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다시 만난 기타리스트 아저씨
 다시 만난 기타리스트 아저씨
ⓒ 고상훈

관련사진보기


시드니에 오래 있을 계획은 아니었다. 애초에 호주에 있을 기간이 11일밖에 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시드니에는 1월 1일부터 5일까지 단 5일간 있을 예정이었다. 벌써 1월 4일이었다. 마지막 날은 버스킹(거리 공연) 없이 시드니 시내 투어할 계획이었다. 그러기에 오늘이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버스킹이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욕심이 났다. 곧장 가장 큰 버스킹 공연장에서 공연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장소는 바로 타운홀이었다. 우리가 처음 버스킹 신고식을 호되게 당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아침부터 타운홀로 향했다. 가장 큰 장소이니만큼 버스커(거리 공연자)들 사이에서 경쟁도 심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타운홀 역에서 빠져나오니 벌써 기타 소리가 가득했다. 그런데 이 기타소리 왠지 낯익다. 바로, 그 아저씨. 우리가 버스킹 허가증을 받기 위해 타운홀에 와서 1월 1일에 본, 긴 머리의 기타리스트 아저씨였다. 여전히 멋있게 열정적으로 치고 있었다.

마지막 날 공연은 타운홀... 그러나 긴 머리 기타리스트 아저씨가 먼저

아저씨, 언제까지 하시나요..?
 아저씨, 언제까지 하시나요..?
ⓒ 고상훈

관련사진보기


우린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어느 정도 기다리면 나오겠거니, 그렇게 50분이 흘렀다. 기타를 놓고서 자리를 정리하나 싶다가도 이내 다시 자리에 앉아서 피크를 잡는다. 10분을 더 기다려봤지만, 이 아저씨 전혀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일단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에서 버스킹을 먼저 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왠지 오늘 운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장소는 다시 첫 버스킹을 했던 마틴 플레이스였다. 타운홀과 가깝기도 했고 짜릿했던 첫 버스킹의 기억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마틴 플레이스로 간 이유였다.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낮이라 그런지 더 많은 사람이 마틴 플레이스에 가득했다. 신이 나서 신호등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너무 뜨거운 날씨 때문인지 달궈진 바닥 때문에 엉덩이가 뜨끈뜨끈했다. 약간 불안했지만 견딜 만했다. 차라리 따뜻해서 좋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의 생각이 큰 참사를 야기하는 복선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두 번째 불운이 시작되었다.

엉덩이가 너무 뜨거워!
 엉덩이가 너무 뜨거워!
ⓒ 강동호

관련사진보기


한창 사물놀이를 하는데 뜨거운 날씨에 달궈진 바닥에서 열기가 올라왔다. 나의 엉덩이를 믿었다.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옆에서 같이 악기를 치고 있는 친구들 표정을 보니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렇게 3~4분이 흘렀다. 이건 아니다. 온기를 넘어서서 이젠 불판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본능에 따라 엉덩이를 들썩이면서 뜨거움을 참았다. 하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지금이라도 사물놀이를 끝 맺어야 했다. 앞을 살폈다. 많지는 않았지만, 적지 않은 관객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대로 멈췄다간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될 것이 뻔했다.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이런저런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사물놀이는 중반부로 향했다. 한계가 가까웠다. 이제는 관객이고 뭐고 일단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치고 있는 친구들 표정도 나에게 끝내주기를 요구하는 듯했다. 꽹과리를 치고 있는 나만이 이 사물놀이를 끝맺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공연을 하는 중간에 나름 자연스럽게(?) 끝을 맺었다. 끝이 나자 사물놀이를 치던 나를 포함한 친구들이 재빠르게 일어났다.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에게 괜히 미안했다.

