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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아휴 어쩌니 우리 아기…"

중년의 여인은 혼자 서 있기 힘들어 했다. 옆에 있던 아들이 엄마를 부축했다. 곧이어 딸이 헐레벌떡 뛰어와 병원 문을 열었다. 동물병원 의사는 냉동고에서 담요에 쌓인 요크셔테리어를 꺼냈다. 중년 여인은 꽝꽝 얼어있는 요크셔테리어의 모습을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 한숨을 내 쉬던 여인의 몸이 휘청이다 이내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균형을 잡았다.

갑자기 숨이 멎었다. 14년간 막내아들이라고 생각하고 함께 살았던 요크셔테리어 아지가 죽었다. 이미화(가명)씨가 죽은 아지를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병원에서는 두 가지 방법을 알려줬다.

첫번째 방법은 단체 화장이었다. 단체 화장은 말 그대로 단체로 소각하는 것을 뜻했다. 기본 2만 원의 화장비를 내면 동물병원은 한 달에 두어 번 동물 사체를 모아 의료폐기물로  소각하는 업체에 넘긴다.

반려동물의 가족이 직접 장례식장에 올 수 없을 경우, 장례업체는 관을 가지고 직접 반려동물의 사체가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 관 속에 놓여있는 반려동물의 사체 반려동물의 가족이 직접 장례식장에 올 수 없을 경우, 장례업체는 관을 가지고 직접 반려동물의 사체가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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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화장이란 것도 있었다. 2008년 동물장묘법(동물 전용 장례식장이나 화장장, 납골시설을 설치·운영에 관한 법)이 생기면서 반려동물의 장례를 치러주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 화장은 비용이 좀 비싸긴 하지만 장례의 전 과정을 가족이 지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지를 끔찍이 아꼈던 이씨는 생각할 것도 없이 두번째 방법을 택했다.

이씨는 1999년 최초로 반려동물 장례 서비스업을 시작한 장례업체에 아지의 장례를 맡기기로 했다. 김포시에 위치한 업체는 장례식장에서 한참 떨어진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이씨를 위해 전화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관을 가지고 병원으로 왔다. 이씨는 딸, 아들과 함께 장례업체의 차를 타고 김포로 향했다.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도 된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아니 무슨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도 된다며… 어떻게 그런 법이 있을 수가 있어? 그 애기를, 가족을…"

현재 동물의 사체는 생활폐기물로 분류되어 있다. 장례업체에 맡기거나 병원의 단체 소각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 동물의 사체는 매장할 수 없으며 종량제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려야 한다.

차 안에서 이씨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옆자리의 딸은 그런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아들은 창밖을 내다봤다. 함께 차에 타고 있던 반려동물 장례업체 박민우 과장은 "그래도 우리 아기는 이렇게 가족들의 사랑을 받고 떠나니 행복할 거예요. 걱정 마세요, 좋은 곳 갔을 거예요"라며 이씨 가족을 위로했다.

한 시간이 걸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직원이 이씨네 가족을 맞았다. 그는 이씨에게 "종교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었다. 직원이 종교를 물은 이유는 1층 장례식장 안에 기독교와 불교, 두 종류의 분향실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라고 답하면 관계자는 찬양가 CD를 틀고 십자가가 놓여있는 분향실로 유족들을 안내한다. 불교일 경우 유족들은 목탁소리가 울려 퍼지고 불상이 있는 분향실로 안내된다.

분향실은 기독교식과 불교식으로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가족들은 반려동물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 장례식장에 마련된 분향실 분향실은 기독교식과 불교식으로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가족들은 반려동물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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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기본적으로 광목천이 제공되며 수의와 관을 추가로 선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지만 강요하지는 않았다. 삼베수의는 5만 원이고 관은 고급관과 오동나무관으로 10만 원에서 20만 원 대의 추가비용이 붙는다.
김씨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무교인 이씨네 가족은 불교로 차려진 분향실에서 아지와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가족이 10분 내외의 인사를 마치자 직원은 아지를 데리고 바로 옆 화장장으로 들어갔다. 아지에게는 광목천이 입혀졌다. 가족이 이 모습을 지켜 볼 수 있도록 화장장 밖에는 큰 창이 있었다.

