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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는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아쉬움의 한 페이지로 남는 곳이다. 유럽 여행을 하면 영국에서는 대부분 런던 근교를 돌아보고 유럽 대륙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나도 첫 번째 영국여행 이후 스코틀랜드 여행을 못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고 영화 <해리포터>와 <브레이브 하트>에서 접하게 된 스코틀랜드 하이랜드(highland)의 산들은 너무나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나는 이번 영국여행에서 스코틀랜드 일정을 가장 길게 잡았다. 스코틀랜드에 와서 에딘버러(Edinburgh)만 보고 간다는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다. 나는 스코틀랜드 북단의 고산지대를 여행하는 '하이랜드(highland) 투어'를 꼭 해 보기로 했다. 내가 읽은 하이랜드 여행기들은 모두 한결같이 하이랜드의 풍광을 진정으로 찬양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부터 하이랜드 투어 일정 짜기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하이랜드 투어 여행사가 에딘버러 내에도 여러 곳이 있고 여행사마다 투어를 출발하는 요일도 다양했다. 마음 같아서는 하이랜드 1박 2일, 2박 3일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내와 신영이의 체력을 생각해야 했다. 나는 결국 하루 일정으로 하이랜드를 여행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현지에 와서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 나는 한국에서 스코틀랜드의 한 여행사를 통해 하이랜드 1일 투어를 예약했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위해 아침부터 서둘렀다.
▲ 하이랜드행 버스 기다리기 아침 일찍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위해 아침부터 서둘렀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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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벽부터 가족을 깨우며 서둘렀다. 스코틀랜드 하이랜드를 일주하는 투어버스가 아침 일찍 8시에 출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로열마일(Royal Mile)에 일찍 도착한 후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에딘버러 성 바로 앞에 있는 여행사로 갔다. 우리가 가장 먼저 왔을 줄 알았는데 이미 몇 가족이 우리 앞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나는 버스 안에서 우리 가족이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얼른 줄 안으로 들어갔다.

하이랜드 여행에 꿈이 부푼 여행객들의 줄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길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여행사 버스 2대가 우리 앞에 와서 섰다. 여행사 직원들이 예약자들 이름이 인쇄된 예약서류를 들고 와서 예약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행자들의 버스 배정은 예약한 순서대로 되어 있었다. 그러니 일찍부터 와서 기다리던 여행자들의 줄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뒤에 서 있던 사람이 앞의 버스로 가고 앞줄에 서 있던 사람이 뒤로 가면서 줄은 얽혀 버렸다. 그래도 나는 예약서류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좁은 인도 위의 복잡한 인파를 헤치고 재빨리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다행히도 나의 가족이 하루 동안 하이랜드의 풍광을 즐길 창가의 좋은 자리를 확보했다.

그런데 흥겨운 기분으로 출발한 버스는 에딘버러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길가에 갑자기 정차했다. 그러더니 가이드 겸 버스 운전사가 전화로 누군가와 계속 통화를 한다. 그는 버스 엔진에 이상이 생겼다며 모든 여행자들에게 뒤에 오는 큰 버스로 옮겨 타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버스를 옮겨 탔는데 이미 그 버스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고 좌석도 띄엄띄엄 떨어진 몇 좌석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버스의 좌석 사이도 좁은 데다가 나의 가족이 잡은 좌석은 큰 버스 실내의 중간 좌석이어서 창밖을 내다보기도 편하지 않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내는 버스 좌석 사이가 좁아서 다리 펴기가 편하지 않고 방금 전에 탔던 버스보다 더 불편하다고 불평을 한다. 여행사는 원래 탔던 버스에 빈 자리가 많이 생기자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2대의 버스에 나눠 탔던 여행자들을 큰 버스 한 대에 몰아넣은 것이다. 한국에서였으면 참지 않고 불만을 큰 소리로 이야기했을 나지만 아내, 신영이와 함께 즐기는 하이랜드 여행이기에 큰 소리를 내지 않기로 했다. 같이 버스에 옮겨 탄 각국의 여행자들도 착하기만 하다. 군소리들이 없으니 말이다.

