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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전 노을을 찍기 위해 나섰다가 교실을 탈출하는 학생을 보고 순간 셔터를 누르다.
▲ <지속되는 과도기> 탈출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전 노을을 찍기 위해 나섰다가 교실을 탈출하는 학생을 보고 순간 셔터를 누르다.
ⓒ 김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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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사진작가나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땀과 시간이 담긴 작업이 평가받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공간이나 지면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온빛사진상은 무엇?
2011년 국내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뜻을 모아 만든 사진상. '사진가들이 주는 사진상'이라 불린다. 2012년 2회째를 맞았는데, 2012년 11월 15일부터 17일 동안 응모를 받고, 60명의 지원자 중 최종 11명이 선정됐다.

심사 결과 김석진 작가의 '지속되는 과도기'가 최종수상작으로 선정됐다. 1회 온빛사진상 최종수상작은 한설희 작가의 '노모'였다.
그런 의미에서 2011년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만든 '온빛사진상'은 그 이름처럼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에게 따뜻한 빛을 나눠주고 있다. 자신 말고도 개별적으로 작업을 하는 사진가들이 이렇게 많음을, 그들의 작업이 자신에게 영향을 줄 정도로 뜻깊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며, 자신의 작업이 어느 정도 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빛사진상 1차 예선을 통과하고 최종 결선에 오른다는 것은 작가 개인에게 무한한 기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임이 틀림없다. 다른 작가와 운영위원회의 다큐멘터리 사진가에게 자기 작업의 의미와 결과를 제대로 전달해야 하는 5분 프레젠테이션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수시 모집에 모든 것을 걸었던 학생이 실패 후 홀로 교실에 남아 있다. 위로를 위해 찾았다가 흐리지 않는 눈물이 보이는 듯해 기록으로 남기다.
▲ <지속되는 과도기> 흐르지 않는 눈물 수시 모집에 모든 것을 걸었던 학생이 실패 후 홀로 교실에 남아 있다. 위로를 위해 찾았다가 흐리지 않는 눈물이 보이는 듯해 기록으로 남기다.
ⓒ 김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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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검 승부의 현장에서 '지속되는 과도기'로 2012 온빛사진상 수상의 영광을 안은 김석진 작가가 마침 전시(류가헌 갤러리서 26일부터 3월 3일까지) 준비로 서울을 찾았다. 지난 23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만난 그에게 당시의 기억을 물었다.

"그날 저녁에 어떻게 보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처음 사진과 교수님께 제가 1차 통과를 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프레젠테이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여쭤봤죠. 그랬더니 교수님이 사진만 준비하면 된다고 해서 사진만 담은 파일을 준비해 갔습니다. 그랬더니 배경음악부터, 동영상까지 제대로 준비된 프리젠테이션이었고, 게다가 거기에는 지난해 '공장 가는 길'로 아쉽게 탈락했던 해고노동자 박주석 작가의 '간이 세금계산서'(2012 온빛사진상 특별상 후지필름상 수상)도 있더군요. 사실 다른 누리집에서 그 사진들을 보고 감탄을 했던 터라 이번에는 참가에 의의를 둬야겠다고 생각했죠."

기쁨과 긴장 그리고 마음의 비움을 지나 다시 놀라운 환희로 이어지는 순간이었으니, 다른사진가들과 연락처도 주고받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단다. 이제 제법 시간이 지났으니 그때 제대로 따져보지 못했을, 자신이 무엇으로 온빛사진상을 받게 됐는지 차분히 생각해볼 여유는 충분했을 터.

"아무래도 오래 작업했다는 점에서 점수를 받은 것 같아요. 2005년부터 기록을 시작했으니 작업 기간으로는 가장 길었죠. 제가 학교 교사(진주고등학교 재직 중)다 보니 처음부터 호흡을 길게 가져갔던 것이죠."

