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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를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를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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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도 어려운데 기업 옥죄면 되겠느냐, 기업 떠나고 투자 안 하면 일자리 생기겠냐고 하는데, 그러면 애초부터 경제 민주화 얘기 말았어야죠."

최근 박근혜-김종인 갈등을 낳은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정책 후퇴 과정에 재계와 결탁한 새누리당 내부 세력과 '모피아' 경제 관료 개입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통하는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이들에 맞설 새로운 해법을 내놨다. 사실상 대선 후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바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총괄하는 행정기구인 '민주경제원(가칭)'이다.

16일 오전 여의도 한 오피스텔에서 만난 유종일 교수는 재벌과 함께 경제민주화 반대 세력으로 떠오른 '모피아'에 대한 경계심을 숨기지 않았다. '모피아'는 옛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와 마피아를 합친 말로, 정계, 금융계 등에 진출한 경제 관료들이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큰 세력을 형성했음을 의미한다.

"모피아 '태업' 맞설 경제민주화 총사령부 필요"

"모피아 경제 관료들이 날 자극했어요. (경제민주화에 맞서) '사보타지(태업)' 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대선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경제민주화에 반대하는 내부 보고서를 만들어 재계 입장을 판박이처럼 되풀이하는 걸 보세요. (과거 경제기획원처럼) 이들 경제 부처에 힘의 우위를 갖는 경제민주화 총괄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민주경제원'을 제안했어요."

기획재정부는 이달 초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한 내부 자료를 돌려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양당 대선 후보들의 경제민주화 공약 속에는 이를 뒷받침할 정부 기구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 그나마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대통령 직속 재벌개혁위원회 설치를 약속한 정도다.

"위원회보다 강력한 행정기구가 필요해요. '경제 검찰'이라는 공정거래위원회도 무력화될 정도로 위원회는 실질적 권력이 없어요. 지금도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18개인데 대부분 자문위원회고 행정기구는 규제개혁위원회 하나였는데 그나마 재계 입김에 재벌개혁위원회와 정반대되는 일을 해왔죠."

유 교수는 정부부처에 실질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행정 조직으로 '민주경제원'을 제안했다. 박정희 시대 정부 경제부처들을 상대로 무소불위 권한을 휘둘렀던 '경제기획원' 같은 조직을 만들어 경제민주화를 총괄 지휘하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과거 개발독재시대에는 정부 주도로 경제개발계획을 세우는 게 최우선이었다면 지금은 경제 민주화가 최고 목표고 경제시스템 전환이 역사적 과제예요. 경제민주화 관점에서 경제기획원 위상을 갖는 부처를 신설해야 재벌이나 모피아, 학계, 언론 등 기득권 세력의 방해에 맞설 수 있어요."

유 교수는 경제기획원이 사라진 지난 25년을 '자유경제원' 시대로 정의했다. 이처럼 경제 관료들 대부분이 모피아에 포섭된 상황에서 민주경제원이라고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을까?

"경제기획원이 사라지면서 국가 경제 전체를 보는 정체성은 사라지고 경제 관료들이 모두 모피아화됐어요. 그 상층부는 금융권, 산업계와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며 사실상 '자유경제원' 시대를 이끌어왔고요. 관료가 영혼이 없다고 하는데 같은 관료라도 (민주경제원에선) 기획재정부에 있을 때와 달라질 수 있어요. 물론 최상층부는 경제민주화 철학과 의지를 갖춘 사람들이 이끌고 나가야죠."

"박근혜 실망... 성장에 나쁘고 기업 옥죈다? 경제민주화 왜 꺼냈나"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를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를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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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교수를 자극한 건 모피아만이 아니다. 마침 이날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했지만 박 후보와 갈등을 빚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물론 김 위원장이 강력히 주장했던 '대기업집단법'이나 기존 순환출자 지분 의결권 제한 같은 재벌개혁 수단도 함께 사라졌다.

"굉장히 실망스럽고 안타까워요. 김종인 위원장을 위로하고 싶어요. 저도 김 위원장이 결국 토사구팽 당할 거라 생각해왔거든요. 곽정수 <한겨레> 기자가 박근혜-김종인 커플은 부부싸움도 심하고 툭하면 짐 싸들고 나가 수상하다, 제대로 살겠냐 했는데 결국 헤어지는 것 같아요."

김종인 위원장은 평소 '박근혜만 확실히 설득하면 해결된다, 새누리당 사람들은 보스가 하면 따라가는 유전자 가진 사람들'이라고 성공을 자신했지만 새누리당 내부 보수 세력과 모피아, 재계에 밀려 결국 좌절을 맛봤다.

"김 위원장은 지도자 한 사람이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시대가 달라요. 박정희나 전두환, 노태우 때는 가능했지만 87년 이후 재벌의 힘과 영향력이 훨씬 커졌어요. 이젠 문재인-안철수처럼 경제민주화 의지가 강한 대통령을 뽑아도 쉽게 안 돼요. 민주화는 아래로부터 동력이 있어야 하고, 조직적인 반대와 저항에 맞서려면 대통령 개인뿐 아니라 집권 세력의 기반도 중요한데 간과한 거죠."

특히 유 교수는 박근혜 후보가 경제 위기를 앞세워 경제 민주화와 경제 성장 '투 트랙'을 내세운 부분에 대해서도 큰 실망감을 나타냈다. 당장 보수적인 지지 세력부터 챙기겠다는 의도지만 경제민주화 의지 자체를 의심케 하기 때문이다.

