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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별숲에 들다

한적한 산자락/도드라진 고운 별들
누가 흔드는지/흰 별 몇 개 깜박깜박

별빛 위로/여린 별들 돋아
별숲이 된/산자락에 들면
별똥별 하나/심장에 빛을 긋고

빛을 품은 시인의/고운 숨소리 들린다

이 시를 읽고 연상되는 모습이 있었다. 수줍은 많고 마음 여린 소녀가 밤하늘을 보며 숲속을 거닐고 있는 모습이다. 표정을 알 수 없는 소녀는 누군가를 동경하는 듯 눈빛이 초롱초롱하면서도 우수에 차 있었다. 머릿속에 연상되는 소녀의 모습은 시인을 만나고 정리됐다. 그녀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야리야리한 체구에 뽀얀 피부, 반달 눈웃음… 시에서 봤던 그 소녀가 맞았다. 빛을 품은 시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숨소리처럼 작고 고운 목소리로 그녀의 인생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시는 일상이다
▲ 공무원이자 시인이 이효순씨 그녀에게 시는 일상이다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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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녀를 안 건 한참 됐다. 군산시선거관리위원회 홍보담당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 홍보를 위해 전화 몇 통화와 딱 한번 만난 적이 있었다. 선한 인상에 호의적인 면모가 기억에 오래 남는 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편물 하나가 도착했다. 그 우편물에는 시집 한 권이 들어 있었다. 뜻밖의 시집선물에 미소가 지어졌다. 시인 프로필을 살펴보는 데 낯익은 이름이 등장했다. 반신반의 할 찰나, '군산시선거관리위원회 근무'라는 문구로 그녀가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달음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이번 달 초, 익산시선거관리위원회로 발령 났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다시 그곳으로 전화해 지난 달 23일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선관위 직원이 아닌 시인 이효순(45세)씨로 그녀를 다시 만난 자리엔 설렘이 가득했다. 분야는 엄연히 다르지만 같은 글쟁이(?)라 그럴까. 뭔가 통할 것 같은 기류를 눈빛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차분하게 시작됐다.

"시는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부터 쓰기 시작했을 거예요. 제가 하늘처럼 의지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깊은 슬픔에 빠졌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 불행이 뭔지 알았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 썼던 시의 제목이 '사막의 꽃'이었어요. 제목부터 심오하죠. 내용을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삭막한 사막(불행)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희망, 행복)을 피우겠다는 저의 다짐이 녹아내려진 작품이에요."

아버지 잃은 슬픔이 얼마나 컸던 것일까. 아버지를 말하는 그녀의 눈가는 금세 촉촉해졌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하던 목소리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깊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어요.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고 담아두는 성격인데 오랜 기간 담아두다 보니 슬픔이 누적됐나 봐요. 고등학교 땐 말 못하는 실어증까지 걸리고 말았어요. 학교에선 말 없는 학생으로 유명했죠. 게다가 철학책에 빠져 인생무상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잠도 못자서 쓰러지기 일쑤였고 병원신세도 많이 졌습니다. 제가 6녀 중 넷째 딸인데 어머니에겐 제가 가장 아픈 손가락일 거예요. 유독 많이 아파 어머니에게 걱정을 많이 끼쳐드렸거든요. 그때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이제 시간이 지나니 이렇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군요."

육체의 병보다 마음의 병에 걸려 학창시절 내내 암울한 나날을 보내던 효순씨에게 밝은 기운이 찾아오기 시작한 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다. 홀로 자식 여섯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를 위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나선 그녀는 첫 근무지가 군산시선거관리위원회였다. 초반엔 직장에서 말 않기로 유명한 직원이었다. 하지만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지인의 권유로 연극을 배웠다. 군산대학교 연극동아리 활동을 통해 실어증을 극복한 그녀는 야간이지만 성적장학금까지 받으며 대학(유아교육과)도 다녔다. 시는 생각 날 때마다 틈틈이 썼다. 혼자 쓰는 시가 지겨워 지고, 시를 배우고 싶을 땐 전주, 군산 할 것 없이 시 모임도 나갔다. 혼자 있는 시간보다 여럿이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그녀의 시 세계도 조금씩 밝아졌다. 그리곤 그녀 나이 서른 셋, 뒤늦게 운명의 남자를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 첫째아이를 낳고 기쁜 마음은 당연히 시로 표현됐다. 한층 밝아진 시 세계를 보며 그녀는 배움에 목말라 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진학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그 이후 그녀는 2001년 문예사조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청사초롱 회원, 전북펜클럽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우리 아이들이 시 쓰는 엄마를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첫째가 네 살 때 일거예요. 제가 쓴 시를 읽고 그냥 슬프다며 펑펑 우는 거예요. 그리고 저를 따라 시 같지 않은 시도 쓰더라고요. 시 쓰는 엄마여서 그런지 아이들이 굉장히 감성적으로 커가는 모습을 보며 저 또한 예전에 허무주의에서 탈피하게 되더군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부터는 알에서 깨어난 듯 새 삶을 살고 있는 기분입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그녀 곁에 항상 자리했던 시는 이제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취미 그 이상으로 시를 썼던 그녀가 책을 내게 된 이유는 문화예술진흥기금 대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지인의 권유로 신청한 이 기금은 군산에선 최종적으로 4명이 선정됐는데 그 안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집을 발간하고 나서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저 혼자만 쓰고 보던 시를 누군가에게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작아지더군요. 그리고 이런 시를 내놓고 독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을까 오랜 시간 고민했습니다. 고민의 결과는 배움으로 채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배움이라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설레는 것 같아요. 오는 3월 입학을 앞두고 아이처럼 설레고 있습니다. "

아버지 잃은 슬픔을 달래던 시가 어느덧 생활이 됐다는 그녀는 시인이 됐다. 시인이란 어쩌면 영혼의 위로자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의 영혼의 위로자가 되길 바라며 기자의 마음을 위로해준 시 한 편을 소개하며 그녀와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제목 : 아프지 않는 생은 없다

울긋불긋/화려하게 피어난 꽃
금세/시들해진다

묻고 싶다

한 번이라도/온몸 불태워
생을 피워본 적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서해타임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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