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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은 '다시 읽기의 기록'이다. 다시 읽어야만 해석은 성찰에 닿고, 비로소 나의 텍스트가 된다. 나의 텍스트가 된다는 것은, 그 책을 '마스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책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 반대하는 편이다. 책의 정신과 나의 정신이 만나는 지점, 그래서 어떤 갈망 혹은 가치로 기억되는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나의 텍스트로 기억하고 간직하겠다는 의지다. 피에르 자네는 "기억이란 하나의 행동이다, 본질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말하는 행동"이라 말했다. 서평은 그런 면에서, 하나의 행동이어야 한다.

책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이매진)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읽기 시작한 지난 며칠, 악몽과 불면에 시달렸다. 뭔가를 더 보태기 어려운 텍스트가 있는 법이다. 이번 서평은 텍스트에서 도망쳐야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다시 읽기와 도망치기를 반복하다 여기까지 왔다.

무려 9년간 이어진 아버지의 성폭행

 우리나라 최초의 친족 성폭력 수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우리나라 최초의 친족 성폭력 수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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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빠는 늘 엄마를 때렸고 아이들은 그것을 지켜봤다. 엄마가 일하러 나간 사이 아빠는 삼남매를 끌고 시골 할머니집으로 갔다. 그날 밤, 아빠는 딸을 성폭행했다. 충동적인 실수가 아닌, 치밀한 계획 아래 실행된 잔혹한 폭력이었다. 여자아이는 그때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 여자아이는 이듬해 임신해 낙태 수술을 받았다.

여자아이에 대한 아빠의 폭력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아빠는 고등학생이 된 여자아이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때린 뒤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게했다. 수능 전날, 아빠는 호텔에서 성폭력을 하려다가 저항하는 딸을 밤새 때리고 짓밟기도 했다.

이렇게 아빠의 성폭력은 여자아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무려 9년간 이어진 친족 성폭력이었다.

가족들에게 아빠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엄마는 맨몸으로 매맞는 일이 일상이었고,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빠가 딸을 성폭행한다는 것을 가족들은 알았지만, 다들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도리어 엄마는 늘 '너 때문에'라고 딸을 나무랐다. 아빠는 때리다가 성에 차지 않으면 혁대를 풀어 손에 감아쥐고 내리쳤다. 딸은 그런 아빠가 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때리다가도 시간이 되면 깔끔하게 옷을 갈아입고 수요 예배를 인도하러 갔다. 아빠는 목사였다.

대학생이 된 딸은 이렇게는 더 이상 살지 못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도망치고 잡혀 오기를 반복했다. 첫 번째 가출은 그녀를 상담한 어느 여교수 때문에 실패했다. 교수는 그녀 몰래 집으로 연락해 데려가라고 했다. 심지어 엄마에게 "이 아이도 오랜 시간 그 일을 당해서 그걸 즐긴 건 아닐까요?"라고 물었단다. 그렇게 집으로 잡혀가면 다시 죽을 만큼 맞았다. 가출하면 아빠는 엄마와 남동생을 앞세워 딸을 기어코 찾아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녀는 탈출에 성공하고 아빠는 성폭력특별법에 의해 구속돼 7년간 감옥에 갇혔다.

성폭력에 관한 불편한 진실

 그녀는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고 기어코 살아났다.
 그녀는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고 기어코 살아났다.
ⓒ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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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펴낸 '2010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성폭력 발생빈도는 32.5명으로, 가장 수치가 낮은 일본(1.2명)과는 30배 넘게 차이가 났고, 미국(28.6명)과 영국(24.1명), 프랑스(16.6명)보다도 높았다. 이 수치는 해마다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 수치는 당연히 신고된 건수만을 기준으로 한다. 피해자가 극심한 수치심에 시달리는 성폭력의 특성상 신고되지 않은 수많은 범죄들이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성폭력은 끔찍한 비율로 발생하는 일상적 범죄다.

성폭력은 사회의 남성성을 강화하고 피해자뿐만 아니라 여성의 존엄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몇몇 사람들은 '여성들이 스스로 조심한다면, 남성을 자극하지 않고 여성성을 절제하고 조신한다면 성폭력을 피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되레 '네가 그럴 만한 일을 했기 때문'이라는 추궁에 시달린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추론들은 명백한 허위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향해 가하는 또 다른 폭력이다. 이러한 사회의 부당한 시선 속에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선뜻 고발하지 못한다. 가해자의 복수, 사람들의 차가운 편견, 가십성 기삿거리로 사건을 다루는 사회의 시선 등 감당해야 할 두려움과 수치심은 성폭력에 못지않은 고통인 까닭이다.