"(재벌의 잘못된 행태만 잡고) 구조를 개혁하지 않는 건 대증 요법일 뿐이에요. 병균이 들어와 열이 나는데 병균은 안 죽이고 해열제만 먹는다고 되겠어요. 경제민주화하면 성장에 해가 되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도 문제예요. 보수파들이 경제도 어려운데 기업 옥죄면 되겠느냐, 기업 떠나고 투자 안 하면 일자리 생기겠냐고 하는데 이 논리를 수용하면 경제민주화 못해요. 성장에 나쁘고 기업 옥죄면 애초부터 경제민주화 얘기를 하지 말았어야죠."

유 교수는 오히려 경제 민주화가 경제 살리기고 경제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재벌 규제 역시 궁극적으로 대기업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재벌 총수들이 적은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기 때문에 회사 성장보다 개인 이익을 더 앞세워요. 경영권 상속이 대표적이죠. 일감 몰아주기도 편법 상속 때문이고 골목상권 침투도 자식, 조카에게 사업거리 하나씩 챙겨주려는 거죠. 핵심 역량 강화와 기술 혁신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데 이런 일에 자꾸 신경 쓰면 기업 경쟁력에 좋지 않아요. 사실 기업 규제는 기업 못살게 구는 게 아니라 기업 잘 되게 하려는 거죠."

아울러 '공장 이전', '일자리 축소' 등을 내세워 정부를 협박에는 재계에도 단호히 맞서라고 주문했다.

"자꾸 이러면 외국 간다고 하는데 외국 가면 총수 체제 유지할 수 있나요? 어림없죠. 노동집약적 산업은 싼 임금을 찾아 공장 한두 개 옮기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자꾸 못 살게 구니까 옮긴다고 협박하는 거예요. 그럴 거면 가라고 하세요. 한국처럼 기업하기 좋은 나라 별로 없어요. (세계은행 2012 기업환경평가에서) 전 세계 랭킹 8등이라잖아요?"

"문-안 정책 엇비슷... '노동' 빠진 경제민주화 아쉬워"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를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를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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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교수는 지난 4월 총선 출마가 좌절되긴 했지만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119특위) 위원장을 지냈고 아직도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시민사회와 전문가 연대단체인 '경제민주화와재벌개혁을위한국민운동본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대선 캠프 참여 유혹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까운 학자들 중에 캠프에 발 걸친 걸 후회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 걸 보면 안 들어간 건 잘한 거 같아요. 어느 캠프 입장도 대변 안 하니까 밖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거든요."

'중립적 입장'에서 유 교수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이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헌법 경제민주화 조항인 제119조에서 따온) '119특위'에서 제안한 종업원 대표 이사추천권과 대기업 문어발 확장에 과세하는 '재벌세' 등이 대선 공약에서 빠진 데 아쉬움을 나타냈다.

"참여연대에서 안철수 쪽 재벌개혁 정책이 더 강력하다고 평가했는데 나는 엇비슷하다고 봐요. 민주당 정책은 내가 119특위 할 때 만든 게 대부분 반영됐고 부담스런 부분만 빠졌어요. 계열분리명령제도 빠지긴 했는데 안철수쪽 계열분리명령제도 금융계열사만 한다고 해 그렇게 강력하다고 볼 순 없어요. 다만 노동자 경영 참여를 포함해서 경제 민주화가 재벌개혁 하나에만 초점이 맞춰진 건 아쉬워요."

"정권 바뀌고 재벌개혁만 하면 경제민주화가 될까"

유 교수는 마치 정권이 바뀌고 재벌 개혁만 하면 경제민주화가 될 것처럼 보는 시각에도 선을 그었다.

"경제민주화는 하루아침에 안돼요. 앞으로 25년은 해야 하는데 지금부터 피부에 와 닿게 하려면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어야 해요. 지금 경제 상황이 안 좋기 때문에 경기 부양도 필요해요. 경기 부양도 이명박 식으로 부자 세금 줄이거나 4대강에 헛돈 쓰지 말고 경제민주화식으로 해야 해요. 가장 체감할 수 있는 골목상권 보호예요. 당장 장사가 잘되지 않더라도 자영업자들이 무너지는 걸 막는 효과가 있어요."

유 교수가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 차별 해소를 위해 119특위에서 제안했던 고용안정수당과 산별 교섭 강화 필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새누리당에선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 80%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하는데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해선 80%가 아닌 110%를 줘야 해요. 고용 안정성이 없는 비정규직에 고용안정수당을 주는 거죠. 덴마크에서도 비정규직 기본급여가 정규직보다 15% 높고 휴일수당도 더 줘요.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쓰려는 인센티브를 줄이는 거죠. 산별 교섭과 단체협약 효력 확대도 중요해요.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은 정규직-비정규직 이전에 대-중소기업 문제예요. 산별 교섭으로 동종 산업에서 같은 유형의 일을 하는 노동자는 같은 노동 조건을 적용해야 해요."

유 교수는 마지막으로 세 후보에게 당부할 말을 해달라고 하자 역시 "안타깝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나마 재벌정책은 비교적 구체적인데 복지정책을 보면 두루뭉술한 게 많아요. 예산안이 전혀 안 나와 본격적인 정책 논쟁은 없고 과거 행적이나 단일화 얘기만 나와요. 이미지 경쟁만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진지하고 생산적인 정책 경쟁을 해야 해요.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도 국민에게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게 딱딱 가슴에 와 닿게 해야 해요. 그래서 경제민주화 총사령부 설치를 제안했어요. 정책 하나 하나 나열해선 와 닿지 않아요. 이 정도면 강력한 의지가 있구나, 99%가 주인 되는 경제 확실히 만들겠구나 하는 걸 단일화 과정에서 부각시켜 주면 좋겠어요."


태그:#경제민주화, #유종일, #박근혜, #김종인, #재벌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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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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