500마리가 안치된 반려동물 납골당

장례식장의 2층에는 납골당이 마련되어 있다. 납골당에는 약 500여마리의 반려동물이 안치되어 있다.
▲ 납골당 전경 장례식장의 2층에는 납골당이 마련되어 있다. 납골당에는 약 500여마리의 반려동물이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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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이 5kg 안팎일 경우 화장하는데 40분이 걸린다. 직원은 아지가 8kg이라 한 시간이 걸릴 예정이라며 2층의 납골당으로 안내했다. 보통 5kg의 반려동물을 화장할 경우 20만 원의 비용이 든다. 1kg을 초과할 때마다 1만 원씩 추가 요금이 든다.

납골당에는 반려동물 500마리가 안치돼 있다. 이곳에는 유골함뿐만이 아니라 가족들의 사진과 반려동물이 평소 좋아했을 것으로 보이는 간식, 직접 쓴 편지와 장난감들이 놓여있다.

납골당은 납골함이 놓인 자리에 따라 1년에 10만 원부터 20만 원의 유지비용을 내야 한다. 보통 맨 아랫줄이 가장 싸고 눈높이에 맞는 4-5째 줄이 제일 비싸다. 납골당에 납골함을 둔 이들은 이틀에 한 번 꼴로 방문하거나 매 주말, 혹은 매년 기일에 맞춰 장례식장을 찾는다.

납골당에 반려동물을 둔 가족들은 동물의 사진과 간식들을 함께 두고 간다
▲ 반려동물의 사진과 평소 좋아했던 간식들 납골당에 반려동물을 둔 가족들은 동물의 사진과 간식들을 함께 두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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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장례 서비스 업체를 운영하는 박영옥 대표는 "한 달에 적게는 다섯 분에서 많게는 열 분이 납골당을 택한다"며 "한 달에 한 두 번은 앵무새, 토끼, 고슴도치나 이구아나 등의 반려동물이 온다"고 말했다.

그는 화장 후 반려 동물의 처리에 대해 "납골당이 납골함을 두는 분들이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재를 땅에 묻거나 산책로에 뿌리는 사람이 많다"며 "가끔 집에 유골함을 두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납골당에서 만난 박미희씨(가명)는 13년을 함께 산 반려동물 미미를 납골당에 두기로 결정했단다. 박씨는 "우리 미미 외롭지 않게 친구들이랑 잘 놀라고 여기 두는 거예요"라며 미미의 사진을 쓰다듬다 이내 울먹였다. 그는 돌아오는 일요일, 아들과 함께 다시 이곳을 찾겠다며 장례식장을 떠났다.

한편, 이씨와 가족들은 납골당에 있는 다른 반려동물의 사진과 이름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한 시간여가 흘렀다. 가족들은 1층으로 내려와 유리창 밖에서 재가 된 아지를 확인했다. 장례업체 관계자는 가족들에게 재를 보여주고 다시 이를 곱게 빻았다. 손바닥만 한 솔로 재를 흰 봉투에 담는 과정은 천천히 진행된다. 뒤이어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재가 납골함에 담겼다.

이씨와 가족들이 반려동물 아지의 화장을 기다리고 있다
▲ 반려동물 아지의 화장을 기다리는 이씨와 가족들 이씨와 가족들이 반려동물 아지의 화장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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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골함을 집에 둘 건데 벌레가 생기거나 하지 않아요?"
"그거 다 인터넷에 떠도는 헛소문이에요. 벌레 전혀 안 생기니까 걱정 마세요."

납골함은 10만 원, 15만 원, 20만 원의 세 종류다. 이씨는 1황토로 만들어져 곰팡이 저항에 우수하다는 15만 원짜리 납골함을 택했다. 직원은 납골함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스펀지로 막았다. 이어 흰색 보자기로 납골함을 싼 뒤 이씨에게 건넸다.

공기가 통하지 않게 스폰지로 유골함을 막은 뒤 이를 다시 보자기로 묶는다.
▲ 유골함을 묶는 마지막 과정 공기가 통하지 않게 스폰지로 유골함을 막은 뒤 이를 다시 보자기로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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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아지의 화장비용과 납골함의 비용으로 총 38만 원을 결제했다. 이씨는 "돈이 부담스럽다"면서도 "그래도 가족을 쓰레기 봉지에 담아 버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가족이기에 예를 다하는 것이다"

장례업체 박 대표는 "10년을 넘게 함께 산 반려동물의 죽음을 계기로 이 일을 시작했다"며 "그러기에 가족들의 마음을 충분히 안다"고 사업을 시작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반려동물이 죽고 나서 사후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구청에 전화해봤더니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리라고 하더라"며 "도저히 그렇게 버릴 수 없어 새벽에 남몰래 땅에 묻은 기억이 있다"고 했다.

