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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MBC 장기파업 관련 청문회에 핵심 증인인 김재철 사장 등 MBC측 관계자들이 불출석해 파행을 빚고 있다.
ⓒ 남소연

김재철 MBC 사장에 대한 해임안이 방문진 이사회에서 부결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양심선언'이 나와 파문이 커지고 있다. 논란의 발화점은 11월 8일 오전, 양문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의 폭로였다. "방문진 김충일 이사가 청와대 하금열 대통령실장과 김무성 박근혜 후보 측 선대위 본부장의 전화를 받고 입장이 돌아서면서 해임안이 부결됐다, 이들이 김재철을 지키라고 압력을 가했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양심선언 사건이 그렇듯이,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지목된 비리 관련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고 있다. 역사적 경험은 이렇게 당사자들이 한 목소리로 부인할수록 훗날 사실로 판명될 확률이 높다고 가르친다. 더욱이 위원직 사퇴로 배수진을 친 양 위원의 폭로는 매우 구체적이며 야당 측에서 추천한 방문진 이사와 MBC노조, 그리고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의 정황 설명은 폭로사실을 수미일관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박근혜 후보의 지난달 30일 "공영방송의 사장 선출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하겠다"는 발표는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해본 흰소리거나, 양두구육(羊頭狗肉)식 정치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잇따라 낙하산 사장을 투하하면서 임기 내내 공영방송을 주물렀던 이명박 정권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후보도 공영방송을 손아귀에서 놓지 않겠다는 의도가 분명해졌다는 증거라는 말이다. 과연 '이명박근혜'답다. 새누리당 문방위원들은 한 술 더 떠 "사실관계를 밝히라"는 안철수 후보에 대해, "부화뇌동하지 말고 방송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을 위해 고민해 달라"고 훈계까지 하고 나섰다. 이쯤 되면 적반하장도 급수가 있다고나 할까.

방송사 사장 한 사람의 진퇴를 둘러싸고 이렇게 오랫동안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적이 한국역사에 있었던가? 최근 몇 년 간 한국사회에서 가장 유명해진 이름 중 하나가 김재철이다. 공금 유용과 무용가 J씨와의 스캔들로 전국적인 인물이 된 김재철 사장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 여부를 떠나, 드러난 추문만으로도 스스로 사퇴해야 할 정도로 비리의혹이 진동한다. 그런데도 믿는 구석이 있는지 요지부동이다.

최근에는 정수장학회 매각으로 부산경남 지역 대학생 반값 등록금 지원 등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박근혜 후보 선거운동을 하려다가 들통이 나기도 했다. 야당이 아무리 국회로 불러내려 해도 다수당인 새누리당의 엄호는 철벽이다.

김재철 재임, MBC는 막장방송으로 전락

 김재철 MBC사장이 10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원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조재현

그가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동안 MBC는 막장방송으로 전락했다. 이 정권 하에서 공영방송이 모두 관제방송, 어용방송으로 망가졌지만 MBC의 몰락은 특히 극적이다. 한 때 권력이 두려워하던 가장 비판적이었던 방송이 무너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쌓아올리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했던가?

MBC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거의 전 사원이 참여했던 170일간의 파업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회사 측의 보복은 가혹했다. 한창 현장에서 뛰어다녀야 할 젊고 유능한 기자와 PD들을 포함한 2백 여 명의 조합원들이 해고에서 대기발령에 이르는 각종 징계로 현장에서 쫓겨났다.

대기발령자들에게는 따로 '신천교육대'라는 별명이 붙은 교육과정을 개설해 '브런치 만들기'와 '요가교육' 등 현업과 업무관련성이 전혀 없는 커리큘럼으로 시간을 때우게 하고 있다. "파업을 하다가 회사에 찍히면 이렇게 된다"는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저항의지를 말살시키려는 정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신 빈자리를 마구잡이로 뽑은 시용기자와 PD들로 채우면서 MBC는 바닥을 모르는 최악의 저질방송으로 추락하고 있다.

언론인권센터는 MBC 뉴스가 모니터를 할 수 없을 만큼 편향성의 정도가 심해졌다고 비판한다. 최근 들어 부쩍 잦아진 사고가 그 징표다. MBC 정오뉴스를 통해 고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사진을 당선 무효형을 받은 선거사범이라고 잘못 올린 것을 비롯해, 황당한 방송사고가 일상화되고 있다. 방송 3사 가운데 시청률과 신뢰도에서 꼴찌를 기록한 것은 사필귀정이다. <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해 대법원이 내렸던 무죄판결을 무시하고 내보냈던 사과방송을 다시 정정보도하라는 판결도 나왔다.

법원도 MBC가 위에서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마는 5공 독재시대의 '보도지침' 방송으로 회귀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근에는 편성 PD들과 기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뉴스데스크 시작 시간을 밤 9시에서 8시로 한 시간 앞당긴 편성을 강행, 방송을 시작했다. 수 십 년간 유지돼 온 대표적인 뉴스 프로그램의 편성시간을 오로지 사장 1인과 휘하의 경영진만의 뜻으로 바꿔치는 폭거를 저지른 것이다.

