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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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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가수 장윤정이 1960~1970년대 히트곡 <닐리리 맘보>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를 열창한다. 당시 서독으로 갔던 광부와 간호사 복장을 한 안무팀이 함께 무대에 섰다. '국민 뮤지컬 행복한 세상' 분위기가 한층 달아올랐다. 파독 광부들의 모임인 재독 한인 글뤽아우프회의 고창원 회장과 파독 간호사들로 이뤄진 한독간호협회 윤행자 회장의 모습도 보인다. 이들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장면 2]

1968년식 캐딜락 승용차 한 대가 느닷없이 서울 도심에 등장했다. 25일 오후 4시 25분쯤 박아무개(54)씨가 4.5t 트럭에 검은색 구형 캐딜락 승용차 한 대를 싣고 와 지게차로 서울 광화문광장에 내렸다. 심하게 녹이 슨 차량 보닛 위에는 태극기가, 차량 앞뒤에는 봉황과 무궁화 표장이 부착돼 있었다.

자동차 부품 회사를 운영하는 자동차 애호가 박씨는 "이 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8대 취임식 때 사용한 캐딜락 플리트우드"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에 맞춰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이 취임식 때 탔던 차를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차량은 광장에 놓인 지 30분 만에 경찰과 서울시에 의해 광장 밖으로 옮겨졌다.

[#장면 3]

임기가 아직 1년 1개월이나 남아 있는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박 대통령의 취임식 날인 25일 전격 사임했다. 그는 보도자료를 통해 "정수장학회는 50여 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수립한 엄연한 공익재단"이라며 "이제 이사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수장학회는 MBC의 2대 주주이고, 최 이사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의전비서관 출신이다. 최 이사장은 지난 대선시기 MBC 지분매각방안을 김재철 사장 측과 협의하는 등 특정후보 지원 의혹이 불거졌던 당사자다.

박근혜 대통령의 '밀리터리룩'이 눈길을 끄는 이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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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대부분의 외신들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소식을 전하면서 그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췄다. 블룸버그통신의 기사 제목은 '독재자의 딸이 청와대에 돌아왔다(Dictator's Daughter Returns to S. Korea President Mansion)'였다.

이 기사는 "34년 전 청와대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며 암살당한 아버지의 '피에 젖은 셔츠(blood-soaked shirt)'를 씻어내던 박 대통령이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돌아왔다"(Thirty-four years ago, Park Geun Hye spent her last night in South Korea's presidential mansion washing her assassinated father's blood-soaked shirt. Today she returns as the country's first female president.)고 시작된다.

이 기사는 이어 "박 대통령의 성공은 18년간 한국을 독재한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Her success may hinge on whether she can escape the shadow of her father's dictatorial 18-year rule,)고 전했다.

CNN은 "박 대통령이 북한 핵무장의 망령과 '군사 독재자(military dictator)'인 박 전 대통령의 유산이라는 '두 거인의 그림자(the shadow of two giants)'가 드리운 중에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급한 '제2의 한강의 기적'은 한국 국민들에게 그녀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며 "한국전쟁의 잿더미에서 산업화된 도시를 만들어냈지만 정치적 탄압과 언론검열, 삼성·현대와 같은 재벌기업의 등의 문제가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곳곳에서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를 만날 수 있었다. 우선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박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단어를 4번이나 언급하며 '박정희 향수'를 자극했다. 박 대통령은 또 경제부문을 언급하면서 '성장'이라는 단어 대신 '박정희 시대'를 연상시키는 '부흥'이라는 단어를 5번 사용했다.

"하면 된다는 국민들의 강한 의지와 저력"은 대선 때 박 대통령이 "'잘 살아보세' 신화를 또 이루겠다"고 강조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대선 당시 박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준 50대 이상 장년층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취임식에서 박 대통령이 선보인 밀리터리룩은 단연 압권이었다. 금단추가 달린 군복 느낌의 카키색 코트식 재킷에 통이 넓은 검정색 바지는 군인 출신의 부친이 내세운 강한 리더십을 상기시킨다는 평가다.

