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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10월 19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경찰 관련 정책을 발표하는 가운데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이 배석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10월 19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경찰 관련 정책을 발표하는 가운데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이 배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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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말과는 달리 경제민주화 공약을 법제화하는 과정이 흔들리고 있다. 더욱이 "경제민주화를 백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22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된 유통산업진흥법(유통법) 개정안은 새누리당의 반대로 그대로 통과되지 못하고 법안심사소위로 회부돼 재검토 과정을 거치게 됐다. 이에 따라 23일 예정된 본회의에는 상정이 어려워져 다음달 9일까지인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가 사실상 어려워졌다.

지난 15일 여야 합의로 지식경제위원회를 통과한 유통법 개정안은 대형마트와 현행 오전 8시에서 자정까지인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영업시간을 4시간 줄여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하고, 매월 1일 이상 2회 이내로 돼 있는 의무휴업일도 3일 이내로 늘리는 내용이었다. 

새누리당 법사위원들의 처리 반대 이유는 '개정안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반대하는 국민들도 많고 정부도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원안대로 통과시키기는 힘들다'는 것.

지식경제부는 ▲ 소비자 편익에 대한 고려 필요 ▲ 영업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침해 ▲ 헌법소원 및 행정소송 가능성 등을 들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검토 의견을 냈다. SSM 이익단체인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하루 전 "유통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연 매출의 23%인 약 8조1000억 원의 매출이 줄어들고, 일용직, 협력업체 직원 등 2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내용의 전면 광고를 몇 개 일간지에 동시에 게재하기도 했다.

여야 합의로 법을 통과시킨 새누리당이 정부, 대형마트와 이에 납품하는 농어민들이 강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나서자 법사위 과정에서 뒤늦게 신중론을 들고 나오며 법안 처리를 불투명하게 한 것.

중소상인살리기전국네트워크·전국유통상인연합회·경제민주화와재벌개혁을위한국민운동본부와 전순옥 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자신들이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며 호언장담하고 다녔지만, 사실은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유통법 개정안은 해당 상임위인 지경위에서 장시간 논의 끝에 여야 만장일치 합의로 통과돼 법사위에 온 법안인데 도대체 지금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며 "이로써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스스로 친재벌, 대기업 편향의 정당과 후보임을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민주화 내세워 총선 이기더니 재벌개혁엔 "안 돼"

새누리당이 유통법 처리를 지연시킨 건 최근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에 보이고 있는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새누리당 비대위 체제에서 '경제민주화 원조'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을 영입한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4·11 총선에서 경제민주화 화두를 적극 내세웠다.

박 후보가 말한 것은 "경제민주화를 꼭 이루겠다"는 것뿐이었고, 어떤 정책을 실행하겠다는 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새누리당은 총선 승리를 일궈냈고, 박 후보는 총선 승리의 최대 공로자이자 수혜자가 됐다.

이후 새누리당 내에서 경제민주화 추진 모임이 결성돼 구체안을 만들어내 공약으로 받아들일 것을 압박하고, 김종인 위원장이 이끄는 국민행복추진위원회가 경제민주화 공약을 만들어 제시했지만 박 후보가 받아들인 것은 일련의 '시장 공정화' 조치들 뿐이었다.

슬슬 경제위기론을 내세우기 시작한 박 후보는 지난 8일 경제5단체장을 만난 자리에서 대기업 순환출자에 대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 대규모 비용이 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재벌개혁 조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더니, 지난 16일 발표한 경제민주화 공약에서 재벌개혁 관련 부분은 아예 배제했다.

이후 전개 상황은 단순히 '김종인표 경제민주화'가 외면받고, 김 위원장이 사실상 역할을 잃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당 내 경제민주화 논의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경제민주화만이 새누리당의 살 길'이라던 많은 의원들도 '유구무언'인 형국이 됐다. 

박근혜가 돌아서자 "전면백지화" "과도한 대기업 얽어매기"

경제민주화에 대한 박 후보의 자세 변화는 재벌개혁에 반대하는 쪽의 발언권을 오히려 강화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21일 새누리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경제민주화 정책을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날 토론자 대다수는 경제민주화 정책을 좌파적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하면서 친기업 정책을 펼 것을 주문했다. 정규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은 "경제민주화는 정부가 시장절차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좌편향적 사고"라면서 "경제민주화 관련 법제를 전면 백지화하는 중대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는 "혼선은 김종인 위원장이 순환출자와 금산분리 등 대기업 규제를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몰고감으로써 촉발됐다"며 "경제민주화 자체보다는 과도한 대기업 얽어매기가 혼란의 본질이다"고 비판했다.


태그:#박근혜, #경제민주화,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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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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