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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 전 국회 본관 풍경
 취임식 전 국회 본관 풍경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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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지만 무사히 대통령 취임식은 끝났나봅니다. 오전 내내 엄숙한 국회 광장에서 한바탕 들썩거리더니 이내 다시 예전 조용한 국회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일에 열중하느라 가수 싸이의 멋진 춤사위도, 실물이 그렇게 예뻤다던 개그맨 신보라의 얼굴도 못봤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출근길 아침부터 열 받아서 쳐다보기도 싫었답니다. 왜냐고요? 그럼 짤막한 출근길 전쟁 이야기 한번 들려드릴까요.

오전 7시에 일어나 대충 고양이 세수로 끝내고 인천 백운역에서 부랴부랴 전철을 탔지요. 근데 이상하게도 아침부터 난리 부르스 한판이 벌어지는 게 아닙니까. 아닌 게 아니라 여의도로 향하는 전철은 그야말로 '사람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노인분들이 아침부터 이렇게나 많이 나왔는지 5일장 시장통 분위기를 방불케했습니다. 저마다 한 손에는 취임식 초대장을 들고 마치 훈장이라도 탄듯 자랑스럽게 여의도로 향하고 계셨습니다.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혼탁한 전철 안에서 경로석에 앉아 편하게 가는 어떤 어르신은 이렇게 푸념을 하고 가시네요.

"요즘 젊은 것들 정신상태가 돼먹질 못해서. 쯧쯧. 경로우대사상도 없고. 이참에 아예 바로잡아야 해. 못돼먹은 것들. 에잇~."

전철 타고 가면 으레 듣는 이야기죠. 그래도 이 어르신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궁금해지네요. 혼잣말로 하는 듯 싶었는데 어떤 연유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지금도 아리송합니다. 경로우대를 받으며 편하게 목적지엘 가는 데도 대체 왜그러셨던 걸까요?

2월 25일 오전 9시께 국회의사당 앞 대로 모습. 도로는 모두 막아놓은 채  좁디좁은 간이 출입심사대에 사람들이 몰려 들어가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국회 직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2월 25일 오전 9시께 국회의사당 앞 대로 모습. 도로는 모두 막아놓은 채 좁디좁은 간이 출입심사대에 사람들이 몰려 들어가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국회 직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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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 도로 주변 간이 출입심사대 모습
 국회 앞 도로 주변 간이 출입심사대 모습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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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 전철을 1차로 끝내며, 드디어 2차 노량진 환승역을 빠져나와 9호선 국회의사당행 지하철로 들어왔습니다. 일반 전철역보다 작게 만들어져 있는 승강장 전체 구간이 사람들로 미어터집니다.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발디딜 틈조차 없을 지경입니다. 역시나 대통령 취임식으로 인한 교통장애입니다.

이윽고 열차가 도착함을 알리는 벨이 울립니다. 허나 김포공항행 급행열차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모르고 처음 방문하는 여느 어르신들은 그냥 급행전철에 짐짝 밀어넣듯이 떠밀려 타고 떠납니다. 하긴 전철 대기 부스 안에 안내원 한 사람도 없고, 제대로 된 이정표도 없으니 처음 오시는 어르신들이 급행인지도 모르고 탔겠죠. 도대체 어디까지 가셨을까요(참고로 국회의사당을 가려면 반드시 일반 개화행을 타야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어찌어찌해서 국회의사당역에 드디어 도착했는데 여기저기서 뛰어가는 사람에 밀려 죽을 뻔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는 이미 고장난 상태였고 자칫 넘어지면 대형사고는 불보듯 뻔했습니다. 하지만 중간 경유지에도 제대로 된 안전요원이 없었습니다. 겨우겨우 에스컬레이터 상부에 올라가자 경찰 몇몇이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경찰을 뒤로한 채 개찰구로 좌회전 하는 순간, 길게 늘어선 수십 명의 줄이 또 한 번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여의도길 어언 6개월 만에 처음 겪는 개찰구 대기 전쟁이었습니다. 국회 개찰구 빠져나가는 길이 바늘구멍보다 좁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로열 몇 십 줄로 늘어난 대기행렬에 사람들은 이내 통한의 한숨을 내쉽니다. 그야말로 한숨의 바다입니다.

그렇게해서 개찰구를 빠져나가는 시간만 20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하지만 또 이게 뭡니까. 항상 다니던 전철 내 국회로 향하는 출구 셔터를 아예 막아놓고 에둘러 가는 통로 2곳만 열어 놓은게 아닙니까. 경찰에게 항의도 해봤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돌아가셔야 합니다"뿐이었습니다. 정말 아침부터 '분노 게이지'가 하늘 끝까지 상승했습니다. 

국회 정문 앞을 통째로  가로막고 있는 방송3사 카메라데스크의 철제 구조물 풍경
 국회 정문 앞을 통째로 가로막고 있는 방송3사 카메라데스크의 철제 구조물 풍경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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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 리허설 풍경
 취임식 리허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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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인'자 백 번을 가슴에 새기고 돌아 돌아 지상으로 나왔더니 더욱 가관입니다. 국회 앞 도로는 죄다 막아놓고 출입심사창구로 변신시켜 오가는 사람들을 범죄인 취급하듯 경호원들이 노려 봅니다. 저는 다행히 의원실 소속 직원이라 속으로 빨리 재량껏 보내줄 거라 기대했지요. 허나 '기대는 금물, 실망은 금방'이라 했듯 겹겹의 심사처를 그대로 똑같이 통과해야 했습니다. 결국 참을 '인'자가 하늘로 날아간 지 오래가 되어 결국 폭발하고야 말았지요.

"저, 국회 직원인데요. 직원입니다. 직원이라고요.(휴~). 직원이니 그냥 보내주시죠. 아, 놔~ 국회 직원이라고옷~!!'

결국 저는 국회 앞을 제 시간에 도착해서도, 겹겹의 삼엄한 경비 때문에 30분을 그대로 도로에 쏟아부어 지각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아, 도대체 이 불편한 취임식 출근길 전쟁의 진실은 무엇인지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이 그렇게 대단하고 중요한 일이었으면 더욱 더 철저히 준비하고 배려할 일이었지요. 국가행사를 치르면서 이런 무성의한 준비와 국민 배려 없는 출입 심사에 그야말로 앵그리버드의 '화~가~난~다'가 떠오를 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하늘이 뚫리고 도로가 갈라지는 그런, 열 받는 취임식 아침 출근길이었습니다.

취임식 전날 의자를 닦는 소방관들 모습과 군부대 폭발물처리반 모습
 취임식 전날 의자를 닦는 소방관들 모습과 군부대 폭발물처리반 모습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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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근혜 대통령, #18대 대통령 취임식,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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