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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안이 훤히 보이는 저금통을 마련해줬습니다. 아직 돈을 셀 줄도 모르고 숫자도 잘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돈을 모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돈이 생길 때마다 꼬박꼬박 저금통에 넣었지요.

3개월 정도 모았는데, 첫째 아이에게 너무 사고 싶은 장난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말이 나온 김에 사러 가자며 두 아이 저금통을 가방에 부랴부랴 넣고 한 대형마트로 향했습니다.

엄마가 "장난감 사줄게"라고 하면 이것도 갖고 싶다 저것도 사고 싶다 떼쓰던 아이들이 오늘은 사뭇 다릅니다.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고 들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하면서 고릅니다. 아이들이 장난감 구경을 어느 정도 하고 사야 할 것을 골랐을 때쯤 저는 '셈하기에 앞서 계산원에게 가 우리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 아이들이 열심히 모든 돈으로 장난감을 사는 날이거든요. 그래서 저금통을 들고 왔어요. 좀 번거로우시겠지만 함께 기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계산 부탁드려요.'

이렇게 말하면 계산원이 '어머, 그동안 열심히 모은 돈으로 장난감을 사는구나, 가서 재미나게 잘 가지고 노세요'라고 답하겠지요? 그럼 우리 아이들은 '네, 감사합니다!'라고 답하며 꺄르르 웃겠지요. 혼자 이런 상상을 하며 흐뭇하게 웃으며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자, 계산하러 가자!"

우리는 계산대로 향했습니다. 아이들은 낑낑거리며 장난감을 계산대 위에 올려놨습니다. 계산원은 바코드 리더기로 장난감을 찍고 옆으로 밀며 말했습니다.

"고객님, OOOOO원 입니다."

아이들이 한푼 두푼 모은 돈, 계산대에 쏟았습니다

아이들은 이 저금통에 돈을 모았습니다
 아이들은 이 저금통에 돈을 모았습니다
ⓒ 구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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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쯤 되면 당연히 카드를 내밀어야 하는데,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말하려니 멋쩍습니다. 그래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아이들이 모은 돈으로 장난감을 사러 왔어요. 그래서 저금통에 있는 돈으로 계산하려고 해요. 부족한 돈은 제가 카드로 계산할게요."

그리고 저금통을 두 개를 주섬주섬 꺼내 계산대 위에 올려놨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의 뚜껑을 열어 동전을 바닥에 탈탈 털어놓고, 꼬깃꼬깃 지폐를 끄집어냈습니다. 그런데, 계산원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저금통에 있는 지폐만 사용하시고 동전은 은행에 가져가 바꿔쓰시는 게 어떨까요?"

'엇, 이게 아닌데... 이건 내가 원하던 반응이 아닌데...' 저는 당황했습니다. 계산원이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동전은 고객님이 미리 얼마라고 세서 오시면 저희가 확인해드릴 수 있는데 여기서 같이 동전을 세는 것까지 저희가 할 수는 없어요."

아, 제가 그렸던 그림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몹시 무안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럼 동전은 안 받으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라고 물으니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고요, 저희가 이 동전을 일일이 다 세기는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이미 쏟아 놓은 동전을 물끄러미 쳐다봤습니다. 이걸 다시 어디에 담아야 할까요. 상황이 구차해 더욱 무안해졌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구시렁거렸습니다.

"물론 제가 카드로 간단하게 계산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거든요. 물론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여기는 어린이 장난감을 파는 곳이잖아요. 이런 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참 당황스럽군요..."

계산원도 쏟아놓은 동전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느꼈는지 동전을 천 원 단위로 셌습니다. 저도 서운하기도 하고,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계산원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동전을 주섬주섬 셌습니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엄마를 돕겠다고 짧은 팔을 위로 올려 돕겠답니다. 말없이 동전을 세고 있는데, 뒤이어 손님이 오고 있었습니다. 계산원은 그 손님들에게 "고객님, 죄송하지만, 저 옆에 있는 계산대로 가주시겠어요?"라고 말하더군요.

미안합니다, 그렇게 고생하는데 제 생각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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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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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번, 다른 손님들을 다른 계산대로 보내는 모습을 보니 저금통에 있는 남은 동전은 차마 쏟아놓을 엄두나 나지 않아 지폐만 급하게 꺼냈습니다. 계산이 끝나고 부족한 돈은 카드로 계산했습니다. 그런 귀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만 남기고 아이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덩치보다 더 큰 장난감 상자를 온몸으로 껴안고 열심히 들여다보며 웃는데 저는 똥 씹은 표정이 됐습니다. 그때, 젊은 연인이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내 서운한 마음을 달래려고 누군가 보낸 사람마냥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더니 말을 겁니다.

"이야, 장난감 엄청 좋다. 너희들 좋겠네. 엄마가 장난감도 다 사주고."

아이들이 대답할 겨를도 없이 그냥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아이들이 열심히 모든 돈으로 산 장난감이랍니다. 그랬더니 그 연인들은 "어머, 너희들 정말 대단하구나"라며 웃었습니다.

차를 타고 집에 오는 길,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친구 가운데 마트 계산원으로 일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일 때문에 하지정맥류가 생겼다고 하더군요. 손님이 없을 때조차도 앉아 있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물도 마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중간에 화장실을 갈 수는 없으니까요.

몇 년 전에 '서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의자를'이라는 캠페인이 진행됐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캠페인이 있기 앞서 계약 만료를 이유로 뉴코아아울렛에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200명을 대량 해고했었지요. 그래서 그분들이 킴스클럽 매장 계산대를 점거하고 싸우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저는 당시 '오랫동안 성실하게 일한 아줌마들을 헌신짝처럼 내팽재치다니!'라며 분노했고, 우리 동네에 있는 2001아울렛을 이용하지 않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계산원에게 저는 제 생각만 하면서 아이들 마음을 챙겨달라고 한 것입니다. 엄청난 양의 동전을 쏟아부으면서 말이죠. 그제야 '마음만 급했구나, 집에서 함께 저금통을 깨고 동전을 아이들과 함께 세서 천 원 단위로 묶어 가져갔어야 했구나'라고 생각하며 몹시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때, 중학교 재학 당시 배웠던 소설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아이가 너무 사탕이 먹고 싶어 사탕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은박지로 싼 버찌를 아저씨에게 내밀었습니다. 아저씨는 순간 당황했지만, 그 버찌를 고맙게 받으며 아이에게 사탕을 내밀었습니다. 아이는 사탕을 소중하게 받아들고 나갔습니다.

저는 마트에서 만난 계산원이 그 소설 속 어른이길 바랐습니다. 저도 참 어리숙하지요. 어른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살피는 일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치가 돼버린 지 오래인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헛웃음이 나옵니다. 어른들조차 자기 마음을 살펴주지 않는 사회에서 산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습니다.
첨부파일
저금통.bmp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제가 찍은 사진이에요~



태그:#마트 캐쉬어, #계산원, #비정규직, #토이저러스, #저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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