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가족의 위로인 반려견, 해모
 우리가족의 위로인 반려견, 해모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33시간의 실종과 한 밥상

 
지난해 11월, 반려견 해모가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은 우리 가족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항상 우리 옆에서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우리 곁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은 기실 허구였음이 입증된 것입니다. 입증된 것은 과거이며, 믿을 수 있는 것은 현재일 뿐이라는 것을 각자의 마음 속에 각인시켰습니다.

가족이 모두 함께한 자리가 1년 반이 넘었다는 것을 상기했습니다. 영대가 미국에서의 교환학생 체류를 마치고 귀국한 때에 함께 모였던 2011년 5월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후에 둘째딸 주리가 교환학생 수학을 위해 프랑스로 출국했고, 주리가 올해 귀국했을 때는 첫째딸 나리가 유럽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2011년 5월 29일,영대가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함께 모였던 가족
 2011년 5월 29일,영대가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함께 모였던 가족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더구나 직장이나 학교 편의를 위해 서울과 헤이리로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던 터라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족과의 대화는 밥상머리에서가 아니라 카카오톡의 그룹채팅방에서 단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카카오톡 그룹채팅을 통해 아내의 가족 집합 명령
 카카오톡 그룹채팅을 통해 아내의 가족 집합 명령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해모가 무사히 돌아오고 나서 아내는 마침내 가족채팅방에 '읍소형 혹은 명령형'이 혼재된 글을 띄웠습니다.  

아내 : "가족의 소중함에, 엄마 생각인데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우리 함께 저녁 먹는 것이 어떨까? 동의하시는 분 날짜 정해 올려."  
둘째딸 : "동의! 날짜는... 아무 때나~"
첫째딸 : "동의! 나는 공연 들어가서 화요일 저녁..."
아들 : "당연 동의지."

아내는 마침내 집합을 명했습니다.  

엄마 : "내일 모두 집합한다. 저녁 같이 먹으면서 가족의 정을 나눠보자. 6시 30분까지는 모두 모이자 모티프원에서."  

아내가 명령한 그날 예정된 시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미국과 싱가포르에서 오신 게스트 분이 업무차 나간 뒤 들어오지 않은 상황이므로 애초에 외식을 하고자 했던 계획은 무산되고 온가족이 함께 준비한 조촐한 저녁상을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극도로 파편화된 가족이 1년 반 만에 한 밥상 앞에 앉은 것입니다. 급히 만들어진 '소금엣밥'이었지만, 빙 둘러 앉은 가족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저녁상이었습니다.

2012년 11월 27일, 늦은 밤에 이루어진 1년 반만의 한밥상 가족식사.
 2012년 11월 27일, 늦은 밤에 이루어진 1년 반만의 한밥상 가족식사.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숟가락을 놓고 각자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얘기했습니다. 귀가 시간이 모두 달라 서울에서도 가족 각자의 일상을 알 지 못한 터였습니다. 그리고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할 지, 각자의 계획을 말했습니다. 어떤 일은 핀잔을 놓고, 어떤 계획에는 응원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각자 해모를 안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고 서울로 떠났습니다. 백일몽처럼 잠시 함께했던 가족들을 보내고 나니 함께 '대이작도'를 거닐면서 나누었던 야초스님의 법문이 떠올랐습니다. 

"'잘 사는 날이 올 거야'는 중생의 태도이고 '지금 잘 살아야 돼'는 깨달은 자의 자세입니다." 

해모의 33시간 실종은 현재의 실행만이 가장 확실한 것이며, 어떤 이유에서 간에 사랑이 미래로 유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했습니다. 가족과 함께한 저녁식사, 오랜만에 '청맹과니 짓을 면했다'는 안도가 밀려왔습니다.

해모, 동화책의 주인공이 되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서 '경악'스러운 일의 주체는 대부분 사람인 경우입니다. 사자가, 치타가, 혹은 개가 그 사건의 원인인 경우는 드물지요. '사람의 지혜가 깨서 자연을 정복하여 사회가 정신적·물질적으로 진보된 상태'를 문명(文明)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에 의해 저지르지는 깜짝 놀랄 일들을 접할 때마다 '우리가 과연 문명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가'란 의문을 풀 방도가 없습니다. 

어제(1월 28일) 가족들이 모티프원에 모두 모였습니다. 아내가 휴무일이고, 첫째 딸 나리가 지난 주말로 뮤지컬 공연을 끝냈고, 둘째 딸 주리도 <아리랑TV>에서의 인턴을 마감했습니다. 한 달에 한번씩 모여 '한밥상 가족만의 식사를 하자'는 지난해의 약속은 두 달간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세 분의 부모님을 갑자기 모시게 된 아내는 카카오톡의 그룹채팅방에 가족의 집합을 명할 짬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주리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 보이며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는가'라며 흥분했습니다. 딸이 보여 주는 뉴스의 화면에는 불덩이 하나가 도로를 가로지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불덩이는 '불붙은 개'라고 했습니다. 그 불길로 보아서 인화물질을 뒤집어쓰지 않고는 살아있는 개가 그런 화염에 휩싸일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사회에도 '반려동물'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되었습니다. 이 용어는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을 사람의 장난감이 아님을 인식시키기 위해 1983년 10월 오스트리아 과학아카데미가 주최한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the human-pet relationship)'를 주제로 하는 국제 심포지엄에서 처음 제안됐습니다.   

