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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거의 마지막 숲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 숲길을 벗어나 만나는 회색도시는 문명의 이기를 내세운다 해도 어쩐지 반갑지 않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거의 마지막 숲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 숲길을 벗어나 만나는 회색도시는 문명의 이기를 내세운다 해도 어쩐지 반갑지 않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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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카미노의 아침이 밝는구나. 나는 아직 그리움에 파묻혀있는데….'

옆 침대 시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문군도 잠이 깬다. 밤새 밀어낸 그리움은 아침이면 어김없이 이불 속을 파고들어 자신을 꼭 안고 있는 걸 본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아무리 두꺼운 이불이라도 민숭민숭한 순례자 마음까지는 따뜻하게 덮지 못한다는 걸 알아채 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로 어제 걸었던 길이 오랜 추억처럼 그립고, 첫걸음 내딛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해 슬퍼지려 한다.

사랑 속삭였던 이들, 여태 잊고 있었다

누군가 늦게 오는 필자를 위해 길에 크게 글을 써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로이가 했단다. 배려가 없으면 외로운 카미노 순례길이다.
 누군가 늦게 오는 필자를 위해 길에 크게 글을 써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로이가 했단다. 배려가 없으면 외로운 카미노 순례길이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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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군은 현대사회의 별다를 것 없는 표준 군상 중 하나일 뿐이다. 그는 그간 옆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기심을 건류시켜 무관심의 장막을 쳐놨었다. 자신을 위해, 성공을 위해 술덤벙물덤벙하던 그때는 몰랐다.

정작 내가 필요로 할 때는 그 너머와 소통할 수 없다는 사실을. 태엽을 되돌리고 또 되돌려 단 1년만 뒤로 걸어갈 수 있다면 그는 지금보다 조금은 후회가 덜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해의 힘을, 배려의 기쁨을 알게 해준 카미노가 벌써 끝난다니 서운함이 부걱부걱 인다.

산티아고 순례 마무리를 앞둔 루트, 짙은 녹음으로 상쾌함을 선사하는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장엄한 자태로 세월을 잊고 서 있다. 오래도록 순례자 행렬을 괴어 보며 비 올 때나 눈 올 때, 바람 불 때나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언제든지 말없이 영혼들의 안식처가 돼주고 있는 원군들이다.

사람도 그렇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죽을 것만 같은 숱한 상황이 닥쳐옴에도 매번 또다시 꿈을 꾸고, 사랑을 하며 잘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무관심의 장막을 넘어 전해지는 어떤 기적과도 같은 사랑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밀어내도 내게 다가와 사랑을 속삭여 주던 이들, 문군은 그 고마움을 여태 잊고 지냈다. 무명의 순례자가 유칼립투스 나무에 그린 위트 있는 문구가 뒤통수를 가볍게 치며 퍽 흥미로운 인상을 준다.

철학 생각하다 콜라 간판에 '꿀꺽'

순례자들의 정신을 홀랑 빼앗아가는 코카콜라 선간판. 콜라 간판은 '충전'의 대명사다.
 순례자들의 정신을 홀랑 빼앗아가는 코카콜라 선간판. 콜라 간판은 '충전'의 대명사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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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고 있는 영혼들이다. 그런데 단지 걷고, 생각하는 선사시대로의 회귀에 대해 깊은 의미를 둔다. 오래된 진리들을 새롭게 풀어내는 존재의 무거움과 본능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에 깔깔거리는 존재의 가벼움이 양립한다.

심도 있는 철학적 고뇌에 푹 빠져 있다가 어떻게 콜라 로고가 그려진 선간판만 보고서 가게 안으로 의식 없이 빨려 들어갈 수 있는지! 문군은 피식 웃다 비록 일개 순례자에 지나지 않는 영혼들이지만 함께 걸으면 기쁨이 꽃피고, 함께 먹으면 낙원 문이 열리는 것을 본다. 복사열 하나 없는 겨울 길이 따뜻하다. 겨울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가볍게 차 한 잔, 콜라 한 캔 마시러 들어온 이름 없는 가게. 그런데 벌써 두 시간 째 죽치고 있다. 다들 나갈 생각을 않는다. 아침부터 서두르면 하루 만에 산티아고에 입성할 수 있는 거리다. 그래도 서두르는 이 하나 없다. 서두르면 서운한 길이다.

