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롱우드가든 한켠에 세워진 '야생동물을 위한 나눔의 나무'
 롱우드가든 한켠에 세워진 '야생동물을 위한 나눔의 나무'
ⓒ 김장훈

관련사진보기


'나눔의 나무'를 찾아와 먹이를 먹고 있는 댕기박새
 '나눔의 나무'를 찾아와 먹이를 먹고 있는 댕기박새
ⓒ 김장훈

관련사진보기


북미에 있는 정원들 중 가장 유명한 정원 중 하나인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롱우드가든(Longwood Gardens)에는 야생동물들을 위한 조금 특별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어서 소개할까한다.

이곳 사람들이 흔히 'Wildlife Tree' 즉 '야생동물 나무'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인데, 추운 겨울철 먹이가 부족한 야생동물들을 위해서 먹을거리를 나누어주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크리스마스트리다. 단순히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드는 일회성 장식물이 아니라 야생동물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따뜻한 나눔의 실천의 한 모습으로서 이곳 정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다.

야생동물들을 위한 조금 특별한 '크리스마스 트리'

'나눔의 나무'에 장식을 달고 있다
 '나눔의 나무'에 장식을 달고 있다
ⓒ 김장훈

관련사진보기


해마다 겨울이면 연례행사처럼 조카들과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곤 한다. 어린 조카들이 아기자기한 고사리손으로 장식물들을 하나둘 달아주면서 어찌나 재미있어 하는지. 그걸 보고 있으면 마음 한켠이 뿌듯해져서 매년 거르지 않고 함께 했지만, 아쉬운 것은 그 기쁨이 얼마가지 않는 것이었다. 만들 때의 설렘과 기쁨은 잠시고, 이내 사람들의 흥미로부터 멀어진 크리스마스 트리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거실 한켠에 덩그러니 놓여있기 일쑤였다. 그저 아름답게 꾸미기위한 만든 장식물의 한계라면 한계랄까.

역시 아름다움은 아름다움 그 자체 만큼이나 거기에 의미가 더해질 때 그 가치가 빛나고 더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닐런지. 올해도 롱우드가든 한켠에 전시된 '야생동물을 위한 나눔의 나무'(이하, '나눔의 나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롱우드가든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정원 한켠에 야생동물을 위한 '나눔의 나무'가 세워졌다. 해마다 겨울이 오는 11월 중순에 세워져서 겨우내 야생동물들에게는 먹거리를 제공하고 정원을 찾아오는 탐방객들에게는 나눔의 의미와 가치를 환기시켜주는 '나눔의 나무'. 롱우드가든의 크리스마스전시를 기록한 책 <Longwood Christmas>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을 보면 올해가 햇수로 9번째다. 하지만 그 전에도 비슷한 것이 만들어진 적이 있다고 하니 꽤나 적지 않은 시간 이어져내려온 연례 행사라고 할 수 있을거다. 그만큼 '나눔의 나무'는 구경하는 많은 이들에게는 감동을 그것을 만드는 정원사들에게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는 이야기일 거다.  

보기에도 아름다운 야생동물들을 위한 만찬

새들의 먹이가 되는 곡물로 만든 '먹을 수 있는 새집'
 새들의 먹이가 되는 곡물로 만든 '먹을 수 있는 새집'
ⓒ Pandora Young

관련사진보기


'나눔의 나무'를 잘 보면 우선 독특하고 앙증맞은 장식물들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곡물들을 붙여서 만든 먹을 수 있는 새집과 건포도를 엮어 만든 목걸이, 소고기의 버리는 지방을 뭉쳐 만든 공과 수수이삭을 말아서 만든 수수이삭 리스. 하나같이 야생동물들의 먹을거리로 만든 것들이다. 장식은 무엇으로 했나 자세히 잘 보면 미국풍나무의 열매 껍데기, 연꽃의 꽃대, 참식나무 열매, 붓수나무 종류의 열매껍데기, 모두 다 자연에서 채집한 것들이다. 어떻게 이런 것들로 이렇게 아름답고 실용적인 장식물들을 만들었는지 기발함에 놀라고 야생동물들을 위한 정성에 놀란다.

9년 전 입사 이래로 계속 '나눔의 나무' 만드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가드너 판도라(Pandora Yong)는 나눔의 나무 장식물들을 만들기 위해 연중 소재가 될 만한 것들을 모은다고 한다. 독특한 모양을 한 나무열매나 이파리 등은 단골 소재고 귤껍데기 말린 것 할로윈파티 때 장식을 했던 호박을 말린 것 등 생활 속에서 얻은 것들도 좋은 소재가 된다. 해마다 다른 모양의 창의적인 장식물들을 만들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정원에 있는 것들을 정성들여 살피고 관찰하는 정원사로서의 세심함이 주요했다고 본다. 정원을 관리하며 쉽게 지나치거나 버릴수도 있는 것들을 하나둘 잘 모아두었다가 겨울이 오는 11월 재활용하여 야생동물들을 위한 아름다운 만찬의 장을 만드는거다.

