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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등대 뒤로 성산 일출봉이 배경으로 펼쳐지곤 한다.
▲ 우도 천진항 등대 빨간색 등대 뒤로 성산 일출봉이 배경으로 펼쳐지곤 한다.
ⓒ 박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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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우도에는 다섯 곳에 등대가 있다. 천진항, 하우목동항, 전흘동, 비양도 그리고 우도봉에. 천진항에는 아담한 모양의 빨간 등대가 있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리비치거나, 성산항 쪽에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거나 무지개가 쫘악 걸릴 때는 그냥 등대가 아니다. 요정나라에서 온 귀여운 정령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두의 끝에 있는 하얗고 자그마한 등대.
▲ 하우목동항 등대 부두의 끝에 있는 하얗고 자그마한 등대.
ⓒ 박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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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에 있는 또 다른 항구인 하우목동항에는 있는 듯 없는 듯 하얗고 조그만 등대가 서 있다. 우도에 천진항과 하우목동항이 있는 것을 모르고 배를 탄 사람들은 내린 곳이 어디인지를 몰라 당황해 한다. 몇 번 정도 와 본 사람도 낯선 곳에 내렸다고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하기도 한다.

사실은, 등대 옆 테트라포트(방파제)들이 돌출된 부분에 시멘트 벽면을 둘러쳐 영어로 환영 인사를 주욱 적어놓은 것이 영 눈에 거슬렸다. 그런데 자꾸 보고 또 보고, 해를 넘기며 보니... 이제는 영화 <트루먼 쇼> 세트장처럼도 보인다. 이런 생경한 풍경도 바다와 하늘과 잘 어울려 보일 때도 있다. 정든다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정든다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답다니탑 망루 옆에 있는 기품 있고 당당한 등대.
▲ 전흘동 등대 답다니탑 망루 옆에 있는 기품 있고 당당한 등대.
ⓒ 박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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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안정감 있고 든든한 구조물의 등대가 현무암 바위들과 바다와 하늘을 거스르지 않고 당당하게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산업단지 공장의 굴뚝 같기도 한 비양도 등대.
▲ 비양도 등대 산업단지 공장의 굴뚝 같기도 한 비양도 등대.
ⓒ 박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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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에 딸린 작은 섬 비양도. 시멘트 다리로 연결되어 지금은 섬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섬은 섬이다. 동쪽 수평선 너머로 해 뜨는 것을 보러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우도봉 일출과 비양도 일출은 아는 사람들은 아는, 우도의 유명한 경관이다.

공장 굴뚝 같은 멋없는 비양도 등대도 일출의 장관 속에 소품으로 쓰이면 그럴듯해져서, 사진 작업하는 사람들이 즐겨 잡는 포인트로 알려져 있다. 비양도 등대를 향해 걸어갈 때는 조심해야 한다. 등대로 연결된 길이 밀물 때는 금방 잠기는데, 물살이 세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형 대리석 구조물로 된 16미터 크기의 위풍당당한 등대
▲ 우도봉 등대 원형 대리석 구조물로 된 16미터 크기의 위풍당당한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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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봉(쇠머리오름)에는 등대 공원이 있어 세계 곳곳의 다양한 등대의 모형을 볼 수 있다. 바다를 향해 불을 밝혀 배의 안전한 항해를 돕는 기능을 하는 등대는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모양으로 제작되었다. 또한 등대의 기능이 '사랑과 헌신'의 비유나 상징으로 쓰기 좋은 것이어서, 예술가들이 즐겨 도구로 이용하기도 했다.

낡은 권위와 적어진 쓸모를 안고 서 있는 등대는...

영국 민요에 가사를 붙인,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으로 시작하는 '등대지기'도 겨울 바다에 매일 울려 퍼지고 있는 애창곡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등대로'를 통해 삶의 의미와 인간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등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자세와 떠올리는 생각들은 제각각 다르지만, 등대의 고유 기능이 여러 백 년의 세월 동안 점점 쇠퇴해 온 것만은 분명하다. 소형 어선들조차 위성항법장치를 장착하고 항해하는 요즈음, 등대는 아스라한 향수를 자극하거나 낭만적인 사연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사진 배경으로 쓰이는 때가 더 많다.

어둑어둑해질 무렵부터 우도 주변 해상을 향해 둥그런 빛줄기를 비추며 도는 우도봉 등대는, 가부장적 가정의 위엄 있는 아버지처럼 당당하면서 동시에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가족 구성원의 합의에서 나오는 따스한 공감의 힘이 아니다. 전통과 관습에 기댄 경직의 완고함.

저 '아버지의 권위'라는 것이 무너지면 '아버지'라는 인격 자체가 망가져 버리고 말 것임을 가족이 다들 알고 있어서 유지되는, 그 조심스럽고 작위적인 허세... 낡은 권위와 적어진 쓸모를 안고 서 있는 등대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처럼 외롭고 안쓰럽다. 그 처연함의 강도만큼 아름답다. 자기 역할을 감당하느라 애쓰며 오랜 세월을 견디는 모든 물건과 사람들처럼...
1906년에 일을 시작해 97년 간 일하고 지금은 우도봉 등대 뒤에 보존되어 있다.
▲ 우도봉 구등탑 1906년에 일을 시작해 97년 간 일하고 지금은 우도봉 등대 뒤에 보존되어 있다.
ⓒ 박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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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우도 ,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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