꽉 찬 큰 버스에 옮겨 탈 때 화가 잔뜩 난 내 얼굴을 본 버스 기사 겸 가이드 아저씨가 버스를 출발하며 농담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소리를 지르며 "중국 사람!" "일본 사람!" "대만 사람!" 하면서 손을 들어보라고 한다. 다들 자기 나라 이름이 불린 동양계 여행자들이 손을 들며 반가워한다.

'아니, 대만을 부르는데 우리나라를 안 불러?'

이 가이드는 버스 실내 백미러를 통해 한 번 더 화가 난 내 표정을 보았을 것이다. 이 버스 기사 아저씨는 오늘 우리의 하루를 책임지는 가이드였다. 뚱뚱한 이 가이드 아저씨는 아침에 여행사 앞에서부터 스코틀랜드 킬트 치마를 입고 있어서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는 한 시도 쉬지 않고 버스 차창 밖의 풍광과 역사적 내력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버스가 출발하면서부터 계속 입을 쉬지 않고 있었다. 그의 강한 스코틀랜드 억양의 영어를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는 각국의 여행자들과 호흡하며 줄곧 사람들을 웃겼다.

영국여행에서 놓치면 후회하는 여정이다.
▲ 하이랜드 투어 영국여행에서 놓치면 후회하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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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 양떼들이 뛰노는 푸른 초원 뒤로 오랜 나무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하이랜드가 나타나기 전의 로우랜드(Lowland)는 예상 외로 평야가 드넓다. 하늘에는 온통 구름이 덮여 있지만 하늘의 끝은 약간 날이 갤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나는 가이드의 재미난 이야기를 들으며 한껏 웃고 있는 주변의 여행자들을 보았다. 나는 예민한 사람인가?

내려다보는 경관이 아름답다는 스털링 성이 지나간다.
▲ 창밖의 스털링성 내려다보는 경관이 아름답다는 스털링 성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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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를 찾아가는 차창 밖의 감격적인 풍경을 보면서 화가 났던 마음을 자연스럽게 접고 있었다. 로우랜드의 넓은 평야 너머 저 멀리, 내려다보는 풍광이 정말 아름답다는 스털링 성(Stirling Castle)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이랜드의 기가 막힌 절경이 펼쳐지기 시작하면서 잠시 언짢았던 내 마음은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휴게소 안에는 해미쉬 인형이 많다.
▲ 버스 휴게소 휴게소 안에는 해미쉬 인형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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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평야지대를 완주한 버스는 잠시 쉬어가기 위해 카트린(Katrine) 호수 부근의 트로서크스(Trossachs) 휴게소에서 멈춰 섰다. 휴게소 기념품 가게에 들러 보았더니 스코틀랜드의 소 인형이 유난히 많다.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에만 산다는 하이랜드의 상징 소, '해미쉬(Hamish)' 인형이다.

스코틀랜드에서만 사는 이 소는 눈을 가린 머리털이 너무 웃긴다.
▲ 해미쉬 스코틀랜드에서만 사는 이 소는 눈을 가린 머리털이 너무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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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 바로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가보았더니 이 해미쉬가 여물을 먹고 있었다. 해미쉬는 우리가 드디어 스코틀랜드 안에 들어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유명한 소는 사자 갈기같이 부슬부슬한 털이 눈은 잘 보이는지 의심될 정도로 눈을 덮고 있고 큰 뿔은 얼굴보다도 크다.

해미쉬의 앞머리(?)는 정말 미장원에서 다듬어 내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술적으로 아름답다. 해미쉬 머리 모습은 보면 볼수록 신기한 동물의 세계를 느끼게 해준다. 우리나라 황소 같은 누런 색의 해미쉬는 스코틀랜드의 시골마을처럼 투박하고 순박하다. 약간 엉성해 보이는 해미쉬의 얼굴 모습이 웃음을 짓게 만든다.