문군도 그렇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아침 등교시간의 쪽잠, 입 안에서 녹고 있는 초콜릿, 산티아고의 마지막 길은 모두 오래 지속되면 좋은 행복이라는 것을. 누군가 트럼프 카드를 꺼낸다. 게임이 시작된다. 은근히 다행이란 표정들이 곳곳에서 읽힌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더 주문한다.

카페에서 시간 보내며 하는 카드게임. 원카드 게임과 비슷한 룰이라 적응이 쉽다.
 카페에서 시간 보내며 하는 카드게임. 원카드 게임과 비슷한 룰이라 적응이 쉽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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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의 태양이 내려와 순례자의 그림자를 길게 만든다. 구름은 거처 없이 떠돌고, 겨울바람 한 점이 벼락같이 입을 맞추고는 도망간다. 산타 이레네 언덕의 숲은 뙤록뙤록 걷던 청년부터 파파노인까지 할딱거리던 숨을 자비롭게 이완시켜 준다. 파슬파슬해진 진흙이 신발에서부터 떨어질 무렵 마침내 소음과 먼지로 자욱한 회색 도시에 들어온다. 문군은 아주 잠시 초조해지는 걸 느낀다. 소중한 것을 상실한 것 같은 어떤 느낌 때문이다. 더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마지막까지 떠밀려온 느낌 때문이다.

'나는 아직 달뜬 상태로 환상을 거니는데...'

산티아고 순례를 함께 하는 한국인 가족. 이들 중 아들 호균이는 되돌아가면서 또 한 번, 딸 근화는 다음 년도에 또 한 번 걷기로 한다. 다시 걷고 싶을 만큼 매력 있는 길이다.
 산티아고 순례를 함께 하는 한국인 가족. 이들 중 아들 호균이는 되돌아가면서 또 한 번, 딸 근화는 다음 년도에 또 한 번 걷기로 한다. 다시 걷고 싶을 만큼 매력 있는 길이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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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은 많지만 정작 이해가 없는 세상에 있다가 이해가 선행되는 세상에 온 건 문군에겐 가히 충격이다. 또한 그는 이 길을 통해 배려의 결여로 삼는 자기 준거가 얼마나 앙상하고, 위태로운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아르카의 공립 알베르게엔 지금까지 중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예까지 걸어오는 동안 가슴에만 품었던 이해와 배려라는 두 단어를 모든 기관으로 내비쳤을 것이다. 묘한 동질감에 서로 눈만 마주쳐도 미소가 머금어진다.  

다른 것보다 문군의 마음을 만져주는 건 알베르게 방명록이다. 가볍게 쓴 글귀에도 거기엔 한 달 동안의 경험과 생각이 오롯이 응집돼 있다. 한 줄 한 줄이 아포리즘이다. 순례자들의 짤막한 일기는 마치 개성 강한 타일 한 장과도 같다.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묘하게 통한다. 그리고 고귀한 인생의 모자이크가 보인다. 도저한 감동이 있다. '예수는 버리려고만 하고, 우리는 구하려고만 한다'는 문장에선 진솔한 자기반성의 극치를 본다.    

"흡사히 몽유병 환자와 같이 기묘하게 자신의 껍질 속에만 들어박혀 있던 나의 생활 속에, 바야흐로 새로운 형상이 이뤄져 왔다. 삶에 대한 동경이 나의 내부에서 개화된 것이다."(헤르만 헤세 <데미안> 제5장)

좋아하는 구절을 카피해 놓은 문군도 한 줄 남겨본다. 밤이 깊고, 체력이 다했다. 왁자지껄한 알베르게의 수다 속에서 오늘만큼은 외로움을 꾹 참아보기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내일 길을 감사함으로 걸을 용기가 나질 않을 것이다.

'벌써 카미노의 하루가 저무는구나. 나는 아직 달뜬 상태로 환상 속을 걷고 있는데….'

때로는 여러 이유로 모질게 냉정한 세상이다. 하지만 카미노를 걸었던 시간만큼은 따뜻하게 안아주더라고 문군은 기억하려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이제 하루 남았다.

이토록 달콤한 격려가 또 어디 있을까? 순례자들은 모두 동일한 마음일 것이다.
 이토록 달콤한 격려가 또 어디 있을까? 순례자들은 모두 동일한 마음일 것이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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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에는 2012년 2월 9일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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