이는 "단일 작품이 아닌 포트폴리오 전체의 완성도가 높은 참가자를 선정했다"는 온빛사진상 운영위원장 박하선 작가의 이야기에서도 확인된다. 그럼이 온빛사진상은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개별적으로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공개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더라도 그걸 공개할 지면이나 기회는 거의 없는 게 국내의 현실이잖아요. 덕분에 저도 그때 다른 작가들의 프레젠테이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면서 '저런 주제로 작업이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기록의 집착과 아버지의 유산

야간자율학습 때 떠든 학생은 홀로 복도에 격리된다. 그리고 감독관은 복도를 거닐고 있다.
▲ <지속되는 과도기> #13 1:1 야간자율학습 때 떠든 학생은 홀로 복도에 격리된다. 그리고 감독관은 복도를 거닐고 있다.
ⓒ 김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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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진을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넘치는 게 디지털 카메라요,소비하는 게 이미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기록이 제대로 대우받기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또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로 만날 수 있는 사진 작품이 적은 곳이 바로 이 나라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장시간의 노력과 인내 그리고 정리가 필요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이들에게 어떻게 사진을 만나고, 기록을 시작하게 됐는지 묻는 것은 예의를 넘어선 호기심일 수밖에 없다. 김석진 작가는 통속적인 이야기라며 처음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던 순간을 말했다.

"첫 카메라는 장롱에 보관돼 있던 것이었죠.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니콘 F3이었어요. 제가 역사교육과에 진학하고 답사에서 유물을 기록할 사진기를 찾다 보니 그 카메라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됐죠. 그렇지만 이때만 해도 사진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당시 제가 만화가를 꿈꿨던 터라 단지 작업의 부수적인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편이었죠.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임용되고 나니 만화를 그릴 시간이 충분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빠른 이미지의 결과물을 찾다가 사진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거죠. 게다가 역사를 공부해서 그런지 제가 기록에 대한 강박관념도 있는 편이어서, 제 나름대로 교육 현장의 이미지를 남겨 개인적인 역사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10여 년을 작업하다 보니 항상 카메라를 들고 학교에 가게 됐고,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던 주변 선생님이나 학생들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됐단다.

하지만 작업이라는 게 그저 셔터만 누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이런저런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가장 단순하고도 실질적인 문제는 현상과 인화였다고 한다. 어떻게든 독학으로 흑백 현상과 인화는 배웠지만, 컬러 현상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다른 곳에 맡기게 됐다. 그렇지만 많은 작가가 경험했듯 그 시간과 결과가 마음에 드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결국, 자연스럽게 작업은 디지털로 넘어가게 됐고, 지금도 중형과 흑백으로 기록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필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중대한 문제는 작업의 방향을 잡는 일이었다.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는 그야말로 주먹구구였으니, 곁눈질로 모든 것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보고 따라 했던 것이 바로 여기저기 공모전에 사진을 보내는 것이었다. 덕분에 '서울사진대상'이라든지 나름의 수상과 입선 경력도 만만치 않게 갖추게 됐지만, 의미 없어 보이고,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고민 끝에 김석진 작가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닌 개인적인 깨달음으로 시작된 이 작업은 2011년에 부활한 한국사진작가협회의 2030 청년작가로 선정됨으로써 나름의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그리고 우리는 괜찮은 다큐멘터리 작가 한 명을 만나게 됐다.

희망으로 말하는 학교의 과도기

그들을 수용하는 공간에서 겪어보지 못한 일들은 창의성이 아니라 일탈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 작업노트 중에서
▲ <지속되는 과도기> #18 그들을 수용하는 공간에서 겪어보지 못한 일들은 창의성이 아니라 일탈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 작업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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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전체 조례에서 몇몇 학교는 전통에 따라 여전히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지속되는 과도기> #4 학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전체 조례에서 몇몇 학교는 전통에 따라 여전히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김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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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직 교사다. 아무래도 사진에서 길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의 존재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그의 장점이 되기도 한다.

그럼 그가 느끼는 학교 현장은 어떨까. '과도기'라는 말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중간의 모습이며, 과거의 잔재가 남아 있는 시간과 공간을 뜻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업노트를 보자.

'학교가 가지는 시대성에 주목하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은 학교라는 공간이 가장 변화가 빠른 공간임과 동시에 가장 변화가 없는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매년 바뀌는 교육의 수혜자들(학생)은 최첨단을 달리는데 그들을 수용하는 공간(학교)은 그 변화를 적절하게 좇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중략) 우리 교육 현장은 계속되는 과도기 속에 있다. 여전히 두발 단속은 행해지고 있으며 구타와 같은 체벌이 사라진 대신 또 다른 점수화된 체벌들이 기다리고 있다. 전체 조례에서 몇몇 학교는 전통에 따라 여전히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스마트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시점에서 학생들의 휴대전화 소지는 금지되고 있다.

