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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동구에 위치한 남광주시장. 설을 앞둔 9일, 시장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광주시 동구에 위치한 남광주시장. 설을 앞둔 9일, 시장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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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 들어가 봐야 혀. 남은 거 다 퍼 줘블랑께, 가져 가부러."

전통시장엔 '덤'의 미학이 있다. 9일 찾은 광주시 동구의 남광주시장. 한 생선 가게 '아짐(아줌마의 전라도말)'은 2만 원어치 조기가 담긴 검은 봉지에 연신 떨이를 더 퍼 담는다. 집에 와 세어보니 30마리가 들어 있다. 본래 판매대에 놓여있던 것보다 7, 8마리는 더 많은 숫자다.

말이 떨이지, 조기를 산 시간은 정오 무렵. 신선도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짐의 말에 따르면 "설 대목이라 일찌감치 다 팔려블었"단다.

꼭 덤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전통시장은 대형마트보다 더 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설 차례상 비용에 따르면 전통시장 20만5000원~21만3000원, 대형마트 29만4000원~30만9000원으로 전통시장이 약 30% 더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9일 전통시장에서 구입한 물건을 대형마트의 것과 비교해보니 약 10만 원의 차이가 났다. 일부 품목만 구입했으므로 가격 차이를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격이 낮게 형성돼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사평역'의 모델 남광주역과 함께한 남광주시장

새벽부터 탔을 이 숯은 오랜 시간 곁불을 내며 객을 반긴다. 그 곁불은 정오에나 장을 찾은 기자에게까지 뜨듯함을 전한다. 싸목싸목 걷다 손이 얼어도 재래시장은 이게 있어 괜찮다.
 새벽부터 탔을 이 숯은 오랜 시간 곁불을 내며 객을 반긴다. 그 곁불은 정오에나 장을 찾은 기자에게까지 뜨듯함을 전한다. 싸목싸목 걷다 손이 얼어도 재래시장은 이게 있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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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광주시장. 과거 남광주역(2000년 폐역)이 있었던 이 시장은 시골서 장짐을 이고 온 아짐들이 새벽부터 장사진을 이루던 곳이다. 당시 경전선을 따라 순천, 보성, 벌교를 지난 기차는 화순과 남평을 거쳐 수많은 장짐을 남광주역에 내려놨다. 그리고 한참 후, 헐거워진 장짐과 아짐들의 지친 몸을 고스라니 담아 기차는 다시 떠났다. 또한 이 역은 시인 곽재구의 '사평역'이기도 하다.

지금 남광주역은 없지만 설을 앞둔 남광주시장은 북새를 떠는 이들로 가득했다. 일기예보가 아무리 '한파'라고 떠들어대도 장의 소란에는 못 미쳤다. 수산물 가게 앞에서 '말춤'으로 재롱을 부리는 꼬마, 그리고 곳곳에서 태워지는 드럼통 안의 땔감이 시장에 활력을 더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매생이. 깨끗한 물에서만 자라는 매생이는 겨울철 남도의 별미다. 이 지역에선 떡국에 굴과 함께 매생이를 넣어 끓인다. 매생이를 최초 채취하면 헹군 뒤 물기를 빼 적당한 크기로 뭉치는데 이 한 뭉치를 '재기'라 한다. 한(1) 재기가 약 450g 정도다. 이날 세 재기를 1만 원에 사고, 그 옆에 놓인 1kg짜리 굴도 1만 원에 샀다.

줄줄이 위치한 홍어 가게도 남광주시장의 매력이다. 잘 저민 홍어와 직접 무친 홍어무침도 판다. 덕분에 알싸하고 새콤한 냄새가 발걸음을 잡는다. 국내산은 찾기 어렵고 주로 칠레산이다. 흑산도 홍어의 가격은 크기에 따라 마리당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 이날은 설 당일 큰아버지 집에 가 나눠 먹을 칠레산 홍어를 구입했다. 3만5000원에 얼추 네댓이 먹을 정도의 양이었다.

이 지역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홍어다.
 이 지역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홍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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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묘미, 흥정

역시 시장의 묘미는 흥정이다. 대형마트의 적확한 가격표시는 편하긴 해도 수동적인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 흥정은 장사꾼과 손님의 싸움이면서 소통이다. 주체와 객체를 오고가며 서로의 이익을 잰다. 화폐 그 자체가 가치인 이 시대에 그 외의 요소가 개입하는 것이 바로 시장의 흥정이다.

남새 가게 앞에 섰다. 숙주나물 2000원 어치를 담아 달라 했다. 검은 봉지가 두둑해질 무렵, "좀 더 담아주세요"를 외쳤다. 아짐은 연신 손을 흔들며 "뭣이 남는다고 이걸 더 담아"라고 말한다. 이번엔 옆에 놓인 미나리를 가리키며 "한 단에 얼마에요?"라고 물었다. "3000원"이라는 미나리를 들고 "500원만 까주세요"라고 청했다. 아짐은 "나도 냉겨 묵어야제"라며 거부 의사를 밝힌다.

마지막, 풋고추를 가리키며 이거 좀 담아달라 부탁했다. "이건 좀 더 담아주세요"라며 전보다 강한 어조로 흥정을 한다. "아따, 참말로 징헌그"라며 아짐은 통에 담긴 고추를 싹 털어 "3000원만 주쇼"란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집에 와보니 검은 봉지엔 30개의 풋고추가 들어있다.

