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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 22주년 후원의 밤 '나비 날다'
 정대협 22주년 후원의 밤 '나비 날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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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해 동안 일본군 전쟁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웃고 울며 지내온 한 여성이 있다. 그 여성은 최근에도 위안부 할머니 13분을 만나러 승합차를 몰고 부산을 다녀왔다. 하도 팔을 많이 써서 팔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 되었다는 윤미향 대표, 그이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과 스물두 해 동안 사랑에 빠져 살았다.

그 사랑이 얼마나 진했기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수요일이면 일본대사관 앞에서 스무해가  넘도록  집회를 열고, 일인 시위를 하고 국내외를 오가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아 증언하게 하며 중년을 맞이하게 했을까.

1992년 1월 8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첫 시위를 시작했다.  2011년 12월 14일에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1000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수요집회가 열렸다. 다음 주면 어느덧 1054차 수요집회를 맞이하게 된다. 21년 동안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집회가 여렸지만 일본대사관 직원들은 단 한 번도 나와 보지 않았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20년 세월 동안 함께하던  236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어느덧 60대에서 80대가 할머니가 되었고 한 분 두 분 유명을 달리 해 이제 국내 54명, 국외 6명 총 60명이 생존해 있다. 일본의 태도는 한결같이 후안무치 했지만 그렇다고  스물두 해 동안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1년 '제1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가 열린 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정부가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다급해진 이명박 정권이 일본에 양자협의를 제안했지만 일본은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며 단번에 거절했다. 하지만 그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외면하거나 잘 모르던 청소년들에게 전쟁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진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심장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대학생만이 아니라 중고등 학생, 초등학생까지 부모님 손을 잡고 수요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1000번째 수요집회가 열리던 2011년 12월 14일엔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 위안부 평화비 소녀상을 세우기에 이른다. 소녀상은 14세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으로 순수 민간인 모금으로 세워졌다. 평화비 소녀상은 끌려갈 때의 모습 그대로 맨발에 단발머리인 1.2미터의 좌상이다. 소녀의 옆자리엔 빈 의자가 있고 소녀상 뒤에는 그림자가 있다.

'평화비'라는 글씨는 길원옥 할머니의 자필이다. 소녀상 옆에 있는 의자는 같이 앉아서 일본대사관을 향하여 구호를 외치다 세상을 뜬 할머니들 자리의 상징이다. 소녀상의 뒤 그림자는 20년이 넘도록 수요집회를 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상징한다. 소녀의 가슴엔 자유를 열망하는 날개짓을 하는 나비 한 마리가 새겨져 있다. 대한민국 일본대사관 평화비 건립을 시작으로 미국 뉴저지, 뉴욕, 애틀랜타, 캘리포니아, 캐나다 토론토 등 세계 곳곳에 전쟁 피해 여성을 위한  평화비가 세워지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국가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건립을 미룬 '전쟁과 여성박물관'이 민간 기금으로 문을 열었고 전시 성폭력 여성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나비기금을 마련해 2012년 7월부터 콩고 내전 성폭력 피해자 단체에 매달 500달러씩의 기금을 전달하고 있다.

길원옥 할머니와 자리를 함께 한 김제남 의원과 이수호 후보
▲ 길원옥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와 자리를 함께 한 김제남 의원과 이수호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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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성폭력 여성들을 위한 '나비기금'을 세상에 태어나게 만든 이들은 다름 아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길원옥 할머니다.

2011년 3·8 여성대회 때 김복동·길원옥 할머니는 "우리는 돈 때문에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군 전쟁 성폭력 피해자로서 일본정부로부터 책임 있는 사과와 더불어 일본정부가 법적인 배상을 하길 원하는 것이다. 일본정부로부터 법적인 배상을 받으면 그 돈을 콩고 내전 중 강간당한 피해여성들을 위한 기금으로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그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전쟁피해 여성들을 돕기 위한 기부금을 모아나가기 시작했다.

'나비'에는 '차별과 억압, 폭력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날개 짓을 하고 싶다는 염원이 담겨 있다. 할머니들의 유언은 "전쟁과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다. 김복동 할머니가 지었다는 할머니들의 쉼터 이름도 '평화의 우리 집'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평화와 자유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많은 이들이 정대협 22주년 후원회를 찾아 함께 했다.
▲ 22주년 후원주점을 찾은 이들 많은 이들이 정대협 22주년 후원회를 찾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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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여전히 "위안부들을 강제로 데려갔다는 증거가 없다. 군인들보다 돈을 더 많이 받는 성매매였다"고 억지를 쓰더니 개정 역사교과서에서는 아예 위안부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반면 2010년에 공개된 초등학교 새 교과서는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지도 표기 등을 통해 강화했다. 2011년 3월 말에 나온 중학교 새 교과서도 모든 지리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비 소녀상과 '전쟁과 여성 박물관'에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말뚝을 박는 말뚝 테러를 자행했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도 책임이 있다.

전쟁 피해 성노예로 고통 받은 할머니들의 인권과 인간으로써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길은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보상뿐이다. 국가는 더 이상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일본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을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가 사라지기 전에, 우리가 죽기 전에 말하라, 일본 정부여!
위안부 여성들에게 미안하다고 나에게 말하라. 나에게, 나에게, 나에게! 말하라.
미안하다고 말하라, 미안하다고."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말하라' 모놀로그 중에서)

덧붙이는 글 | 뉴조선과 서울의 소리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정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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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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