김재철이 이 정권으로부터 사장으로 낙점받을 때 "MBC를 조직적으로, 재기가 불가능하도록 파괴하라"는 밀명(密命)을 받지 않았나하는 강한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러니 방송 3사 가운데 시청률과 신뢰도 면에서 꼴찌를 기록한 것은 사필귀정일 수밖에.

어용뉴스의 부활, 이명박의 치밀한 준비였나

 10월 16일 서울 여의도 MBC 정문앞에 설치된 민영화 저지 MBC노조 천막농성장에 'MBC사장 김재철을 즉각 구속하라' 라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 조재현

이 정권은 집권 이전부터 공영방송을 순치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 온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가 현재 목격하고 있는 어용뉴스의 부활과 비판적인 시사프로그램의 절멸로 나타났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25년간 꾸준히 신장돼 온 여론다양성 확대와 주류언론 곧, 조중동에 의해 농락돼 온 공론장의 정상화는 먼 옛날 얘기가 돼 버렸다. 사물을 '돈이 될 것인가, 아닌가(특히 자신에게)'로 판단하는 게 습관이 된 건설회사 CEO 출신의 대통령 이명박이 공영방송의 존재이유와 역사성을 알 턱이 없다.

MBC의 정치적 독립성과 제작진의 자율성을 지켜온 데는 공영방송이라는 회사의 지배구조와 노동조합이 큰 역할을 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현 정권하에서 기존의 믿음은 철저하게 배반당했다. 다수당인 새누리당에 의해 추천된 인사들이 수의 논리로 이사회의 다수를 점하게 됐다. 이들이 뽑은 사장은 다시 인사권을 휘두르거나, 노사교섭을 외면함으로써 노조와 제작진의 권한을 간단하게 무시·침해해왔다.

방문진에서 여당 추천 이사들은 로봇이나 거수기처럼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6(여당):3(야당)의 표결결과를 보였다. 지배구조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을 경우 정치권력에 각을 세우는 비판적인 프로그램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공영방송 제도는 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는 여러 공영방송 제도가 층위별로 섞여서 존재한다고 한다.

1)이념형적으로는 영국 BBC가 모델인 자유주의형 2)제도적·형식적으로는 북유럽에서 시행되는 정당과 시민사회의 목소리 반영체제 3)실질적인 운영에서는 이탈리아 등 남유럽처럼 정권장악 세력의 이해가 방송사 지배구조에 그대로 관철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중 어느 쪽이 됐든 이를 뒷받침할 사회문화적 토대가 미비하거나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즉 영국이나 북유럽 등 방송선진국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제도가 한 사회에 뿌리를 내리려면 인프라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인프라에는 공영방송에 대한 집권자들의 철학과 관용, 아울러 정당 또는 사회운동과 결합된 조직적인 시민들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외부의 사회문화적 조건이 단시일 내에 급성장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MBC 구성원들은 비록 170일 씩이나 파업을 했지만 아직도 더 많은 사회적 짐을 떠안아야 할 것 같다. 이같은 고통은 사실 신자유주의의 광풍으로 고생하는 저 밑바닥 민중들의 삶을 이해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대선 전에 양문석 위원이 폭로한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집권여당을 위한 야합 음모의 진상이 밝혀지는 것은 기대난망이다. 정권의 시녀가 된 검찰이나 새누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 모두 힘을 쓸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MBC를 비롯한 공영방송이 조중동의 아류방송으로 전락한 언론의 환경감시 기능도 기댈만한 게 못 된다.

따지고 보면 BBK에서부터 민간인 사찰, 내곡동 사저 터 매입 의혹에 이르기까지 이 정권 내내 이런 식이었다. 청와대와 관련된 어떤 의혹도 속 시원하게 밝혀진 적이 없다. 아쉽게도 한국사회는 유럽의 공영방송선진국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따라서 MBC 노동조합의 운동성만으로는 역사적·사회문화적 조건을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비관은 이르다. 한국은 역동성과 저력이라는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놀라운 사회이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를 들어본다. 1980년 8월, 광주학살 주범 전두환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려 할 때 외신기자들이 주한 미군사령관 존 위컴에게 한국 사람들이 과연 전두환을 지지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자 위컴은 "한국인의 국민성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더라도 따라갈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민주주의는 적합하지 않다"고 일갈했다. 쥐떼로 비하된 한국인들은 그러나 1987년 전두환의 독재를 무너뜨렸다.

정치적 민주화로 표상되는 '87년 체제'를 대치했던 이명박 정권이라는 유사(類似)독재 체제가 끝나가고 있다. 국내적으로 재벌과 부자들의 마름이요, 국제적으로 미국의 이해관계에 복무해온 사대주의 정권에 대한 한국 유권자들의 심판은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오는 12월 19일은 뇌사상태에 빠진 한국사회의 공영방송체제의 재활 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날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최용익 뉴스타파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입니다.



태그:#김재철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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