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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사들이 대형 할인마트에서 무이자 할부 결제를 전면 중단했다. 이에 대해 일부 소비자 단체와 언론에서는 소비자들만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식으로 소비자들의 불만을 전달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그럴 듯 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겉으로 비쳐지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소비자의 불편이 가중되는 측면이 일부 있겠으나 어떤 측면에서는 소비자에게 소비 구조를 변화시킬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언론의 지적이 소비자 편의에서 출발하는 것인지 대형마트의 판매량 감소 우려가 만들어내는 압박용 언론 플레인지 의심스럽다.

대형마트 무이자 할부의 '함정'

서울 은평구 이마트 매장 입구에 구입한 상품을 담는 카트가 세워져 있다.
 서울 은평구 이마트 매장 입구에 구입한 상품을 담는 카트가 세워져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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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사의 대형 할인점 무이자 할부가 정당했는가에 대해서도, 그토록 경제 신문사들이 주장하는 시장 경제 원리에 부합했는지도 의문이다. 심각한 가계 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문제인식되고 있는 지금, 무분별한 카드 발급과 사용을 규제해야 하는 것은 절실한 현실이다. 카드 무이자 할부는 소비에 있어 충동적 지출을 부추기는 측면이 크다. 그 만큼 가계는 점점 빚이 늘어나는 결과를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불편을 거론하며 무이자 할부 결제 중단을 부정적 측면으로만 바라봐야 하는지 혹시 무이자 할부 결제에 따른 비용을 대형 유통점이 아닌 다른 사회적 약자가 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대로 따져보자.

우선 무이자 할부 서비스가 모든 자영업에 대해 제공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형 유통업체들에만 제공되던 차별적 서비스였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대형마트에서만 무이자 할부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골목상권을 외면한 채 대형마트 이용을 증가시키게 만든 주요인이었다. 이러한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소비자들이 공짜로 누리는 사이 누군가는 소비자들의 결제 지연에 따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대형 할인점에서 당연히 소비자 서비스 차원에서 부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상 할인 유통업체가 아닌 카드사가 부담해 왔다.

한마디로 카드사가 그 비용 만큼 손해를 봤다는 이야기인데, 카드사가 손해를 감수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 비용의 규모가 2011년 한 해동안만 1조 2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카드사는 가맹점 수수료 수입에서 마케팅 비용의 형태로 1조원이 넘는 무이자 할부 비용을 부담해 온 것이다. 문제는 대형 가맹점들은 중소 가맹점들에 비해 가맹점 수수료조차 낮게 지출했다. 결국 중소형 가맹점으로부터 대형 가맹점 수수료 1.5%의 두 배에 달하는 2~4%의 수수료를 받아 대형 마트의 무이자 할부 서비스 비용을 지출해 온 셈이다. 가난한 사람들 주머니를 털어 부자들을 더 아름답게 치장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가난한 이들의 돈으로 더 아름답게 치장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들 마저 빼앗아 갔다. 소비자들이 골목상권을 외면하면서 대형마트로 몰려가게 만든 공짜 할부는 사실상 우리 골목의 상인들이 부담해 왔던 셈이다.

소비자 이익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

한편으로는 카드사가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을 비롯한 골목상권에 대해 차별적 마케팅 입장을 취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셀링 파워가 있는 대형마트를 무시할 수 없는 대신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은 상인들 개개인들과 계약을 맺고 있으니 가맹점 수수료를 더 높게 책정하는 것이 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비자들에게 공짜 할부 결제라는 달콤한 혜택이 주어진다니 골목상권이 무너지는 불편한 진실쯤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길 수도 있다. 바로 여기서 소비자 이익이 주어졌는지 따져봐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평소 갖고 싶었던 TV를 수수료 부담없이 할부로 구매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숫자 논리에서는 소비자 이익이 맞다. 일년에 한 두 번 가족 이벤트로 고가의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할부 결제를 활용하는 정도라면 분명한 이익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할부 구매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그에 따라 결제 부담을 낮춘 상태에서 충동 소비 지출을 늘린다는 점이다. 할부 구매는 일종의 할인 혜택 처럼 받아들여진다. 소비자에게 할인은 쇼핑에서의 짜릿한 환희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다. 흔히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소비자들이 쇼핑을 할 때 이성에 의해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하지만 행동경제학자들은 다른 입장이다.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의 신경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실험에 따르면 전전두엽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다음 진료 날짜와 시간과 같은 간단한 것에도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환자들에게 지적, 심리적 손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다만 전전두엽의 손상으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능이 손상되었는데, 이러한 관찰 결과로 다마지오는 판단을 내리는 데는 논리와 감정 모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데카르트의 오류>)

행동경제학자 애리얼리 또한 쇼핑은 이성적인 활동이 아니라 죄책감에서 환희에 이르는 다양한 감정들이 내포된 과정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는 보상이 빨리 주어질 수록 격정에 휩쌓여 충동적으로 행동한다고 한다. 즉 '지금 초콜릿 반 상자를 받는 것이 더 좋은지, 아니면 일주일 뒤에 한 상자를 받는 것이 더 좋은지 선택해야 한다면 사람들은 지금 반 상자를 갖겠다고 한다'는 것이다.(<완벽한 가격>)