재래시장에선 뜻하지 않게 좋은 구경을 할 수 있다. 이날엔 요새는 보기 드문 수동 재봉틀을 만났다.
 재래시장에선 뜻하지 않게 좋은 구경을 할 수 있다. 이날엔 요새는 보기 드문 수동 재봉틀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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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와의 가격비교, 확실히 싸다

장보기를 마친 후 이날 구입한 품목들을 적어 곧바로 광주시 북구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를 찾았다. '덤의 미학'을 맛 본 풋고추 가격을 비교하기 위해 야채 판매대를 뒤졌다. 12개가 포장된 풋고추가 3314원이었다. 단순히 개수로 비교하면 30개 가격은 약 8200원이다. 남광주시장에서 산 것보다 5000원 이상 비쌌다.

대형마트에서 미나리는 250g씩 손질해 팔고 있었다. 가격은 2800원. 남광주시장에서 약 500g(손질 후 무게)의 미나리 1단을 3000원에 산 것에 비하면 두 배 가까운 가격이다.

매생이와 굴의 가격도 꽤 큰 차이가 났다. 대형마트에서 200g씩 포장된 매생이는 가격표에 5460원이라 적혀 있었다. 남광주시장에서 3재기(약 1.3kg)를 1만 원에 산 것에 비하면 대형마트의 가격이 세 배 이상(3만5400원) 더 값이 나갔다. 굴도 대형마트에서 제일 싸게 책정된 것이 250g에 4500원으로 남광주시장에서 산 것(1kg에 1만 원)보다 1.8배 비쌌다.

홍어의 경우엔 대형마트의 것이 아르헨티나산인 데다 파는 전체 양이 너무 적고 색깔도 미심쩍어 비교하는 것이 어려웠다. 남광주시장에서 산 쌀강정과 유과 역시 대형마트에는 없어 비교할 수 없었다. 대형마트에선 선물용을 제외하곤 한과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재래시장-대형마트 2월 9일 구입 물품 가격 비교
 재래시장-대형마트 2월 9일 구입 물품 가격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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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가격이 더 저렴한 가운데 일부 품목은 대형마트가 더 싼 경우도 있었다. 대형마트에서 설맞이 특별 할인으로 떡국 떡을 1kg에 3000원에 팔아 남광주시장에서 산 것보다 2000원이 쌌다. 숙주나물도 270g에 1000원으로 남광주시장의 것보다 조금 쌌다. 숙주나물의 경우 본래 책정된 가격이 2100원이었으나 이날 특별 할인으로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전감으로 사용되는 동태살도 대형마트가 조금 쌌다. 400g에 5600원으로 남광주시장에서 600g에 1만2000원 하는 것보다 20% 정도 가격이 낮았다. 다만 남광주시장의 동태살은 그 자리에서 포를 떠 샀고, 대형마트의 것은 이미 떠진 동태살을 포장해 팔고 있었다. 매운탕 거리로 좋은 머리나 뼈는 전통시장의 보너스다.

'장보기'가 하고 싶다면 삶의 현장인 시장으로

이날 남광주시장에서 구입한 물품의 가격은 대형마트의 것보다 10만5800원 더 쌌다. 이는 약 40% 더 저렴한 가격(전통시장-14만7000원, 대형마트-25만2800원)이다. 차례상의 모든 품목을 구입한 것이 아니니 40%라는 수치는 변동될 수 있겠으나 이날 조사를 통해 전통시장의 가격이 전체적으로 낮게 형성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단순한 '쇼핑' 환경은 대형마트가 좋다. 검은 봉지 여럿을 손가락 곳곳에 낀 채 돌아다니는 대신, 쇼핑카트 하나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직원에게 물으면 곧바로 찾을 수 있고, 계산을 위해 굳이 꼬깃꼬깃한 현금을 꺼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쇼핑보다 '장보기'가 하고 싶다면 전통시장을 추천한다. 장보기를 단순히 사는 행위가 아닌, 사람을 만나고 품을 팔아 좋은 물건을 얻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말이다. 찬 날씨에 언 손은 상인들이 피워놓은 불을 빌려 녹이면 된다. 질척거리는 바닥은 애초에 헌 신을 신고 헌 옷을 입고 가면 된다. 전통시장은 상인들의 치열한 새벽과 양은 냄비 벅벅 긁어대는 아짐들의 점심상을 통해 우리네 삶의 단면을 목도하게끔 한다.

이곳에선 단순한 가격이 아닌 '의견'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접점을 찾는다. 운 좋으면 덤이란 것도 따른다. 장보고 나서 한 술 뜨는 국밥은 대형마트의 어설픈 잔치국수와는 사뭇 다르다. 100년 된 수동 재봉틀을 구경하는 것도 이곳의 매력이다. 싼 가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장보기를 마치고 한 술 뜨는 국밥 한 그릇. 재래시장의 즐거움 중 하나다.
 장보기를 마치고 한 술 뜨는 국밥 한 그릇. 재래시장의 즐거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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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은 2008년 사무실을 광주 동구의 대인시장 한 가운데로 옮기고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나 쓴 기고에서 "문화란 치열한 삶의 현장에 그 뿌리가 깊숙이 박혀 있고 그곳에서 다채로운 꽃을 피운다"며 "이런 나름의 관점은 스스럼없이 시장에 깃들어 설렘으로 새 출발을 하도록 부추겼다"고 말했다.

전통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통해 삶의 현장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태그:#재래시장, #대형마트, #남광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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