저자는 '은수연'이라는 필명을 선택했다. 형제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는 하는데, 그런 면에서 '은수연'이란 이름은 합당하다. 그녀는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고 기어코 살아났으니까. 그녀는 아빠와도 맞서 싸워야 했지만, 세상의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70~80%가 정신 질환에 걸린다고 떠드는 정신과 의사의 말도 상당히 불쾌하다. 소설·영화 속에 등장하는 성폭력을 당한 여주인공들을 볼 때도 심기가 불편하다. 그 여성들은 엽기적이고, 침울하고, 어둡고, 우울하게 살면서 연쇄 살인을 하기도 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한다. 그러다 극의 말미에 가서는 엄청난 비밀이 한 겹 한 겹 벗겨지고 '그 여자는 어릴 적에 성폭력을 당했다'라는 이야기로 여주인공의 문제 행동을 이해시킨다."(본문 19~20쪽)

용기를 내어 치유의 길로 떠나다

저자는 아빠의 폭력에서 벗어난 다음, 비로소 자신이 자유로움을 좋아하고, 누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처음으로 자신이 듣고 싶은 강의를 신청하고, 처음으로 혼자 미용실도 갔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며, 치유를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다. 하지만 아빠를 벗어나면 다 해결될 것 같았지만, 그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았다.

"동화 속에서 힘들게 살던 여주인공은 고통에서 벗어나면 '왕자님을 만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더래요'로 끝이지만, 나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내 밝은 겉모습이 다 덮을 수 없는 것들이 속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기억. 그건 무서운 거다. 무엇으로도, 어떤 것으로도 지울 수 없고, 없앨 수 없다. 보상받을 수는 더더욱 없다. 지금 내가 자유롭고 즐겁게 살 수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 몸, 내 마음, 내 영혼, 내 시간에 남긴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엷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본문 56~57쪽)

그녀는 어느 순간 괜찮은 척하기를 멈춘다. 그리고 어느 때고 슬픔이 벅차오르면 울었다. 슬퍼하는 대로 자신을 내버려뒀다. 그로 인해 남자친구는 견디지 못하고 결국 떠났지만, 그렇게 그녀는 조금씩 깊고 깊은 상처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갔다. 무엇보다 시간을 견뎌야 가능한 일이었다.

"새 살이 돋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본문 76쪽)

그리고 그녀는 상처에 맞서 싸운다. 상처를 노출하고, 표출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빠를 직면하고 용서하기로 결정한다. 감옥에서 7년을 보내고 나온 아빠는 여전히 지독한 이기심을 가졌고, 가족들은 여전히 그의 곁에 있었고, 여전히 그는 목사였다. 반면 저자는 혼자였고 가난했고 여전히 눈물 많은 가녀린 존재였지만, 아빠를 용서하고 자유로워지기를 선택한다. 데이비드 그리피스는 "생존하기 위해서는 힘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저자는 살아남기 위해 지금껏 버텼다면, 앞으로는 용기를 내 자신의 삶을 살아내겠다는 당찬 꿈을 향해 길을 나선다. 

"수연, 이제 '용기'를 내기 위해 떠난다."(본문 227쪽)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자 은수연

 세계 여성의 날 로고.

오늘(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이날을 맞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하는 2013년 한국여성대회가 '여성, 빈곤과 폭력 없는 세상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열린다. 하지만 성평등은 아직도 요원하다. 우리나라의 성별 임금 격차는 38.9%로 OECD 1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전체 여성 노동자의 61.8%로 남성의 1.5배다. 성 격차지수는 108위로 OECD 최하위다(2012 세계경제포럼 참조). 성폭력 문제도 앞서 살핀대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올해 한국여성대회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자로 국내 최초 친족 성폭력 수기를 쓴 은수연씨를 선정했다.

나는 딸아이를 데리고 이번 여성대회에 참가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아무리 아픈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고, '견뎌내지 못할 아픔은 없고 끝이 없는 고통은 없다'고,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고 말하는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하여 '은수연'이란 존재를, 내 딸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희망의 이정표로 고이 간직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은수연 | 이매진 | 2012.08. 1만1500원)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http://soli0211.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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