만 이미 2009년 1월 1일부터 FTA보다 더 우선해서 6.5%의 WTO 양허세율이 적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2012년에는 한미FTA 관세효과가 전혀 없고 2013년 부터 비로소 0.1%의 관세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해외 직접구매족에도 한미FTA 영향은 미미"

지난 2월 20일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시민들이 수입산 오렌지를 살펴보고 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과일 매출 중 수입 과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31.0%를 기록했으며 과일 중 수입산 비중이 30%를 넘은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현상은 국내산 과일의 가격이 폭등하면서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풀이했다.
 지난 2월 20일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시민들이 수입산 오렌지를 살펴보고 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과일 매출 중 수입 과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31.0%를 기록했으며 과일 중 수입산 비중이 30%를 넘은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현상은 국내산 과일의 가격이 폭등하면서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풀이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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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관세청에 따르면 한미FTA가 발효됐던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월까지의 수입액은 390억6984달러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에 비해 7.35% 줄어든 수치다. 당초 수입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정 반대인 상황이다.

온라인을 통해 미국 내 사이트에서 직접 물건을 구매하는 '직구(해외 직접구매)족'들에게도 한미FTA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해외쇼핑 구매대행업체 '뉴욕매니아'의 김나연 대표는 "시장이 성장하고 있고 직구족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맞지만 한미FTA의 영향은 미미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배송 대행업체 '몰테일'의 류성호 팀장은 "FTA 때문에 좋아진 게 있다면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물품가액 한도가 한화 15만 원에서 미화 199달러까지 상향됐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해외 직접구매가 늘어나는 징후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홍보 책자를 통해 '인터넷 쇼핑을 통해 미국산 제품을 구입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관세 혜택을 볼 수 있어 온라인 직접 구매가 활발해질 것'이라던 기재부 전망도 머쓱해진 셈이다. 류 팀장은 "해외 직접구매의 경우 관세를 내고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이 1이면 무관세 한도 내에서 구매하는 사람의 비율은 9정도였다"면서 "FTA 이후에 관세 부담 구매자의 비율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태그:#한미FTA, #FTA, #체리, #소비자, #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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