짙푸른 호수의 색깔이 너무 포근하다.
▲ 하이랜드 호수 짙푸른 호수의 색깔이 너무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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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버스는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영국 남부지방에서는 보지 못했던 높은 산들이 점점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버스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장엄한 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강폭을 가득 채운 강 줄기와 검푸른 호수의 물빛은 햇빛을 찬란하게 머금고 있다. 호수의 짙은 물색은 가끔씩 얼굴을 드러내는 푸른 하늘과 만나서 하이랜드의 풍성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하이랜드의 풍경은 지금껏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이었고 우리는 영화 속의 풍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잔디만 자란 것 같은 산의 경관이 압도적이다.
▲ 하이랜드의 산 잔디만 자란 것 같은 산의 경관이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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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높고 험하며 거친 풍경으로 변해간다. 다양한 초록 풀들이 자라는 그 경이로운 풍경들은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햇볕이 풀밭을 비추면 녹색이 아름답게 반짝인다. 나무 한 그루 없이 잔디만 깔린 듯한 협곡이 마치 버스를 덮칠 듯한 경사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황량한 협곡 사이를 흐르는 계곡수는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이랜드 최고의 경승지이자 환타지 영화의 무대이다.
▲ 글렌코 하이랜드 최고의 경승지이자 환타지 영화의 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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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코(Glencoe) 협곡! 공기는 너무나 시원하고 상쾌하다. 글렌코 협곡은 1692년의 명예혁명 혼란기에 이 골짜기에 살던 스코틀랜드 일족이 학살당한 비극의 땅이다. 이 비극의 협곡에 요새는 새롭고 즐거운 스토리텔링이 추가되었다. 글렌코 협곡은 현재 <해리포터> 시리즈의 '아즈카반의 죄수(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of Azkaban)'를 찍은 신비한 협곡으로 더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이 신비로운 풍경 위에 안개가 끼고 비까지 내리면 그대로 판타지 영화의 배경이 될 것 같다. 협곡 뒤에서 칼을 든 하이랜더 전사가 뛰쳐 나올 것만 같다. 아내와 나는 주변의 풍광을 보면서 영국에서 왜 판타지 소설이 발전했는지 알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신영이는 새로 산 카메라로 자신이 추종해 마지 않는 영화 <해리포터>의 촬영지를 연신 촬영하고 있었다.

글렌코를 선경으로 만드는 환상적인 연주였다.
▲ 백파이프 연주 글렌코를 선경으로 만드는 환상적인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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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백파이프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머리를 돌려서 보니 백파이프 소리는 상상이 아닌 현실의 세계였다. 현실의 세계 위로 신비한 분위기가 퍼지고 있었다. 그 신비함 속에서 만약 내 옆에 요정이 웃으면서 나타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이곳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많은 사람들이 알프스라고 생각할 것이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스코틀랜드 하이랜드는 첫 번째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개성적인 풍광을 보여준다. 명산대천 여행을 즐기는 나지만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이런 풍광은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 글렌코와 같은 절경은 진짜 스코틀랜드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스코틀랜드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은 투어버스가 점심을 먹기 위해 멈춘 휴게소에서도 만나게 된다. 우리는 한 시간 정도의 점심시간 중에 스코틀랜드식 스프와 계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우리가 앉을 식당 좌석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말 눈을 돌려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치마 입은 남자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 킬트 치마 입은 남자들 치마 입은 남자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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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가 시원스럽게 벗겨진 아저씨들이 모여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들이 입고 있는 하의가 초록색 킬트 치마였던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관광지마다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킬트 치마는 몇 번 봤지만 실제로 지금도 킬트 치마를 즐겨 입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격자무늬의 이 치마는 짧기도 한데 큰 무만한 남자의 허벅지에는 거뭇거뭇한 털이 징그럽게 많이도 나 있었다. 다시 봐도 거북스럽지만 참 이국적이다. 지구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그 많은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었다.

버스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를 다시 달리고 있었다. 산이 지나고 나면 곳곳에 검은 빛깔의 아름다운 호수들이 넋을 빼놓는다. 하이랜드의 햇빛은 압도적인 경사의 초록산을 비추고 반짝이는 호수 아래를 곱게 비추고 있다. 나는 점점 저 하이랜드 자연의 아늑함에 빠져들면서 이곳은 지구에서 첫 번째로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태그:#영국여행,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해미쉬, #글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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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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