사물놀이가 끝나자 재빠르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생수 다섯 병에 전해진 정
 생수 다섯 병에 전해진 정
ⓒ 고상훈

관련사진보기


"사물놀이 소리 듣고 멀리서 봤어요! 이거 드시고 하세요."
"진짜 멋있어요!"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공연을 마치고 관객이고 뭐고 화상 입지 않았는지 걱정이나 하고 있을 무렵, 한국 유학생이 우리에게 와 생수 다섯 병을 건넸다. 불운으로 가득한 이날을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사물놀이를 듣고 멀리서 달려와 지켜보다 우리를 위해서 편의점에서 생수 다섯 병을 사왔단다. 타지에서 듣는 한국어도 한국인도 반가웠지만, 생수 다섯 병에 담긴 뜨거운 정이 정말 반가웠다. 버스킹의 문화에서처럼 동전은 아니었지만, 한국인만의 '정'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이었다. 엉덩이도 마음도 뜨거운 마틴 플레이스의 버스킹이었다. 엉덩이가 뜨거워 정신없는 통에 같이 사진 한 번을 못 찍은 것이 아직도 제일 안타깝다.

"저거 완전 독점 아니야?"
"저 아저씨는 밥도 안 먹나?"

생수 다섯 병을 각자 한 병씩 벌컥 마시고 다시 힘을 내서 타운홀로 향했다. 앞서 오전에 기타 아저씨의 열정에 밀려 공연을 못 했던 아쉬움을 달래고 타운홀에서 공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타운홀에 도착한 우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그 아저씨, 다른 팀도 아니고 그 긴 머리의 기타리스트 아저씨가 그 자리 그대로 기타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 4시간이 흐른 뒤였는데 말이다. 속상했다. 마지막 버스킹이었기 때문에 더 속상했다. 손에 들린 다섯 개의 빈 생수통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하지만 생업으로 버스킹을 하고 있을 아저씨를 생각하면 우리가 양보해야 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사실, 버스킹은 보통 생업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는 시간도 이동도 애매했다. 더이상 다른 곳으로 가 버스킹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시간상으로도 거리상으로도 부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드니에서 우리의 버스킹이 조금은 어색하게 막을 내렸다.

다시 돌아온 타운홀, 4시간째 기타 공연하는 아저씨 "대단"

버스킹은 너무 피곤해
 버스킹은 너무 피곤해
ⓒ 고상훈

관련사진보기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샤워하고 나오니 몸이 한결 가뿐했다. 사실, 버스킹을 한 번 하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될 정도로 정말 힘들다. 또, 악기를 들고 다니자니 얼마나 무거운가?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항상 땀범벅에 가쁜 숨을 내쉰다. 세 번밖에 공연하지 않았지만, 한 명은 종아리에 근육이 뭉치고 또 다른 한 명은 발바닥에 물집이 한가득 잡힐 정도였다. 다른 한 명은 종일 무리한 덕에 코피를 쏟기도 한다. 이날만 해도 엉덩이를 델 뻔 하지 않나, 한 장소에 두 번씩이나 허탕을 치지 않나. 힘든 일투성이다.

그렇게 사서 고생(?)하면서도 우리가 즐거워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사람들이다. 힘든 버스킹의 짐을 나누어 들어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생수 다섯 병을 들고온 한국인 유학생부터 테일러 광장에서 반전을 만들어준 사진 기사 아저씨까지. 버스킹을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 이 사람들이 버스킹의 100%를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색한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버스킹이었지만, 넉넉한 기분이 드는 이유도 아마 그 사람들 때문이진 않았을까?

"항상 공연하면, 우릴 반겨주고 우리의 짐을 덜어 가주는 그때 그 사람들이 있다. 동호는 골수팬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냥 그때 그 사람들이라고 하고 싶다. 그때, 시간을 기억해주는 사람들." - 1월 4일 일기 중에서

그때 그 사람들
 그때 그 사람들
ⓒ 강동호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사랏골 소리사위 26기 상훈, 행문, 동호, 하영, 진실 다섯 명이 사물(꽹과리, 징, 장구, 북)을 들고 호주로 떠난 버스킹 여행 이야기입니다.



태그:#버스킹, #사물놀이, #길거리 공연, #호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