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집의 독특한 제사의식을 소개 합니다.
 우리 집의 독특한 제사의식을 소개 합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이번 설 명절 차례를 지내는 데 정확히 42분 걸렸습니다. 큰 차이는 없지만 매번 제사를 지낼 때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40여 분 정도 소요되는 것 같습니다.

명절 때 큰집에 모이는 사람들은 형님네 식구들과 우리 가족 모두 합쳐 8명입니다. 이렇게 가족과 친지가 모이는 날은 부모님 제삿날과 추석, 그리고 설 명절로 일 년에 딱 네 번입니다.

큰집에서 올리는 제사와 차례방식은 참 독특합니다. 먼저 제사를 올리기 전 영정 앞에서 모두 절을 두 번 하고, 이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술 대신) 차를 올린 후 절을 두 번씩 합니다. 옆에서 차를 따르는 것은 내 역할입니다(형님이 계신데 왜 내가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뒤 설명으로 이해가 될 겁니다). 차를 올린 사람이 절을 할 때는 식구들 모두 따라서 합니다. 또 제사 끝에 단체로 절을 올리니까 차례가 끝나면 각자 절을 한 횟수는 모두 20회가 되는 셈입니다.

또 있습니다. 절을 할 때 장손 그런 거 따지지 않습니다. 그냥 나이 많은 순서대로 내가 호명을 합니다. "먼저 형수님 나오시고, 이어서 집사람, 그리고 큰 조카..." 전통적 유교집안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될 수 있는 부분이겠습니다. 이건 오래전에 형님께서 정해 놓으신 원칙입니다. 여성과 남성 평등시대를 말하면서, 전통 예를 따질 때만 남존여비 사상이 배어있는 듯한 '남자우선'이란 생각을 버리자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데 40여 분이나 소요될까! 절만 하는데 몇 분이나 걸린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제사순서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건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마다 (연가를 청하는)청혼의식, 축원문, 아미타경, 반야심경을 어느 스님을 따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강경까지 하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합니다. 그래서 몇 년 전 '금강경은 생략하자'는 의견이 모아져 그나마 지금은 40여 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깨끗한 눈위에 놓인 헌식 제가가 끝난 후 떠돌아 다니는 영혼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 깨끗한 눈위에 놓인 헌식 제가가 끝난 후 떠돌아 다니는 영혼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헌식을 마지막으로 제사의식은 모두 끝납니다. 헌식이란 제사 음식일부를 떼어내 그릇에  담아 깨끗한 곳에 놓아두는 것을 말합니다. 떠도는 외로운 영혼들이 냄새로 음식의 향기를 섭취하도록 하는 일종의 배려랍니다. 이것이 민간신앙에서 비롯된 것인지 불교의식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집 제사, 대체 왜 이런 절차로 만들어졌을까요

어머님 영정 일년에  적어도 네번은 만나는 분입니다.
▲ 어머님 영정 일년에 적어도 네번은 만나는 분입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옛날 강원도 화천 어느 첩첩산골 마을에 어린 삼형제가 살았습니다. 아랫마을에는 조그만 암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표현이 좋아 아랫마을이지 산골짜기에 집이 딱 두 채 있었으니까 아랫집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곳에는 어느 할머님이 한 분 살고 계셨는데, 그 할머님은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이 아이들 셋 중에 한 놈이 스님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원~ 이상한 할머니 같으니라구. 멀쩡한 아이들이 무슨 스님이 된다구 그래!"

어머님은 그렇게 말씀을 하셨지만, 가난을 되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그다지 실망하시는 내색은 아니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또 그 대상이 나라고 생각하시는 듯 보였던 건 삼형제 중 내가 제일 영특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짐작됩니다. 어머님 입장에서 '큰놈과 막내는 커서 제 밥벌이는 하겠지만, 다소 어리숙해 보이는 둘째가 걱정이 되셨기 때문'이셨겠지요.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 모두는 그 할머니의 말씀을 잊고 살았습니다.

내가 스물다섯 되던 해 군에서 제대를 했습니다. "뭘 해야 하나" 고민이 극에 달할 즈음 <불광>인지 <월간불교>인지 정확히 기억되지 않습니다만, 어느 불교잡지를 보게 된 후 스님이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지만) 당시엔 그것이 고민에 대한 또는 자신 없는 미래에 대한 도피처 정도로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반야심경, 암송함으로 세상 모든 것이 실상도 없고, 덧없음을  내 스스로에게 인지하기 위함입니다.
 반야심경, 암송함으로 세상 모든 것이 실상도 없고, 덧없음을 내 스스로에게 인지하기 위함입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반야심경, 천수경, 아미타경 등 불경이란 불경은 깡그리 외웠습니다. 심지어 천천히 암송하면 30여 분 정도 소요되는 6968자 금강경도 외웠습니다. 그래야 스님이 될 자격이 주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저 큰스님 한분만 소개해 주세요. 테스트를 받고 싶습니다."

