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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주인공인 이진희 씨
 기사의 주인공인 이진희 씨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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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장님, 지난 번에 정선에 출장 가셨던 거요. 도청감사관실에서 감사 나왔는데요."
"그래? 모두 다 사실대로 말씀 드려!"

지난해 12월, 강릉출장 중에 화천군청 관광정책과 막내직원인 이진희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갔다. 2012년 11월 17일, 화천 전통시장 활성화 벤치마킹을 위해 정선 5일장을 찾기로 했다. 휴일인 토요일로 계획을 잡아서인지 직원들의 반응은 영 시큰둥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직원들보다 시장 상인들이 직접보고 느끼도록 하는 게 효과가 있어 보였다.

토요장터를 기획하고 실제 운영위원장으로 있는 정선태 사무국장에게 출장 여건이 되는 상인들 9명만 선발해 달라고 말하고, 직원들에게는 "상인들과 같이 가기로 했다, 가족들과 휴일 잘 보내라"라고 말했다.

이것이 문제가 된 거다. 민간인들과 출장을 갈 때는 '민간보조'로 집행을 해야 한다. 그런데 계획된 공무원들 출장여비로 집행했다. 갑자기 계획을 변경한 일이라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핑계일지 모른다. 사전에 견학의 효율성 등을 따지지 못한 게 잘못이었다.

부서회계는 사실 힘든 자리

"어떻게 됐니?"
"감사관들이 진술서 받아 갔어요."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사무실에 들렀는데, 막내직원인 이진희씨는 울었는지 표정이 영 말이 아니었다. "너 짤리면 어떻하니?"라고 농담을 건네자 "그렇지 않아도 독서실 알아보는 중이었어요"라고 말했다.

부서별 회계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사실 힘들다. 사업비 집행을 비롯해 실제 부서운영을 담당하는 어머니 역할을 하는 게 부서회계 담당자다. 그러다보니 소위 짬밥을 먹었다는 직원들도 가장 기피하는 업무가 회계일이다.

2012년 8월, 화천군에는 큰 규모의 인사발령이 있었다. 다수의 군 단위 지자체에서는 진급을 하는 직원들은 타 부서로 보낸다. 폭넓은 행정경험을 위해서다. 당시 우리부서 회계를 담당했던 직원이 진급을 함에 따라 대신 신규직원이 우리 부서로 왔다. 타 계장들에게 부서 내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모두가 기피하는 자리인데 무슨 협의가 필요하겠는가. 신규인 이진희씨를 회계로 앉혔다.

계장님 다칠까봐? 너는 어쩌려고...

분명 내가 지시한 일인데, 상급자의 지시가 없었단다.
 분명 내가 지시한 일인데, 상급자의 지시가 없었단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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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서 쓴 거 있니? 좀 보자"

감사 반들에게 진술한 내용이 궁금했다. 쭉 읽다 갑자기 마음이 찡해졌다. '잘못된 출장비를 지급하는데 위 사람의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한 대답에 녀석은 "없습니다"라고 진술했다.

"인마, 내가 지시했잖아. 근데 왜 없다고 그랬어?"
"계장님 다칠까봐..."

울컥하는 표정을 보이기 싫어 밖으로 나왔다.

신규직원들에게는 6개월간 시보기간이란 게 주어진다. 그 기간 동안 어떤 징계를 받으면 구제 제도라는 게 없다. 그냥 해직이다. 그걸 아는 녀석은 징계를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 걸 자신이 했다고 진술한 거다.

당시 임용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사람이 무엇을 알겠는가. 개인적인 판단도 할 수 없는 시기다. 모든 것은 지시에 의해 행하는 것이 그때다.

"그렇지 않아도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해서 수십 번을 물었는데, 본인이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도청 감사관실에 들렀더니 진술서를 받아간 감사관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아시겠지만, 신규직원이 뭘 알겠습니까, 제가 지시한 겁니다, 진술서 내용 수정 좀 부탁 드립니다"라는 내 말에 감사관은 "공무원들보다 시장상인들이 참여시켰다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회계질서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답했다.

그때 그 시절... 이게 대체 말이 되는 일인가

"괘씸죄라는 거 아세요?"

2006년, 우연찮은 기회에 강원도청의 김아무개 사무관을 만났을 때, 그는 대뜸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나는 공무원 생활 25년 동안 단 한 번 '견책'이란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10년 전의 일이다. 고의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여건 때문에 분리발주를 한 것에 대해 당시 감사관은 "쓸데없는 말하지 말고 네·아니오로 대답해"라는 식으로 내게 아무런 변명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러고는 견책을 선물한 게다.

이유는 이렇다. 2004년 행정혁신 발표가 있었다. 강원도 각 시군에서 1등을 한 사람이 모여 경합을 벌이는 자리. 화천군에서 1등을 차지한 나는 기왕이면 강원도에서도 1등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도 대표로 중앙에 나가 폼 나게 발표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는 강원도 대회에서 3등. '내가 부족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형! 그거 알아? 실은 우리가 2등한 거였어. 그런데 다른 데 밀어 주려고 하다 보니까, 3등으로 밀린 거지."

한 심사위원과 친구라는 후배직원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직설적인 성격이 늘 문제다. 당시 도청 담당계장인 김아무개 사무관에게 "이런저런 말이 들리던데 사실이냐? 그렇다면 문제 삼겠다"고 전화로 말했다

"당신이 이 건에 대해 언론에 제보를 하든 말든 맘대로 해라! 심사결과 보고 싶나? 그러면 와라..."

그렇게 말했던 사람이 몇 년 뒤 "견책 건은 괘씸죄였다"고 내게 말했다. "이게 무슨 깡패같은 경우인가"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신규직원만도 못하면, 쪽팔리지 않겠습니까

"진희씨, 몇 살이더라? 공무원 하기 위해서 몇 년 공부했니?"

32살 된 막내 이진희씨는 공무원 준비를 6년 동안 했다. 그런데 '지시한 사람이 없다'고 말한 게다. 시보 주제에 해고될지도 모를 상황인데, 본인이 그렇게 했단다.

지난 14일, 박근혜 당선자가 차기 내각을 발표했다. 검증이란 절차가 남았다. 부디 확인된 사실에 대해서 조차 신규직원만도 못한 '발뻠형' 변명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린 사람보기 쪽팔리지 않겠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기자는 화천군청 관광기획담당입니다.



태그:#이진희, #화천군, #관광정책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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