이어 박 대표는 "이곳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돈이 많아 오는 것이 아니다"라며 "가족이기에 예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반려 동물 장례식장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라며 "2000년대 초 한 달에 50~100마리의 반려동물을 화장했는데 지금은 한 달에 150~300마리를 화장한다"고 말했다.

‘우리 강아지 둥이가 하늘나라에서 잘 살게 해주세요’라고 적힌 편지가 납골당 한편에 붙여 있다
▲ 반려동물에게 쓴 편지 ‘우리 강아지 둥이가 하늘나라에서 잘 살게 해주세요’라고 적힌 편지가 납골당 한편에 붙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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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부 동물장례업체에서 비싼 수의나 관을 강요해 비판을 받는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듯 "수의나 관은 선택 사항일 뿐"이라며 "처음에 수의와 관에 대해 설명을 하지만 보통 20만 원 정도의 기본 화장을 권한다"고 했다.

한편, 동물 전용 장례식장이나 화장장, 납골시설을 설치·운영하는 동물장묘업이 인정된 것은 2008년부터다. 농림수산식품부 방역총괄과 관계자에 따르면 2011년 말부터 장례업체에 정식 등록 후 운영하는 동물 전용 장례업체는 2013년 2월 기준 전국에 총 5곳이다.

359만 가구의 반려동물은 나중에 어디로?
"요란한 광고, 비싼 수의나 관을 강요하기도"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조사 결과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2012년 359만 가구에 이른다. 또한 2013년 1월 1일부터 10만명 이하의 시·군을 제외하고  3개월령 이상의 개를 소유한 사람은 시·군·구청에 반드시 등록해야 하는 '동물등록제'가 시행되고 있다. 동물 등록제는 반려동물을 잃어버렸을 때 동물보호관리시스템(www.animal.go.kr)상 동물등록정보를 통해 소유자를 쉽게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시작됐다. 등록하지 않을 경우 100만 원 미만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는 2013년 1월 1일부터 2월 18일까지 총 4만 1790건이 등록됐다고 밝혔다.

인생의 반려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반려동물'.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람과 가구는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사후 대책은 '동물장묘업'과 종량제 쓰레기 봉투를 이용하는 것, 의료폐기물로 소각하는 것 뿐이다.

공식적으로는 전국에 5곳의 장례업체가 있지만 무허가로 운영되는 곳도 많다. 모 장례업체 대표는 "외곽에 창고 하나 두고 소각해버리고 끝내는 무허가 업체도 많다"며 "요란하게 광고해놓고 막상 가보면 비싼 수의나 관을 강요할 뿐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 없는 곳들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사후에 개인화장을 택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19일 홍대의 모 애견카페에서 만난 이들은 한결같이 "개인화장이 당연하다"고 했다. 시츄 두 마리와 함께 산다는 권태연씨는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아이들이 죽으면 화장 후 산책하던 길에 뿌려주겠다"고 말했다. 박마리씨 역시 "지금 세 마리의 말티즈를 키우고 있는데, 작년에 한 마리가 하늘나라로 갔다"며 "그때에도 화장을 하고 할머니 묘 근처에 뿌렸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라고 했다.

10년째 홍대에서 애견카페를 하고 있는 박상준(가명)씨는 "15년 같이 살던 아이가 죽었을 때의 심정은 아무도 모른다"며 "한 때 집에 들어가기 싫어 매일 술을 마셨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반려동물의 화장에 대해 장례업체를 등록하게 하는 것 외에 별다른 정책이 없다는 건 아쉽다"며 "동물 장묘업 인정만으로는 부족하하다"며 대안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 무허가 업체들을 적발하고, 허가받은 업체들은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경옥 동물보호행동 소속 활동가는 "동물보호단체는 살아있는 동물의 복지에 대해 고민하느라 사후의 과정까지 크게 다루지 않고 있다"면서도"동물의 사체를 생활폐기물로 버리는 것은 비인도적이기 때문에 동물보호법에 장례업체 등록조항이 생기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신나리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반려동물 , #반려동물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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