인간이 문명화되어 온 그 과정 속에서 치열한 경쟁의 결과로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사람의 욕망은 오히려 야만성을 증대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반면 본능 그대로의 삶을 지속해온 동물에게서 오히려 사람이 잃어버린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이 오히려 사람의 스승일 수 있는 요소입니다.   

배우자를 '반려자'로 호칭하기도합니다. 부부의 다른 한 쪽을 의미하는 배우자보다 '평생의 짝'이라는 뜻이 포함된 이 반려자라는 호칭에서 오히려 저는 더 숭엄함을 느낍니다. 반려자라는 의미 속에는 동반자로서의 기쁨과 위로 외에도 때로 보호하고 보살펴야할 의무도 포함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반려동물은 기름을 붙고 불을 붙여도 괜찮은 물건일 수 없으며, 병에 걸리거나 이사를 해서 함께 살기가 불편하다고 내버려도 되는 장난감일 수는 없습니다. 좋을 때는 물론 불편하고 싫어졌을 때도 여전히 짝으로 살아야하는 반려자인 것입니다. 오늘 두 달 만에 다시 온 가족이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족의 반려견 '해모' 때문이었습니다. 

해모는 아들의 동물에 대한 탐구욕을 불타게 했고, 딸들에게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갖게 했으며, 아내에게 산길을 걷는 트레킹의 든든하고 안전한 동행이 되어주었으며 제가 갖지 못한 인자(仁者)의 성품으로 저의 스승이 되어주곤 했습니다. 해모는 지금 모 출판사 동화책의 주인공이 되어 페이지 구성의 계획에 따라 몇 개월 동안 몇 차례에 걸쳐 촬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해모 덕분에 다시 우리 가족이 모두 모였습니다. 이번에는 해모의 엑스트라가 되기위해...
 해모 덕분에 다시 우리 가족이 모두 모였습니다. 이번에는 해모의 엑스트라가 되기위해...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이 출판사에서는 어릴 때부터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 동물이나 식물을 대하는 시선을 바르게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그러한 바른 시선을 갖도록 하기위한 방법으로 동물과 식물, 곤충 등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총 50권의 전집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조수웅덩이에 사는 생물, 맑은 물에 사는 고기들, 밤생물, 바닷가에 사는 식물, 길고양이,  DMZ관찰일기, 참나무 도토리 쟁탈기 등 우리 곁의 생태계와 직접 가 볼 수는 없지만 알려주고 싶은 먼 생태계까지 우리나라의 다양한 생태계에 서로가 어떻게 어울려 사는 지에 대한 관계를 담고 있습니다.

해모는 '사람과 함께 하는 반려동물'의 주인공으로 가족과 어떻게 관계 맺고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게 됩니다. 오늘 가족들 모두가 해모와의 추억에 대해 인터뷰하고 이 동화책의 주인공 해모의 엑스트라로 우리가족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반려동물을 사랑해야 해"라고 백 번 외치는 것보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서 동물에 대한 바른 시선을 담아주려고 하는 출판사의 의도입니다. 이 출판사의 의도와 관계없이 해모는 이미 우리 가족만으로도 위로였습니다.

반려견, 그들은 장난감이 아니라 숨쉬는 생명이며 설혹 그들이 불편해졌을때도 끝까지 함께 동행해야할 동행자입니다.
 반려견, 그들은 장난감이 아니라 숨쉬는 생명이며 설혹 그들이 불편해졌을때도 끝까지 함께 동행해야할 동행자입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2007년 봄에 독일의 유명한 포슬린페인팅 작가이신 한스 바우어(Hans Bauer) 작가께서 저와 함께 머무신 적이 있습니다. 해모가 새벽의 마을 신문배달 오토바이크에 늘 시끄럽게 짖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새벽잠을 방해했을 해모의 짖는 소리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분에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개가 짖는 소리는 자연의 소리입니다.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나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자연을 소리를 시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없잖아요?"

해모는 우리가족에게 어둠이 드리워졌을 때 한 줌의 햇살처럼, 가족간에 목마른 대지의 모습으로 마음이 쩍쩍 갈라졌을 때 단비 같은 존재로 함께했습니다. 바우스선생님의 말씀처럼 해모는 우리가 잃어버린 그 본연의 성품을 일깨우는 자연의 일부로 존재해왔습니다. 반려동물, 그들은 우리가, 사람이 모르게 많이 빚진 존재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반려견, #반려동물, #해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