굳이 왕따나 이지메라는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전체 집단과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이 존재한다. 야간자율학습이라는 이름의 야간타율학습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 내가 학생일 때도 과도기의 모습이었던 학교는 내가 교사가 돼 학교로 돌아온 이후에도 계속되는 과도기 속에 있다. 내가 이 지속되는 과도기를 일시에 깨뜨릴 수 없는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해도 이를 인식하고 기록하며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작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김석진 작가가 '과도기'의 멈춤에만 집착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이미 다음 단계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이번 사진 작업은 아직 남아 있는 잔재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고 있는 것이란다.

그가 보기에는 학교와 교실은 많이 변해가고 있다. 다가가기 어렵고, 지시만 하던 예전의 권위적인 관계와 선생님은 점차 사라진다. 그 자리에는 친구와 형 같은 교사가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현재 사람들이 교권의 붕괴를 걱정하고 있지만, 이것은 '친밀함' 때문에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친할수록 지킬 것은 지킨다는 말이 있다. 그걸 무시하고, 친밀함이 문제인 것처럼 말하며 체벌 등 권위적인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는 것이다.

결국, 지금의 교육 현장은 성장통을 겪고 있는, '과도기'에 놓여있는 것이다. 작가는 점차 그 과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희망을 말한다. 흑백 명암이 뚜렷한 사진에서 현재 학생의 고달픔, 현장의 아쉬움과 함께 한 줄기 따뜻함을 느끼는 것은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니겠나 싶다.

물론 그도 소위 '문제아'들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는 1000명 중 한두 명 있는 학생들로 교권 붕괴를 운운하는 것은 과장이라 말한다. 오히려 대다수 학생과 교사는 그런 학교의 문제와 교단·교권의 붕괴를 주목하지 않는단다. 원색적인 내용에만 대중의 관심과 반응이 쏠리고 있다는 이야기.

그의 작업이 입시 문제와 학생의 괴로움 등과 같은 교육 현장의 민낯을 그렇게 당당하게 바라보고 기록할 수 있는 것은 학교 현장의 자정 능력에 대한 그의 믿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당연히 그의 다음 학교 연작 또한 그런 믿음에 닿아있다.

여전히 두발 단속은 행해지고 있으며 구타와 같은 체벌이 사라진 대신 또 다른 점수화된 체벌들이 기다리고 있다. - 작업노트 중에서
▲ <지속되는 과도기> #5 여전히 두발 단속은 행해지고 있으며 구타와 같은 체벌이 사라진 대신 또 다른 점수화된 체벌들이 기다리고 있다. - 작업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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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다고 느껴져요. 사실 IMF 이전만 하더라도 교사가 그리 각광받던 직업이 아니었지만,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교사라는 직군에 관심이 높아지지 않았나 생각돼요. 그러면서 희망자가 많아지고, 다른직업보다 편하다고 인식됐죠. 거기에 각종 비리 논란에 휩싸이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겨난 것이죠.

그래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어디에서 왔는가' '교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나'를 실제 삶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을 하려고 해요. 이는 저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그의 사진을 어떻게 생각할까. 의외로 대부분 축하를 해준단다. 주변 사람들은 학생들의 초상권 등을 걱정하는데, 김석진 작가는 그건 학교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생각이란다. 선생과 학생의 관계에서는 그런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기 마련이고, 또 간혹 당돌하게 자신의 초상권을 말하는 학생과는 어깨동무하고 매점에 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호탕하게 해결된단다.

우리 사진계의 복인 셈이다. 학교 현장에 관한 생생한 기록이 남겨지게 됐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더욱 기대되는 것은 지난 10여 년 동안 찍어온 양보다 앞으로 담을 현장이 더 풍요롭게 쌓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 그만큼 작가가 이야기하는 희망의 수는 더 많아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작가와의 대화는 즐거웠고 더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지만, 전시에 바쁜 그를 흔쾌히 보내줬다. 그런 마음도 앞으로의 '희망'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도 이어질 그의 학교 현장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스마트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시점에서 학생들의 핸드폰 소지는 금지되고 있다. - 작업노트 중에서
▲ <지속되는 과도기> #9 스마트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시점에서 학생들의 핸드폰 소지는 금지되고 있다. - 작업노트 중에서
ⓒ 김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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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피크(www.newspeak.kr)에 함께 실렸습니다.



태그:#사진, #다큐멘터리,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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