제대 후 2년여가 지난 어느 날, 불교신자이신 사촌 누님께 그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님이 되려면 큰스님을 만나 면접을 보면 되는 정도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누님의 답은 "그깟 불경 몇 구절 외운다고 깝치는 거, 또 네가 가지고 있는 거 다 버렸다고 생각할 때 다시 연락해라"였습니다. "어떻게 외운 건데... 또 뭘 버리란 말인가! 어머님도 버려?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술을 마시고 싶다는 욕구도? 그리고 또 뭘..."

미련이 남은 것도 많았고, 자신도 없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방향을 급선회한 것이 공무원시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군 생활 말년쯤 되었을 때 노트 한 권을 사서 '내게 단점이 있다면?', 이란 것과 '내가 직업을 갖는다면?' 이란 질문을 적어 졸병들에게 돌렸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성격'. 이유는 '급한 성격은 스스로를 망친다'는 것과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공무원". 이유는 '융통성이 없으니까'. 똑같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유형의 답 글이 많았습니다. 은연 중 그것을 떠올려서인지 모르지만 공무원을 선택했습니다.

형님은 서울 천호동에서 족발 집을 운영했습니다. 큰돈을 벌 정도는 아니었지만, 쪼들리지는 않았습니다. 혼자 일을 한다는데 한계를 느꼈던지, 어느 여성분(지금의 형수님)과 동거를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네 형이 스님이 되겠단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립니까! 1989년, 강원도 정선에 공무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어머님은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같이 동거하는 분이랑은 어떻게 하려고 그런 대책 없는 짓을 할까'라는 생각을 했던 건, 사촌 누님의 말처럼 스님이 되려면 '모두 다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 깊게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집으로부터 먼 곳으로 발령을 받으니 (서울에선 죽어도 못사신다는) 어머님을 위해 형님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답니다.

정치하시는 분들, 먼저 부모님에 대한 효도부터 검증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 집 제사는 지장보살 앞에서 스님의 반야심경, 아미타경, 축원문 등으로 시작됩니다.
 우리 집 제사는 지장보살 앞에서 스님의 반야심경, 아미타경, 축원문 등으로 시작됩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대체 몇 시간 전에 돌아가셨을 분이 왜 숨을 놓지 못하시는지, 의사인 내 상식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몇 년 전 형님(이하 스님)으로부터 어머님 임종임박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담당의사는 내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동생은 8년 전에 사업실패에 대한 좌절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했습니다. 약하신 몸 충격이라도 받으실까 스님과 나는 철저하게 어머님을 속였습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동생을 '외국에 나가있다', '엊그제 전화를 받았는데, 내년엔 꼭 온다더라'는 둥 명절 때마다 어머님께 거짓말을 해야 했습니다. (동생이 죽은지) 5년이 지난 어느 날, 어머님은 '아무래도 그놈 죽은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신 이후로 한 번도 동생 안부를 물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강하셨으면 현대의학을 무시할 정도로 숨을 잡고 계셨을까요...

"아무래도 어머님을 놓아드려야 할 것 같다."

"어머님 저희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 8년 전에 동생 저승으로 먼저 갔습니다. 지금 그곳으로 가시면 만나실수 있으실 거예요"라는 말씀을 드리자, 숨을 거두셨던 어머님...

스님이 아니었으면 어머님은 훨씬 전에 돌아가셨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승을 떠나시기 10년 전, 갑작스런 중풍을 얻어 거동을 거의 못하셨습니다. 스님은 뇌졸증에 좋은 게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몇 백리를 마다하지 않고 가서 구해왔습니다. 불교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 중 가장 첫 번째가 살생입니다. 그런데 생 오리 피가 혈액순환에 좋다는 말을 듣고 어머님을 위해 살아 있는 오리를 사다 피를 내어 드시게 하고, 노모를 10년이 넘도록 매일 하루에 두 번씩 목욕을 시켜 드렸던 것 등... 어머님 건강회복을 위한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으면 산삼까지 캤겠습니까.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 스님은 지장보살을 모셨습니다. 지장이 효 중심사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곤 5개월 동안 108만 배를 올렸답니다. 행여 어머님께서 지옥에 가실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요즘 총리나 장관후보자들 검증이 있는 모양인데, 부모님에 대한 효의 정도도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해. 인간의 가장 근본인 효도 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겠나!"

요즘 존속살해 등 부모에 대한 폐륜아 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입니까! 계사년 설날 아침, 스님 말씀에 가족 모두 숙연해졌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기자는 화천군청 관광기획 담당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밝고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마이뉴스...10만인 클럽으로 오십시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