그렇게 전시를 다한 그해의 '나눔의 나무'는 인근 숲에 가져다 놓는다고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숲의 야생동물들이 남은 곡물들을 먹고 나무의 틀거리는 흙으로 돌아가는거다. 자연으로 돌려주는 마무리까지 아름다운 '나눔의 나무'.

나눔의 나무를 찾아온 붉은배딱딱구리
 나눔의 나무를 찾아온 붉은배딱딱구리
ⓒ 김장훈

관련사진보기


나눔의 나무에서 먹이를 먹고 가는 댕기박새
 나눔의 나무에서 먹이를 먹고 가는 댕기박새
ⓒ 김장훈

관련사진보기


나눔의 나무의 폭군, 다람쥐
 나눔의 나무의 폭군, 다람쥐
ⓒ Pandora Young

관련사진보기


햇살좋은 겨울 오후 이 '나눔의 나무'에서 펼쳐지는 디너쇼의 첫 번째 주인공은 야생동물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은 날렵한 회색빛 꽁지머리를 한 댕기박새(Tufted Titmouse)인데 '나눔의 나무'와 주변 나무들을 오가며 수시로 들락날락 분주하다. 작은 새지만 맵씨있는 자태가 참 아름답다. 다음은 검은머리박새(Black-capped Chickadee). 이 새는 댕기박새보다 겁이 더 많은지 재빠르게 먹이를 물고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한다. 치카디디디 하며 독특하게 울어대는 소리 덕분에 정식 이름보다 치카디라고 불린다는 이 새의 경쾌한 울음소리가 궁금하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붉은배딱딱구리(Red-bellied Woodpecker)도 만날 수 있다. 붉은색과 검은색 무늬로 우아한 이 새는 5분 이상 한참을 주변 나무를 기웃기웃하더니 안전하다 싶어지자 나눔의 나무 꼭대기 근처에 슬쩍 옮겨 앉았다. 그리고 곤충을 주로 잡아먹는 식성대로 곡물보다는 소고기 지방을 뭉쳐둔 공을 콕콕 쪼아먹었다. 이곳 디너쇼의 폭군이 있다면 다람쥐다. 새들보다 덩치가 큰 다람쥐는 나무 이곳 저곳 마구 뛰어다니며 간혹 새들을 쫒기도 하고 다람쥐들끼리 텃세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추운 겨울날 먹거리가 부족한 것은 다람쥐들도 마찬가지이니 '나눔의 나무'는 물론 다람쥐들의 몫도 된다.

온동네 야생동물들을 모두 초대하기라도 한 듯 옥작복작한 이 '나눔의 나무'는 겨울 정원을 찾은 분들에게 참 좋은 볼거리가 되어준다. 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참을 머물며 새들의 모습을 찍어가기도 하고 아이와 함께 온 부모들은 야생동물을 보호해야하는 이유를 아이들에게 설명해주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나눔의 나무를 즐기고 간다. 다분히 춥고 적막할 수 있는 겨울 정원에 활기를 부여해주는 느낌이다. 

'나눔의 나무'의 숨은 주인공, 자원봉사자들

'나눔의 나무'를 담당하는 가드너 판도라(가운데 앉은이)와 자원봉사자들
 '나눔의 나무'를 담당하는 가드너 판도라(가운데 앉은이)와 자원봉사자들
ⓒ Pandora Young

관련사진보기


'나눔의 나무'의 또다른 주인공은 이 나무를 만드는 데 손을 더해준 자원봉사자들이다. 나눔의 나무에 설치할 장식물들을 만들고 전시 준비를 하는데 1달여 정원을 찾아와 시간과 손을 더한다. 이들은 대개가 정원 주변에 사는 주민들인데 이곳 정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사람들이다. 함께 만들어가는 기쁨 참여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랄까. 먹이를 찾아온 야생동물들이 무대에 선 배우들이라면 자원봉사자들은 무대 뒤에서 공연을 준비해주는 진정한 주인공들이다. 이들 덕분에 '나눔의 나무'의 의미와 가치가 더 빛이 난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야생동물을 위한 '나눔의 나무'를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더부살이의 전통이 함께 떠오른다. 내 입만 입이라고 감나무에 감을 모두 따버리는 것이 아니라 추운 겨울날 먹이가 부족할 까치를 위해 몇개 남겨 놓는 까치밥, 겨울날 함박눈이 내려 숲에서 먹을 것을 찾을 수 없는 들짐승들이 마을 어귀까지 내려오면 들짐승들 먹으라고 곡식을 뿌려주던 고스레의 풍습. '나눔의 나무'는 이런 전통들과 참 닮아있다. 그러고보면 춥고 배고픈 겨울을 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나눔의 따뜻함으로 함께 이겨내는 것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지혜인지도 모르겠다.    


태그:#야생동물, #정원, #나눔, #나눔의 나무, #수목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문 정원사. 정원 작가. 저서로 겨울정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책 '겨울정원'이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