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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발신번호 표시제한'

늦은 시간에 보이스피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받으니 한참을 말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몇 번을 "여보세요~" 하면서 광고 전화도 보이스 피싱도 아니고 뭔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수화기를 계속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 떨리는 목소리로 한 아주머니께서 "여보세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라고 하니 그 아주머니는 자신이 오래전 이름과 생년월일 등이 적힌 편지 한 통과 함께 시설에 맡겨진 아동의 친할머니라고 했습니다. 순간 마음 속으로 '무연고 아동, 유기된 아동들이 꿈에도 기다리는 순간이구나'라는 생각에 심장이 떨렸습니다.

그 분은 아이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아이의 성장 과정은 어떠했는지, 건강한지 등 아이의 근황을 물어왔고, 지금은 데리러 갈 상황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에 지금은 취업한 뒤 우리 시설에서 퇴소해 자립생활관에서 잘 생활하고 있고, 문제가 있는 아동도 아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금은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는 등 아이에 대해 얘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데려갈 상황이 안되더라도 아동이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있게만이라도 해달라며 통화를 이어갔습니다. 그 와중에도 혹시 전화를 끊진 않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시설에서 자라 성인이 된 아이를 찾는 할머니

시설에 맡겨진 무연고 아이들은 오늘도 가족의 전화를 기다립니다.
 시설에 맡겨진 무연고 아이들은 오늘도 가족의 전화를 기다립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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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며칠 동안 밤마다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를 받으며 아이에 대해 얘기해 줬습니다. 연락해준 고마움도 표시하면서 한편으론 아이 앞에 설 면목이 없다는 생각으로 아이가 평생 동안 감당하지 못할 큰 짐을 지고 살도록 할 것이냐는, 아이를 대신한 원망도 했습니다.

또 어렵게 전화를 한 할머니의 마음을 아이가 알 수 있게 하고, 용서를 하든, 하지 않든, 그 선택은 아이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이가 성인이 다 되도록 찾지 않은 연고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겠냐고도 했습니다. 형편이 나아지게 몇 년만 더 있다가 연락하면 안되겠냐고 말하는 할머니를 그러다보면 아이의 상처만 더 깊어진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할머니는 시설에 전화를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심장이 떨려서 어쩔 줄 모르겠고, 처음 전화한 이후로는 밥도 넘어가지 않고 잠도 못 자고 있다며, 더이상 시간이 흐르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연락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했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아이에게 연락처를 주겠다고 하면서 아이가 바로 연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연락을 하고 하지 않고는 아이의 선택이지만, 반드시 연락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아이에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다음날 아동과 직접 통화하며 설명을 해주니 아이는 아직 실감을 못하는 듯했습니다. 아이가 지내는 자립생활관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도 설명을 해주고 아동이 연락할 수 있도록 관리를 부탁드렸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 할머니는 아이에게 아직 전화가 오지 않았다고 다시 연락해왔습니다. 아이도 혼란스러울 거니까 조금 더 시간을 줘보자고 한 다음날, 할머니는 들뜬 목소리로 아이에게 연락이 왔고 만나기로 했다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어떻게 연락해야 될지 몰라하는 아이를 도와 자립생활관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대신 연락을 줘 통화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만나기로 한 날, 아이를 만났다는 즐거운 목소리의 할머니는 다음날 시설로 아이와 함께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무연고 아동이 연고자를 찾는… 꿈에 그리던 일을 저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시설에 온 아이의 얼굴에서 반가움과 기쁨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평소 아이들을 지도하며 무연고 아동들 그리고 여러 가지 형편으로 시설에 맡겨진 아동들에게 나중에 연고자가 찾아오든 찾아오지 않든 성공해 있어야 떳떳하게 만난다고 했습니다. 지금껏 시설에 나를 맡겨두었으니 모든 것을 다 책임지라고 해봐야,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 되는 사람들이 찾으러 오지 않는 것은 아닐 거라며, 열심히 공부하고 자기계발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들이 이제 무슨 뜻인지 알겠냐고 아이한테 물으니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알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만뒀던 좋은 직장만큼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곳에 다시 취업하겠다며, 시설에 있는 동생들에게도 지금 열심히 하라고 자신의 얘기를 해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나머지 무연고 아동들 그리고 시설에 맡겨만 두고 한 번 찾아오지도 연락도 되지 않는 연고자들을 둔 아이들에게도 이런 꿈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얼마나 좋겠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민등록 말소된 '취학대상아동' 관리 보완돼야

할머니께 출생신고가 되고 최소 2세 이상 되어 유기된 아동인데 취학 시기에 취학통지서가 나오지 않더냐는 질문을 하자, 주민등록 말소를 해서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제가 아동시설에서 일하던 초기에 가졌던 의문점이기도 합니다.

오래 전 국민신문고에 취학대상 아동이 있으면서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례는 따로 관리해서 고의 또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유기되는 아동을 막으면 좋겠다는 건의를 한 적이 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도부터 어떤 경위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종적으로 말소된 주민센터에서 취학통지서를 받을 수 있도록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취학통지서를 받지 않더라도 조치는 없어서 취학대상이면서 주민등록이 말소된 아동의 존재 여부는 확인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주민등록 말소 아동을 방임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병무청에 확인해보니 취학통지서와는 달리 주민등록이 말소된 입영대상자에게는 정기적으로 입영통지가 가고, 보호자에게 연락을 해서 아이에 대해 확인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주민등록 말소자가 아니면서 아이만 주민등록 말소자인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취학통지서도 입영통지서와 같이 주민등록 말소 아동이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될 나이가 되면 정기적으로 연락하고, 보호자에게 말소 사유를 증명할 수 있도록 한다면, 아동이 더 큰 상처를 입기 전에 연고자를 찾아 자기가 누구인지만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저의 의견이 주민등록 말소 가정이 아동을 유기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니 그런 오해는 없기를 바랍니다. 단지 자기가 누군지도 모른 채 버려져 시설에 생활하다 평생 부모를 원망하며 살아갈 아이들을 바로 옆에서 보며 드는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적어 봅니다.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하루 만에 그 세월의 장벽을 넘어 시설 문을 나서는 친할머니와 손자의 다정한 뒷모습을 보니 더 많은 무연고 아동들이 저런 따스함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듭니다.

혹시라도 고의나 어쩔 수 없는 상황 아니면 한순간의 실수로 아이를 유기한 분 또는 그런 분을 아시는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제발 두려워 하지도 미안해 하지도 말고 시설에 연락해주세요. 아이가 자신이 누구인지만이라도 알게 해주셨으면 정말 감사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혹시라도 아이가 어디 있는지 모르시면, 전국 신고시설에 있는 무연고 아동들은 경찰청에 DNA 등록이 되어 있으니 가까운 경찰서에 가서 아이를 찾기 위해 DNA 등록하러 왔다고 하면 친절하게 안내해주실 겁니다.

가족을 찾게되어 웃고 있는 입이 뒤에서도 보이는 아이를 보며 그런 기쁨을 더 많은 무연고 아동들이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어봅니다.

덧붙이는 글 | 박정규 기자는 아동양육 시설의 시설장입니다.



태그:#보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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