앞서 박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5·16쿠데타 주역의 자식들과 2대째 연을 맺었다. 박 전 대통령의 육사 1년 선배로 5·16쿠데타에 참여한 고 서종철씨의 아들 승환씨를 국토해양부장관 후보로 내정한 것. 서종철씨는 박정희 정부에서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다. 역시 5·16쿠데타의 주축이었던 고 류형진씨의 아들 류길재씨는 통일부장관 후보자가 됐다. 류형진씨는 유신체제의 교육 지표가 담긴 국민교육헌장의 초안을 작성했다.

박 전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인물들도 중용됐다. 허태열 비서실장 내정자는 1974년부터 5년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1976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있으면서 경제개발 5개년계획 수립에 참여했다. 최성재 고용복지수석 내정자는 서울대 재학 시절 박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씨의 이름을 따서 지은 엘리트기숙사 정영사(正英舍) 출신이다. 이동필 농림축산부장관 후보자는 경북 출신으로 박 전 대통령이 설립한 영남대를 나왔다.

정신적으로 박 전 대통령을 추앙하는 인사들도 빼놓지 않았다. 1972년 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상을 받은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는 휴대전화 고리에 박 전 대통령 부부의 사진을 넣고 다닌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자신의 책에 5·16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인수위원회 고용복지분과 안상훈 위원은 지난 14일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강조하면서 "두 번째 새마을운동"이라고 지칭했고, 최성재 청와대 고용복지수석 내정자는 19일 "한국형 복지국가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짙게 드리운 '박정희의 그림자'... 어떻게 벗어날까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때 분향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모습.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때 분향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모습.
ⓒ 새누리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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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원회 국정기획조정분과 유민봉 간사는 지난 6일 새누리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새 정부를 '박정희 정부'라고 말했다가 급히 정정했다. 해프닝이었지만, '박근혜 시대'를 설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쇳말로 '박정희의 그림자'가 회자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리더십이나 국정과제 등이 '박정희 시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개발독재 시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외신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박 대통령이 성공을 위해 가장 염두에 둬야 할 과제는 '박정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비욘드 박정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이 박 전 대통령의 독재적 면모를 닮았다는 지적은 여러모로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겉으로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지만, 법치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정수장학회 논란과 관련 기자회견을 통해 "법원에서 강탈이 아니라고 해서 원고 패소했다"는 언급만 되풀이하다가 결국 나중에 이를 정정해야 했다. 박정희 시대 '사법살인'으로 꼽히는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에 대해 지난 2007년 대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렸지만 그는 지난해 "두 가지 판결이 나왔으니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심만을 인정하는 우리 사법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비난에 직면한 순간이었다. 그는 2007년 당시 기자들과 만나서도 "(무죄판결은) 나에 대한 정치공세라고 생각한다. 지난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이고 이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인데, 그러면 법 중 하나가 잘못된 것이고 이는 역사와 국민이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 '두 개의 판결'이라는 그의 인식은 5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 보여줬던 '깜깜이 인선'이나 고시·관료 출신 중용 역시 대표적인 '박정희의 그림자'로 해석된다.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국회에서 통과도 안 된 상황에서 장관 내정자부터 발표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야당을 협상 파트너로 보지 않은 것이다. '김용준 낙마' 사태 이후 총리가 공석인 상태에서 장관 내정자를 발표한 것도 헌법에 보장된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정권을 무시했다는 지적이다

매머드급 규모의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은 박정희 시대에 경제부처들을 상대로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던 경제기획원에 비유되곤 한다. 미국에서 성공한 인재라는 이유로 국적 논란까지 감수하면서까지 김종훈 미국 알카텔루슨트 벨연구소 사장을 장관 후보자로 내정한 것도 박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박 전 대통령도 조국 근대화에 동참해 달라며 해외 유학파들을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경호처를 경호실로 확대해 장관급 경호실장을 두기로 한 것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3년 설치한 경제부총리 제도를 부활시킨 것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일반 호칭인 '국민'(58번)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행복'이다. 21번이나 등장했다. '문화'는 19번으로 뒤를 이었다. '희망'(10번) '신뢰'(8번)도 자주 사용됐다. 과연 박 대통령은 "국민의 행복을 위해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취임사를 집권 5년 내내 지켜낼 수 있을까?


태그:#박근혜 대통령, #대통령 취임식, #박근혜 취임사, #박정희 전 대통령, #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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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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