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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경찰청는 14일 부산항운노조 조합원들로부터 인사청탁, 비조합원들에게 취업미끼 명목으로 총 6억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부산항운노조 제1항업지부장 등 노조간부 6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들에게서 압수한 고급 시계 및 관련 증거.
 부산지방경찰청는 14일 부산항운노조 조합원들로부터 인사청탁, 비조합원들에게 취업미끼 명목으로 총 6억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부산항운노조 제1항업지부장 등 노조간부 6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들에게서 압수한 고급 시계 및 관련 증거.
ⓒ 부산지방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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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복마전'이란 오명에 쇄신을 거듭 다짐해왔던 부산항운노조에 대형 비리 사건이 또 터졌다. 14일 부산지방경찰청은 인사청탁 및 비조합원의 취업 알선을 명목으로 6억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부산항운노조간부 등 6명을 검거했다.

이번에 검거된 항운노조 간부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비리를 저지르는 수단으로 악용했다. 이들은 정년퇴직 예정자 2명을 정년이 보장되는 노조위원에 임명해 3년간 정년을 늘려주는 조건으로 이 퇴직예정자들로부터 5500만 원의 금품을 받았다. 또 간부들은 조합원을 조장으로 승진시켜주는 조건으로 7400만 원을 건네받기도 했다. 

비리는 조합원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비조합원에게는 항운노조에 취업시켜주는 조건으로 총 11명에게서 4억 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했다. 일용직 근로자들의 일당에서 뜯어간 소위 '동원비' 7800만 원도 노조 간부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경찰은 이들 중 7명에게서 각각 1억3590여만 원·2억 9350여만 원 상당을 수수한 혐의로 제1항업지부장 우아무개(55)씨와 제2항업지부 반장 배아무개(46)씨를 구속했다. 또 송아무개(45) PNC지부장 등 4명을 불구속하고 15명의 금품 공여자에 대해서도 배임증재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잇따른 비리 사건, 헛구호 그친 자정 노력

문제는 이 같은 부산항운노조의 비리 사건이 계속 반복된다는데 있다. 2005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검찰 수사 이후에 그동안 수 십명의 노조 간부가 금품 수수 등으로 쇠고랑을 찼다. 당시 불거진 항운노조 수사는 대검찰청이 뽑은 그해 최우수 특별 수사에 선정되는 등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노조도 나름의 자구책을 밝히며 비리 근절을 약속했지만 그같은 자정노력은 매번 헛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특히 이번 비리 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부산항운노조의 기형적 운영이 다시 질타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로 지적돼 온 것은 노조가 인력을 단독 공급하는 항운노조의 독특한 운영 방식이다.

그동안 항운노조는 노조가 자체적으로 인력을 채용하는 형태로 운영되며 인사와 관련된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노조가 추천한 인사가 막강한 권한을 갖게되는 간부가 되는 구조는 일부 간부들의 잘못된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됐다.

2010년 부산 항운노조조합원들이 부산항만공사를 찾아 조합원들의 고용 보장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던 모습.
 2010년 부산 항운노조조합원들이 부산항만공사를 찾아 조합원들의 고용 보장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던 모습.
ⓒ 부산항운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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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에서도 간부들이 일용직 노동자들에게서 2년 반 동안 매일 1만 원씩의 속칭 '동원비'를 떼어갔지만 일용직 노동자들은 항의하지 못했다. 하루하루 일을 구해야 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의 입장에서는 항만인력공급권을 소유하고 있는 노조에서 일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이런 처사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계속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항의를 할 수 없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대안으로 꼽혀왔던 공채 방식도 이번에 터진 비리 사건으로 공염불에 그쳤다는 평가다. 노조는 2010년 항만 노무 공급을 공채로 전환한다고 밝히고 노·사가 참여하는 공채심사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한 바 있다. 노조 설립 이후 처음으로 시행하던 공채는 투명한 고용 제도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번에 검거된 노조 간부들은 이런 제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인사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노조 가입=취업' 인사권 쥐고 흔드는 간부들의 막강한 힘

제도로는 수정되지 않은 항운노조의 고질적 문제는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독점 구조에서 기인한다. 위원장에서부터 평조합원에게로 내려가는 피라미드식 구조 속에서 노조 간부들은 조합원의 인사 전권을 쥐고 흔들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된다. 이번 사건에서도 노조간부들은 이 같은 힘을 유지하기 위해 조직폭력배 수사에서나 볼 법한 방법으로 경찰의 수사를 방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일부 간부들은 조합원들에게 수사에 협조하면 힘든 작업장으로 보내겠다고 협박을 일삼았다. 또 경찰이 출석을 요구할 경우 "뒷일을 책임지겠다"며 잠수를 지시하기도 했다. 그래도 못 미더운 나머지 간부들은 경찰청 입구에 잠복해 조합원들이 출석을 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까지 했다.

때문에 부산항운노조의 구조적 문제를 완전히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이같은 비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가장 먼저 제대로 된 견제와 감시에서 벗어나 있는 노조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합리적인 감시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노조는 그동안 감찰부를 신설하며 부정부패와의 전면전을 약속했지만 자정 노력에 기대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히 노조가 자체 인력채용과 인사에 전권을 행사하는 지금의 구조를 내려놓는 선택이 필요하다. 인력 독점권의 완전한 폐지와 민주적인 운영 구조가 들어서야 비리의 온상이란 오명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부산 지역 항운노조 지부 28곳 가운데서도 유독 노조가 자체 인력채용과 인사권을 쥔 18곳에서 관련 비리가 반복된다는 점도 쇄신을 요구받는 이유다.

항운노조 전 조합원 A씨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항운노조의 가장 문제는 집행부의 독재"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조 집행부가 권력의 단맛을 알게 되고 결국 권력을 못 놓게 되는 상황에서는 인사청탁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A씨는 "조합원의 공개모집을 하는 기구와 노조를 견제·감시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의원이 그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이 간선제로 뽑히고 회계감사까지 위원장이 임명할 수 있는 구조에서는 허수아비 대의원과 감사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단 부산지방경찰청 수사과는 "취업난을 이용 경제적 약자를 상대로 취업을 빙자해 금품을 주고 받는 등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있는 부산항운노조의 불법적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부산항운노조 비리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시금 외부에 손으로 썩은 부분을 도려내게 될 처지에 놓인 부산항운노조가 이번 만큼은 제대로 된 개선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태그:#항운노조,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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