할부 결제는 지금 소비함으로써 미래의 가처분 소득을 줄이는 결과를 만든다. 그러나 미래의 보상보다는 현재의 보상에 더 흥분하는 소비자들의 감정은 할부 결제에 당장의 장바구니를 채우는 것을 선택하게 만든다.
 할부 결제는 지금 소비함으로써 미래의 가처분 소득을 줄이는 결과를 만든다. 그러나 미래의 보상보다는 현재의 보상에 더 흥분하는 소비자들의 감정은 할부 결제에 당장의 장바구니를 채우는 것을 선택하게 만든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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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부 결제는 지금 소비함으로써 미래의 가처분 소득을 줄이는 결과를 만든다. 따라서 할부 결제를 하게 되면 지금은 저렴하게 장바구니를 채우지만 나중에는 과거 소비에 따른 결제금으로 인해 여유자금이 줄어들어 소비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 된다. 그러나 미래의 보상보다는 현재의 보상에 더 흥분하는 소비자들의 감정은 할부 결제에 당장의 장바구니를 채우는 것을 선택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렇게 흥분해서 당장의 보상에 집착한 소비를 했지만 그 소비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선 충동적인 소비 지출은 변덕스럽기 때문이다. 기획코너에서 소개한 기능성 유리 닦이만 있으면 베란다 창문을 늘 반짝거리게 만들 것이라 여겼지만 정작 집에 가져와서는 사용하기가 부담스럽다. 걸레질로 간단히 닦으면 그만이지 굳이 그 복잡한 도구를 이용해 마치 유리가 없는 듯할 정도로 말끔히 닦을 필요가 있나? 결국 베란다 한 코너를 의미없이 채우는 짐으로 남는다. 할부 결제에 따른 고조된 감정으로 바라봤던 상품들은 집으로 가져와 냉정한 이성으로 다시 접했을 때 전혀 다른 감정을 갖게 만든다. 심지어 애리얼리의 실험에서는 소비자들이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록 상품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똑같은 두통약을 두통이 있는 두 그룹의 피실험자들에게 나눠주는 실험을 했다. 한 그룹은 공짜로 또 다른 그룹은 돈을 받고 나눠 준다. 일정 시간이 지나 두통 완화 효과에 대해 조사를 하니 공짜로 두통약을 받은 집단은 두통 완화효과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했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다. 쇼핑을 하면서 소비자들은 감정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쉽게 변덕스러우며 '싼 게 비지떡'이라며 스스로 돈을 지불하고 갖게된 쇼핑의 결과물을 평가절하한다. 이렇게 되면 과연 무이자 할부 결제가 소비자들에게 이익이라고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사실상 소비자들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유도하고 불필요한 감정을 자극하는 쓸데없이 고약한 악마의 속삭임이지 않을까.

그 사이 우리 소비자들의 월급통장은 이미 간이역 신세가 되어 버렸다. 한달 뼈빠지게 일한 댓가가 종착지인 카드사로 가기 위해 잠시 스치듯 지나치는 신세 말이다. 베란다에 쌓여 있는 안쓰는 물건들, 냉장고에 유통기한을 넘기고서도 버릴까 말까 망설이게 만드는 식재료들, 금세 고장나버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구들 집안 전체에 넘쳐나는 정리해야 할 살림살이들이 월급날을 우울하게 만들만큼 가치있는 소비였는가를 돌아보자. 할부 결제가 주는 달콤한 단기 보상은 친절한 도둑이었음을 자각할 수 있다.

불편한 결제가 소비자에게 이익이다

카드 결제가 쉽지 않고 할부는 꿈도 꿀 수 없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현금을 들고 장을 보게 되면 당연히 소비자는 훨씬 신중해 진다. 상품 앞에서 흥분으로 감정이 고조되다가도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현금뭉치를 아무 망설임 없이 내버려두지 않게 된다.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고 그 '한 번 더 생각'만으로도 소비의 거품은 상당부분 감소하게 된다.

심지어 고가의 상품이라면 어떠할까. 30만원 짜리 자전거를 발견하고 아이가 사달라고 조른다. 현금만으로 결제해야 한다면 우선 소비를 미루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단순한 쇼핑을 위해 현금 30만원을 들고 쇼핑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사고 싶다는 감정을 목표화 하고 필요 자금을 다른 여러 지출들과 함께 계획을 하게 된다. 계획을 통해 쇼핑 시점을 조정하는 과정에서는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사게 될 날을 기다리게 된다.

이 과정은 쉽게 신용카드를 긁어 할부 구매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교육적 가치와 만족감을 준다. 사람은 욕구를 실현할 때보다 욕구를 실현하게 될 것이라 기다릴 때 더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과정의 기대감이라는 감정을 경험케 하는 것은 자녀에게 교육적 가치가 클 수밖에 없다.

또한 가계 살림살이는 안정된다. 집안에는 신중한 쇼핑으로 채워진 후회없는 제품들로 채워진다. 신중한 소비의 결과 소비의 질이 높아지는 셈이다. 그런면에서 불편한 결제 시스템을 가진 골목상권이 소비자들에게는 소비의 질적인면에서 이익이 더 크다. 대량구매 하지 않고 현금을 통해 소비해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소비는 신중해지고 그 결과는 더 지속적인 만족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몇 푼의 할인과 공짜의 이익에서 지속적일 뿐 아니라 감정적인 이익까지 챙기기 위해서는 무이자 할부가 제거되는 대형마트에서의 쇼핑을 다시 생각해보자.


태그:#무이자 할부, #대형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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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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